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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오해

by 이음

섬. 사면이 물로 싸인 작은 땅. 대부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거제는 차로 갈 수 있는 섬이다.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리라는 낭만적인 상상은 찬란한 오해였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가대교 위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풍경이 달라진다. 다리 위, 차창 밖으로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풍경이 펼쳐지고, 도시의 빛나는 고층 건물들은 초록빛 숲으로 물러난다.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관문을 지나는 것 같다. 눈 앞에 펼쳐지는 낯섦이 서서히 물들면서, 비로소 섬에 들어섰다는 감각이 깨어난다.


거가대교. 거제와 부산을 잇는 긴 다리. 2010년에 개통된 이 교량은 약 8.2km의 길이로, 바다 위를 가로지른다. 바다 한가운데로 이어지는 해저 침매터널 구간은 세계 최초로 시도된 공법이 만들어낸 길이다. 덕분에 부산과 거제 사이의 거리는 140km에서 60km로 줄어들었고, 4시간 넘게 걸리던 통행시간은 이제 2시간 남짓. 물류는 더 빨라졌고, 지역 경제는 활기를 얻었다. 하지만 숫자와 효율을 넘어, 이 다리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꼭 광안대교(부산에 있는 전국 최대의 해상 교량) 같다.”

“거제 사람들한테는 광안대교보다는 더 큰 의미 아니겠나?”

거가대교는 거제 주민들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내게는 가족과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나게 해주는 길이자, 거제에서의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든든한 연결고리다. 다리 위를 지날 때마다, 이곳에서의 삶이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다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처음 구한 집은 한화오션(前 대우조선해양) 정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빌라였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전원생활을 꿈꿨지만,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맞벌이를 계획했기에, 어린이집이 가깝고 일자리가 많은 곳, 또래 아이들이 모여 있는 동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무게는 낭만을 가볍게 밀어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부산 신혼집이 더 나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준비하고 조사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거제에서의 삶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창문을 열면 산과 바다 대신 거대한 배들과 1,000톤급에서 1,200톤급 사이의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이 보였다. 출퇴근 시간이면 거리는 회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길을 메웠고, 회사 앞 도로는 잔뜩 기울어진 파도처럼 흔들렸다. 출퇴근 버스가 여러 대 있었지만, 대기열을 모두 소화하지 못한 채 출발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고, 더 먼 거리는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그들을 실어 날랐다. 아침 8시, 학창 시절의 국민체조를 떠올리게 하는 체조 음악이 스피커를 타고 퍼졌다. 그렇게 창밖의 풍경은 늘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멈춰있었다. 삶은 흐르고 있었지만, 그 안에 나는 없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조선소 부지의 규모였다. 상상했던 크기를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넓이였다.

“뭔 출입구가 4개나 있노? 회사 안에서 길 잃겠다!”

“구내식당이 32개씩이나 있나? 하루 세 끼 다 먹어도 열흘은 걸리겠네!”

한화오션의 부지는 약 130만 평(460만㎡). 축구장 645개를 펼쳐 놓은 크기다. 여의도의 1.6배에 달하는 공간이 거제의 한쪽을 묵직하게 채우고 있다. 여기에 약 100만 평(330만㎡) 규모의 삼성중공업까지 더해진다. 두 거대한 조선소 때문일까. 거제는 두 조선소 직원과 그 가족들, 이들을 상대로 생계를 꾸리는 자영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20년 기준, 두 조선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약 4만 7천 명. 같은 해 거제 인구의 5분의 1이다. 가구 수로 보면, 두 가구 중 한 가구는 한화오션이나 삼성중공업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선소 경기에 따라 지역 경제는 출렁일 수밖에 없다. 호황기엔 사람이 모여들고, 상권이 활기를 띄지만, 불황이 닥치면 실직자가 늘고 인구는 빠져나간다.


“조선소 망하면 우린 뭐 먹고 사노?”

조선소에 의존적인 경제 구조는 이곳에서의 삶을 늘 불안하게 했다. 딸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곳이 과연 안전할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거제에 두 발을 모두 딛기엔 아직 망설여졌다. 한 발은 여전히 부산에 남겨둔 채였다. 생계의 위기가 닥친다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제는 여전히 확신보다는 물음표에 가까웠다.


주거 환경도 조선소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아파트와 빌라가 조선소 가까이에 모여 있었고, 학교나 병원, 상점들도 그 주변에 자리 잡았다. 모든 게 조선소의 리듬에 맞춰 움직였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늦은 밤 퇴근하는 사람들. 교대 근무가 일상이 되어, 밤과 낮의 경계가 흐릿했다. 낮잠이 일상인 이들을 위해 아파트에서는 대낮에도 종종 층간소음 주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낮에도 발소리와 문 닫는 소리에 긴장감을 실어야 했다.


상여금이나 보너스를 몰래 가로챌 생각도 할 수 없다. 모두가 비슷한 공간과 일상에 놓였고, 그런 핑계들은 금세 들통나기 마련이었다. 갑작스러운 회식이나 장례식 핑계조차 설 자리가 없었다. 비슷한 일상에서 친밀함은 생겼지만, 그만큼 지루함도 뒤따랐다. 관심 없던 요리나 수공예 같은 취미에 손을 대기도 했다.


산업과 자연이 뒤섞인 이질적인 풍경. 적응해 보려는 마음과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 낯선 땅에서 내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 답은 아직 멀리,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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