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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14. 2023

두 번 급식 먹는 소년 (전편)

사서 수첩

“선생님, 급식 한 번 더 먹고 와도 돼요?”

K가 도서부 신입회원으로서 급식우선권이라는 황금 티켓을 손에 넣은 날, 그는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도서부원으로서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반별로 급식을 먹을 때, 한 번 더 점심을 먹어도 되냐는 질문이다. 순간 그가 감추려 했던 진실의 일면을 볼 수 있었지만, 모르는 척 대답했다. 

“그럼. 다음부터는 물어보지 말고 다녀와.”

    

K를 만난 건 운 좋게 시험에 합격한 후, 첫 발령받은 중학교 도서실이다. 그는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다섯 머리 정도는 작았고, 매일 서너 권의 책을 빌려 갔기 때문에 눈에 띄었다. 교복 셔츠는 그의 피부처럼 하얗고 바삭바삭했으며, 인사는 늘 단정했다. 성적을 제외한다면, 그는 선생님들이 흔히 생각하는 모범적 학생이다.      


그는 매일 도서실을 방문했다. 우리는 책에 관한 대화로 친해졌고, 점차 그는 자신의 이야기의 일부분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그럴듯하게 꾸며진 허구들의 연결성이 취약했다. 그가 말을 많이 할수록 치밀하지 못한 이야기의 구성들이 더 드러났다. 부모님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혼자인 듯했고, 식사를 챙겨주는 사람도 아플 때 병원을 데리고 가주는 사람도 없는 듯했으며, 용돈을 받아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휴대폰이 없으니 하교 후에는 방에서 홀로 책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다. 그에게 독서는 즐거움보다는 고독에 가까웠고, 여행보다는 도피에 가까웠다.      


진실을 겹겹이 가려놓은 채 들려주는 흐릿한 이야기들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가 선택한 말의 조각들을 깊게 캐묻지는 못했다. 바삭바삭한 흰 셔츠와 단정한 인사, 사실과 허구가 적당히 혼합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로, 진실을 숨기려 애쓰는 그의 노력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설정한 의도적인 장벽과 경계를 존중하고 싶었다. 이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더 나은 대안이 있었을지, 아직도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일방적인 의심으로 너무 깊은 질문들을 쏟아내면 우리 사이의 신뢰가 깨질 것 같았다. 심지어 그는 내가 조금이라도 그의 부모님에 대한 의심을 품을 때면, 즉시 대화를 중단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특정 주제를 피하는 것에 신경 써야 했고, 그가 걷기 원하는 길을 가볍게 산책하는 듯한 대화로 이어가야 하는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K, 어차피 도서실에 매일 오는데, 도서부 하지 않을래?”

더 많은 도서부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서 조심스레 제안했다. 다행히도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도서부에 가입하면 누릴 수 있는 몇 가지 장점이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급식우선권을 받는 것이다. 도서부원들은 점심시간에 가장 먼저 점심을 먹고 도서실에 와서 책 정리, 대출 반납, 도서실 행사 등을 운영한다. 이 소박한 인센티브를 통해 서로 유대감을 공유하고 동시에 도서실은 활기찬 공간이 된다. K는 그렇게 급식을 두 번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선생님, K가 급식 줄에 또 서 있던데요?”

“K는 왜 점심을 두 번 먹어요?”

북적대는 급식실에 2차로 줄을 선 K를 발견한 도서부원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K는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인데 도서실에 서둘러 오느라 점심을 조금 밖에 먹지 못해서, 선생님이 나중에 한 번 더 먹으라고 했어.”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더 무심한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해명이었지만, 고맙게도 순수한 중딩 도서부원들은 내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왜 당황하는 속내를 감추며 거짓말을 했을까. 불편한 현실을 막기 위한 섣부른 대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K의 체면을 지켜내는 것이 단순한 진실보다 중요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짐작건대, 학교 급식은 K의 하루 식사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 사진출처: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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