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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20. 2023

두 번 급식 먹는 소년 (후편)

사서 수첩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내가 K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선생님 한 분이 조심스레 다가왔고, 경찰서에서 학교로 보낸 공문을 보여주었다. 문서에는 K가 아동학대 피해자 신분으로 보호소에 분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K가 학대 사실을 직접 신고했다는 것이다. 공문에 따르면 K는 재혼 가정에서 자랐고, 아버지가 재혼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홀로 생활해 왔다고 한다. 아버지가 가끔 방문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이유 없는 폭력을 가했고, K에게 남는 것은 굶주림과 감정적 육체적 상처뿐이었다.       

    

인간은 사랑을 먹는 존재라 했건만 얼마나 사랑이 고팠을까. 혼자 사는 삶이 발각될까 전전긍긍하며 매일 교복 셔츠 세탁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하루의 첫 끼니와 마지막 끼니를 학교에서 모두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밥을 먹는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학교 앞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먹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지루한 오후와 두려운 밤을 잊기 위해 서너 권의 책을 빌려야만 하는 삶은 고독했을 것이다. 굶주렸을 때, 불과 20분 거리의 부모님 집에 갈 수 없는 먼 마음의 거리는 고통스러운 박탈감으로 남아 있고, 아버지의 손으로 자행된 부당한 폭력을 견뎌내야 했던 혼란의 시간들은 영원한 상처일 것이다.  




정인이와 서현이 학대 사건,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 등 한국 사회에서 아동학대 문제가 급증했다. 경제적 압박과 학업성취에 대한 높은 기대, 가족 구조의 변화 등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되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준비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 생명을 양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양육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무조건적 출산을 장려하기보다는 책임 있는 가족계획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책임감 있는 부모의 품에 안기는 것이 중요하다.   

   

저항할 힘조차 없고, 저항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이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학대의 범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자신을 보호해야 할 이들이 가해자가 되었을 때, 아이들은 자신들을 해치는 사람들에게 매달려야 하는 참혹한 상황에 놓인다. 학대받은 아이들에게 가해진 고통은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생각과 관계, 모든 일상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원망과 분노, 공포와 배신에 짓밟혀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펼치며 살아내야 할 아이들의 삶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겠는가. 



분명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온전히 가해자들로부터 독립되기 위해서, 아이들이 그들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용서가 남발되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아이들이 받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고려할 때, 이것이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용서가 스스로를 분노와 비통의 사슬로부터 풀어 주는 열쇠라는 것이다. 결국 치유의 힘은 가해자들에게 있지 않고, 자신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용서한다고 해서 가해자들이 반드시 뉘우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아이들의 영혼에 새겨진 상처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지만, 용서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여전히 피해자로 남는다. 상처를 주었던 부모가 그들의 삶을 계속적으로 좌지우지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용서는 자신의 삶의 통제력을 회복하고 온전한 치유를 이루는 전환이 된다. 


생텍쥐페리는《성체》에서 “오직 방향만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향해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 외에는 다른 어떤 곳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K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조용한 울림으로 전하고 싶다.

“용서의 짐까지 얹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고 미안하구나. 아직 준비되지 않아도 괜찮단다. 너의 속도로 나아가면 돼. 너는 너에게 가해진 상처로 정의되지 않아. 너는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란다. 치유의 힘은 가해자가 아니라 너에게 있어. 회복의 길이 쉽지 않겠지만, 너는 이미 엄청난 용기와 힘을 보여주었단다. 과거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앞으로의 삶은 바꿀 수 있어. 가슴 떨리는 가능성과 기회가 네 앞에 있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희망이야. 그리고 항상 기억하렴. 너는 혼자가 아니야.”     





< 사진출처: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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