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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an 08. 2024

축하할 수 없는 졸업식

준비되지 않은 졸업식

어느덧 1월이다. 3학년의 졸업식과 1·2학년의 겨울방학식이 동시에 시작되는 날은 마지막 순간까지 숨 가쁘게 달려야 한다. 이번 겨울방학 동안에는 학교 전체 석면철거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16,000권이 넘는 도서실 도서를 이동해야 했다. 더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마시지 못한 커피는 언제 식었는지조차 알 수 없고, 컴퓨터 화면 창은 열 개도 넘게 띄워져 있다. 읽지 못한 업무 메일은 쌓여만 가고, 포스트잇 메모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데, 아이들은 계속해서 밀려온다. 전화를 받으면서 격렬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동시에 아이들과 대화도 나눈다. 미처 알지 못했던 화려한 멀티태스킹 능력에 감탄할 여유도 없다.     


“선생님, 우리 오늘 졸업식 해요.” 

분주한 공기를 가르며 낯익은 얼굴들이 들어온다. 평소와 다르게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의 3학년 도서부 아이들이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들의 눈을 보는 순간 알았다. 나는 아직 이 아이들과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졸업식을 외면하고 있었다. 마치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는 작은 배와 같았다.        




올해 졸업식은 조금 더 특별하다. 졸업하는 3학년들은 내가 학교에 발령받은 후, 처음 만난 아이들이다. 아이들 또한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도서부로 활동하며 나와 함께했다. 경험이 부족한 서툰 선생님이었지만 아이들은 내 진심을 알아주었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조금은 수직적이고 숨 막히는 학교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사소한 일에도 웃을 수 있는 법과 작은 순간에서 즐거움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도서부 언니 오빠들 덕에, 딸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늘 신상 과자와 고난도 종이접기 작품을 소유한 인기녀가 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늘 내게 먼저 주었고, 많이 주었고, 변함없이 주었다. 졸업식 꽃 한 송이 준비하지 못한 무심한 내게, 꽃보다 예쁜 아이들은 꽃다발까지 안겨주었다. 진심 어린 마음을 눌러 담은 편지도 있다. 부치지 못한 답장이지만, 한 줄 한 줄 마음으로 답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되새긴다. 



J.H : “3년간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선생님 잊지 못할 거예요.”

⇨ 너희가 있었기에 이곳이 소중했어. 날 잊지 못할 사람으로 기억해 준다니 고마워.     


K.H : “커서 꼭 선생님 만나러 올게요.”

⇨ 아직 나도 다 못 컸는데, 그럼 우리 평생 못 만나는 건가?     


D.Y : “저도 선생님처럼 사서가 되고 싶어요.”

⇨ 아무래도 좀 더 고민해 보는 게 좋겠어. 일단 MBTI · DISC 검사를 다시 해보자.     


Y.J : “학교에서 선생님이랑 수다 떨었던 시간이 제일 행복했어요.”

⇨ 다행이야. 최소한 날 꼰대라고 생각하진 않았구나. 잘파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      


Y.S : “우리 없으면 선생님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 너희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림이 없는 도서실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 그런데 일이 더 힘들어지고 그러진 않을 것 같아. 어쩌면 일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을지도 몰라.      


S.B : “고등학교 가서 시험 못 치면 선생님한테 와서 울고 가도 돼요?”

⇨ 중간·기말고사 때마다 시험을 망쳤다며 대성통곡하고 갔었지. 고등학교 3년이면 12번 올 예정인 거지?  


올해도 어김없이 학교 정문에는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지 못하기에,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더 치열한 경쟁에 짓눌려야 하는 어린 어깨가, 사실 나는 아프다. 관례적인 축하 대신에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 애썼다.”      






※ 아래 시는, 졸업한 도서부 아이들에게 자필로 적어서 선물 한 시입니다. ※



                   < 뒷자리 > 

                                        - 도종환 -     


맨 앞에 서진 못하였지만

맨 나중까지 남을 수는 있어요.     


남보다 뛰어난 논리를 갖추지도 못했고

몇 마디 말로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 또한 없지만

한번 먹은 마음만은 버리지 않아요.     


함께 가는 길 뒷자리에 소리 없이 섞여 있지만

옳다고 선택한 길이면 끝까지 가려 해요.     


꽃 지던 그 봄에 이 길에 발 디뎌

그 꽃 다시 살려내고 데려가던 바람이

어느새 앞머리 하얗게 표백해 버렸는데     


앞에 서서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이들이

참을성 없이 말을 갈아타고

옷 바꿔 입는 것 여러 번 보았지요.     


따라갈 수 없는 가장 가파른 목소리

내는 사람들 이젠 믿지 않아요.     


아직도 맨 앞에 설 수 있는 사람 못된다는 걸

잘 알지만 이 세월 속에

드릴 수 있는 말씀은 한가지예요.     


맨 나중까지 남을 수 있다는.   

            


“너희가 좋아하는 자리에, 맨 앞에 서지 못하더라도 맨 나중까지 남는 사람이 되길.”     

- 2024. 01. 05. 마음을 담아, ○○중학교 사서 선생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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