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중딩들의 독서 모임
“하나, 혼잣말이 아닌 대화를 하겠습니다.”
“둘, 잘 설득하기보다는 잘 설득당하겠습니다.”
“셋, 비난하거나 인신공격하지 않겠습니다.”
“넷, 모임 시간에 나온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모임 수칙 낭독으로 독서 모임을 시작한다. 매월 셋째 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북톡」 독서 모임이 있다. 아이들은 제일 먼저 급식을 먹고, 도서실에 모여 한 시간 동안 미리 읽고 온 책에 대한 나눔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주 2회 정도 모임을 가지고 싶지만, K 중딩들의 학업량과 다양한 과외 활동을 생각하면 더 욕심부릴 수가 없다. 한 달에 한 번의 모임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효율적 독서 모임을 위해 ‘자유토론형’과 ‘튜터형’을 결합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자유토론형’은 공통의 책을 읽고 진행자(학생)가 사전에 준비한 질문을 중심으로 참여자들이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모임에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튜터형’은 독서 경험이 많은 사람이 모임을 주도하고 내용의 이해와 다양한 사전 지식을 모임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형태로, 독서 및 토론의 질을 향상시킨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주로 ‘독서지도안’을 통해 정보를 제공했다.) 균형 잡히고 관리가 가능한 독서 모임을 위해 두 유형을 결합했다.
아이들과의 독서 모임은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고, 독서의 지평을 넓히며, 비판적 사고와 사회성을 기르자.’는 목표를 가지고 진행했다. 먼저 모임의 목적에 맞는 도서 목록을 구성해야 했다. 즐거운 독서 경험을 위해, 아이들의 관심사와 일치하는 주제를 우선으로 하여 도서를 선정했다. 독서 부담을 덜어주는 재미있는 단편집과 공감할 수 있는 또래 청소년들이 쓴 작품을 포함했다. 역사·문학과 같은 대중적인 장르 외에, 철학·예술·과학에 관한 책을 포함하여 독서의 지평을 넓혔다. 인문학 관련 도서를 통해 인간의 경험과 정서, 사회적 문제 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장애학생이나 다문화 학생 등 또래의 경험을 반영한 작품도 선택했다. 이러한 다각적 독서 경험은 아이들이 새로운 흥미를 발견하고 주변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주체적인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들의 독서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복잡하지 않은 활동들을 짧게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와 ‘유대감’을 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위를 봐요』와 『보이지 않는다면』과 같은 장애 공감 도서로 나눔을 했다면, 이후 ‘점자 명함 만들기’나 ‘안대를 쓰고 도서관 탐색하기’ 등을 할 수 있다. 관계의 소중함에 대한 『모두를 위한 케이크』라는 책을 읽은 후에는 ‘컵 쌓기 게임’을 하며 협력의 중요성을 경험해 본다. 『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져』를 읽은 후에는 파프리카·당근·오이·양파 등의 채식 재료를 나눠주고, 저녁 식사 요리를 단톡방에 공유하는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을 읽은 후, 친구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활동이었다. 고민 상자에서 익명으로 작성된 고민 쪽지를 하나씩 고른 후,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추천하는 활동이다. 추천하는 책 사이에는 고민에 대한 편지를 써서 끼워 넣게 했다. 물론 편지도 익명이다. 이후 추천된 책을 전시하고, 각자 고민에 맞는 책을 선택하게 했다. 활동 이후,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생긴 듯했고, 모임에서의 나눔 또한 더 솔직해지고 풍부해졌다. 반드시 책과 관련 있는 활동이 아니어도 괜찮다. 마스크스트랩·그립톡·디퓨저·책갈피·무드등 만들기 등 도서 주제와 전혀 관련 없는 활동들도 독서모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독서 모임은 주로 진행자(학생)가 주도하고, 대신 나는 사전에 ‘월간 독서지도안’을 작성하여 나누어주는 형태로 진행했다. 독서지도안에는 주간 독서목표가 포함되어 있어, 학생들이 무리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독서계획을 따를 수 있도록 했다. 몇 차례 모임을 거듭하면서 처음에는 독서지도안에 있는 질문만 이어가던 아이들이 기발하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와, 감정이 풍부하지만 사랑받지 못한 곤이의 이야기인 『아몬드』를 읽은 후였다. 아이들은 “아무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곤이 같은 때가 있었는가?”, “두려움·공포가 아니라, 사랑·행복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떨까?”, “내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 때도 많은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할까?”, “윤재, 곤이, 심 박사, 윤 교수 중 나는 누구와 가장 닮았는가?” 하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아이들의 질문과 대답을 들으면서, 나 또한 윤재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의도적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습관이 너무 뿌리 깊게 배어, 의도치 않게 진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감정적 분리에 익숙해져서, 마치 감정의 분리가 제2의 감정이 된 듯하다. 아이들의 질문은, 끊임없이 감정의 파도가 몰아치는 세상에서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온기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고자 했던 단순한 내 의도 이상의 것이었다.
이것이 독서 모임의 진정한 힘이고 묘미이다. ‘가르치는 사람’과 ‘학습자’라는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업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지는 ‘수동적’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교환하면서 스스로 성찰하는 ‘능동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독서 모임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통적 교육의 경계를 뛰어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단순히 정보를 흡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풍부하게 학습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책이 가져다주는 순수한 즐거움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평생 누릴 수 있길 소망한다.
★ 학생 독서 모임 추천 도서 ★
· 경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최강의 실험경제반 아이들』, 『10대를 위한 머니 레슨』
· 고전: 『노인과 바다』 『달과 6펜스』, 『이방인』, 『데미안』
· 인문: 『하면 좀 어떤 사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법』, 『천국으로의 70마일』,
『저 많은 돼지고기는 어디서 왔을까?』, 『플랫폼 경제 무엇이 문제일까?』,
『좋아요가 왜 안좋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10대를 위한 총균쇠 수업』, 『우리가 폭력이라 부르는 것들』
· 소설: 『소금아이』, 『아몬드』, 『기소영의 친구들』, 『페인트』, 『스피드』, 『귤의 맛』,
『가짜 모범생』, 『긴긴밤』, 『살아남는다는 것』, 『열기구가 사라졌다』, 『회색인간』,
『열다섯에 곰이라니』
· 예술: 『클래식 사용 설명서』, 『미술관 읽는 시간』,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
『컬러愛물들다』
· 에세이: 『초록색 범벅 인간』, 『베개 위의 수목원』, 『철학이 내 손을 잡을 때』,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열일곱 살의 인생론』,
· 그림책: 『문 밖에 사자가 있다』, 『올리브와 레앙드르』, 『유리 아이』, 『괜찮을 거야』
『피노키오, 어쩌면 모두 지어낸 이야기』, 『까마귀 소년』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안녕, 나의 등대』, 『우리는 지금도 친구일까?』
· 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마음챙김의 시』, 『너의 하늘을 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