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학부모들의 독서모임
“말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닙니다.”
매년 학기 초, 학부모 독서 모임인 「○○책방」의 시작 때마다 외치는 말이다. 3년간 구성원의 큰 변화는 없었지만 매년 새로운 회원을 맞이하면서 기존 회원의 동의를 얻어 처음 모임에서 간단히 이야기할 기회를 가진다. 학부모 독서 모임에는 대체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모이는 경향이 있고, 아이들과 관련된 문제가 섞이기라도 하면 종종 감정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말은 사람 그 자체는 아니다.’라는 말은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즉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타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 또한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각은, 말할 때 그 의미가 감소하기도 하고, 말을 듣는 사람에 의해서 변하기도 한다. 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한계를 인식함으로써,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이 거부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수용할 수 있게 한다.
학부모 독서 모임은 ‘독서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자녀 및 이웃과 소통하는 삶’을 목표로 했다. 학부모 독서 모임에는 독서를 통해, 또래 엄마들과 소통하고 연결되기를 위한 목적으로 모이기도 한다. 따라서 모임은 엄격하게 책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필사 및 낭독, 문화 체험, 창작 활동 등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 좋다. 모임 구성원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다 보면, 나누는 이야기가 비슷해질 수 있고, 이는 피로감을 주는데, 다양한 활동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했다. 종종 <책 ‘파이 이야기’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책 ‘오만과 편견’과 영화 ‘오만과 편견’>,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영화 ‘컨택트’>와 같은 원작 도서와 영화를 보는 활동은 일상에 지쳐있는 어머니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지역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작가와의 만남이나, 특색 있는 책방 탐방도 독서의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다.
「○○책방」에 참여한 부모님들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글쓰기에도 관심을 보였다. 자연스럽게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을 함께 읽고, 간단히 글을 쓰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의 글을 망설임 없이 공유하는 사람은 없다. 글을 쓰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고, 글에 녹아 있는 서로의 삶에 함께 눈시울을 붉히면서, 조금씩 장벽은 허물어졌다.
대부분 글을 쓴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므로, 어렵지 않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사진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먼저 자신의 핸드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고, 그 사진에 10분간 몰입한다. 이후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을 30분간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 글 쓰는 시간을 너무 길게 잡은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자신의 감정과 삶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데 보여준 용기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W 어머니는 네 식구가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맞춰 입고 서로를 껴안은 채, 활짝 웃으며 찍은 흑백 사진을 골랐다. 아빠, 아들, 엄마, 딸이라는 키 순서대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진은 보기만 해도 훈훈했다. 그러나 이 따뜻한 사진을 보며 그녀는 부모님에 의해 가해진 어린 시절의 상처를 회상했다. 그녀의 글에서는 쓰라린 기억들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게 해 준 존재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이 잔잔히 흘러나왔고, 스스로에게 전하는 고마움과 부모님에 대한 이해로 끝맺음 되었다. 짧은 글에 수십 년간 꽁꽁 싸매고 있던 상처와 감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글의 행간과 여백을 통해서도, 미처 표현하지 못한 그녀의 상처의 깊이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언어적 의사소통을 넘어선 ‘말 없는 연대’였다.
K 어머니는 뼈대만 남은 겨울나무 아래, 새하얀 눈을 담요 삼아 덮고 있는 벤치 사진을 골랐다. 눈의 마법인지, 차가운 겨울을 감싸고 있는 새하얀 눈의 그림 같은 풍경은 내 마음도 따뜻하게 했다. 평소 겨울 산을 오르는 강인함과 낭만이 있는 분이셨기에 눈처럼 반짝이는 겨울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림 같은 사진을 보며, 현실적으로 만족스러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몰아치는 공허함과 쓸쓸함의 근원을 찾지 못해 괴롭다고 했다. 봄이 오고 눈이 녹으면 벌거벗은 가지와 볼품 없이 젖은 축축한 의자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언젠가 마주하게 될 자신의 황량함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놨다. 그녀는 새하얀 종이 위에, 감정의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돌보겠다는 약속을 엄숙히 새겼다.
짧은 시간에 자신의 부서지고 무너진 상처들이 드러났다. 그저 두서없는 글로 토해내고, 묵묵히 들어주며, 이따금 조심스레 눈물을 훔쳤을 뿐인데, 조금씩 자신의 상처에 얇은 딱지가 앉는 듯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이 구성원들을 더 하나로 묶이는 계기가 되었다.
3년간의 독서 모임을 통해, 책은 단순한 종이 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안식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통해 공유된 삶의 경험과 치유의 여정은 구성원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했고, 이는 다시 자기표현의 길을 여는 통로가 되었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는 변화의 기회를 만날 것이다. 모임에 따뜻함과 진정성을 불어넣어 주신 학부모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현직 사서의 학부모 독서 모임 추천 도서 ★
· 글쓰기 관련: 『글쓰기의 최전선』,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쓰기의 말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유혹하는 글쓰기』,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 자녀교육 관련: 『사랑의 욕구』, 『사춘기 멘탈수업』, 『SKY로드맵』, 『전교1등의 책상』,
『우리 아이 미래를 바꿀 교육 키워드 7』
· 동기부여 관련: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원씽』, 『10배의 법칙』,
『네 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라』, 『그릿』
· 관계 관련: 『데일카네기 자기관리론』, 『말그릇』, 『미움 받을 용기1,2』, 『사람을 얻는 지혜』
· 경제 관련: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부의 추월차선』, 『돈의 심리학』
· 경영 관련: 『역행자』, 『백만장자 메신저』, 『시대예보』, 『2000년 생이 온다』
· 고전: 『노인과 바다』 『달과 6펜스』, 『이방인』, 『데미안』
· 인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백년을 살아보니』,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 소설: 『맡겨진 소녀』, 『가녀장의 시대』, 『순례 주택』, 『바깥은 여름』, 『자기 앞의 생』,
『올리브 키터리지』, 『나무를 심은 사람』, 『맡겨진 소녀』
· 에세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 『숲 속의 자본주의자』,
『슬픈 세상의 기쁜 말』, 『꿈꾸고 사랑했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그림책: 『마지막 거인』, 『구름을 키우는 방법』,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그 소문 들었어?』, 『컵고양이 후루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