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우주가 건네야 할 이야기
인생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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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시지는 소설가 야마다 무네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등장하는 메시지다.
희극과 비극의 위태로운 줄다리기의 삶을 살다 간
주인공 마츠코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연결해주고 있다.
영화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파편들이
한 여자의 정서와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그리고 평생을 어떻게 사랑에 목말라하며 불안한 선택으로
살아가게 하는지 처절하게 보여준다.
마츠코는 아픈 동생에게 가족의 사랑을 빼앗기고
늘 슬픔이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을
단 한 번이라도 웃게 만들고 싶어,
기괴한 표정을 짓고 온몸을 던져 유쾌함을 가장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자 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그녀가 찾고자 했던 것은 단 하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사랑'이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이 처절한 서사를 역설적으로
화려한 색채와 경쾌한 음악으로 풀어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과연 이 '혐오스러운' 여자를
정말로 혐오할 수 있는가 되물어 본다.
얼마 전, 나는 우연히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많이 듣거나
'훈육할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상처의 말들'이라는
리스트를 보게 되었다.
그중 몇 가지 말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넌 항상 왜 그 모양이야?”
“너 때문에 엄마(아빠)가 화나잖아.”
“도대체 누구 닮아서 그러니?”
“옆집 누구는 잘만 하던데 넌 왜 그래?”
“너 때문에 진짜 실망이다.”
“네 맘대로 해! 엄마(아빠)는 이제 안 도와줄 거야.”
“엄마(아빠) 말 안 들을 거면 이 집에서 당장 나가!”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니?.”
“먹여주고 입혀준 걸 감사하게 생각해”
이 리스트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나도 자주 썼는데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반응과,
"이 말을 안 하면 대체 무슨 말로 가르치냐"라는 반응이었다.
아마 이런 말들이 일상적이고,
훈육의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에 자란 부모 세대는
이러한 대화가 당연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인격체를 부정당하는
아픈 언어임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은 타인도 듣고 싶지 않듯이
지속적으로 아픈 언어를 아이들이 듣고 자란다면
정서적 불안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본래 유쾌하고 순수하다.
그러나 성장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누구나 자기만의 고집과 주장을 갖게 된다.
이때 부모라는 우주가 안정적인 정서와
자아존중감을 먼저 내어준다면,
아이들은 그것을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습득하며 자란다.
반대로 부모의 감정 기복에 따라 기준이 늘 바뀌고,
비난과 보상심리가 섞인 말들이 쏟아지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성인만큼이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도 이러한 스트레스가 사고와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경고한다.
뇌가 한창 발달해야 할 시기에
부모가 아이의 사고력과 집중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성인이 되어서도 유사한 상황 앞에서
판단력과 집중력의 저하가 나타난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일상적 스트레스에도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진하는
‘상황에 무기력한 성인’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누구든 상대의 기운을 누른다고 해서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운은 흐르는 것이기에 소멸되지 않고
저장되었다가 삶의 특정 타이밍에
오히려 강렬하게 터져 나온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강하게 튀어 오르는 스프링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감정으로 아이를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회라는 큰 우주에서 아이가 안전하게 유영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훈육에 있어 '명확한 기준'을 세워두면 큰 도움이 된다.
다음의 6가지 기준은 단순히 아이를 통제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다.
한 인간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최소한의 안전선이자, 현대 아동심리학과 발달 이론이 강조하는
‘정서적 경계선(Boundary)’을 바탕으로 정리한 가이드라인이다.
안전: 아이의 행동이 자신 또는 타인의 신체적 정신적 안전을 위협할 때
건강: 위생, 건강을 해치는 행동이 반복될 때
권리: 타인의 소유나 권리를 명백히 침해했을 때
존중: 타인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언행이 있을 때
질서: 공공의 규칙을 어겨 주변에 실질적인 피해를 줄 때
정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을 선택했을 때
이런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명확한 지침 덕분에
부모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그 외의 사소한 것들은 작은 소사회인 학교나 친구들 사이에서
스스로 부딪히며 습득하도록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 도움 된다.
그리고 말로 하는 충격 요법이나 지나친 통제는
오히려 역효과를 부른다.
부모가 그 역효과를 얼마나 빨리 깨닫느냐에 따라
아이와의 소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부모는 잘못된 방식이 효과가 없음을 알면서도,
'이것도 사랑'이라는 착각 때문에 오히려 그 강도만 더 높이곤 한다.
그럴 때는 내가 내뱉은 말을 반대로 내가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상황을 회피하기보단
그 말의 '형태'와 '표현' 자체만 놓고 보는 것이다.
그 말을 타인이 나에게 했을 때의 기분을
선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픈 언어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다.
즉,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타인을 먼저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부모도 사람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과업과 현실의 벽 앞에서
때로는 지치고 힘든 시험에 든다.
아이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자리는
아이를 다그치고 체벌하는 자리가 아니라,
아이의 결이 어떤지 유심히 바라봐 주는
'관찰자'이자 ‘안내자’인 것이다.
정서적 불안을 대물림하는 대신
아이와 부모 사이에 자존감의 대화가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아이는 스스로 그 쓰임을 더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지하고 자랄 수 있다.
그렇게 아이도 '관찰자'로 자라기 때문이다.
어른으로서 실수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숙함을 가진 우주,
아이가 선택한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책임감을 심어주는 우주,
늘 사랑한다는 말로 아이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그런 부모의 우주가 되어 준다면 말이다.
모든 인간에겐 혐오스런 일생은 없다.
다만 혐오스런 말과 행동이
한 사람의 일생을 망가뜨릴 순 있다.
그래서 작가도 말한다
이 소설의 원문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혐오스런 보다 혐오받은 에 가깝다고
아이는 부모에게 찾아온 손님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우주를 무너뜨릴 권리는 없다.
대신 그 우주가 스스로 빛날 수 있도록 묵묵히 곁을 지켜줄 수는 있다.
그러니 지금 내 곁의 아이에게,
그리고 그 시절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상처 입은 채 멈춰버린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도
이 한마디를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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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온의 숲 열여덟 번째 이야기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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