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신비로운

가장 게으른 본능이 빚어낸 형태

by 유온의 숲






생명을 키워낸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아주 힘들고 거칠며, 가치 있고 신비로운 일이다.


보잘것없는 작은 씨앗이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것도

스스로 자라나는 힘만으로는 어렵다.

주변의 수많은 기운과 에너지가 있어야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태를 만들어간다.


창작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형태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창작자는 보이지 않는 희미한 점 하나가 주는 힌트를 붙잡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까지 밀어붙인다.


오직 그 에너지 하나로 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생명이 자라나면서 느끼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고통과 많이 닮았다.


모든 이의 안에는, 크기와 모양을 알 수 없는

고유한 창작 능력이 잠들어 있다.

그 능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따라오며,

필요할 때마다 마치 구세주처럼 찾아와

“여기 있어, 마음껏 써.”라고 손을 내민다.

물론 끝내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지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끄집어내어 완성하는 과정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조금씩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내 안의 거대한 세상을 창조하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다.


때로는 방향을 바꿔야 할 때도 있다.

주는 듯 빼앗고,

흔드는 듯 밀어붙이는

수많은 주변의 기운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온갖 역풍으로

나를 흔들어 놓은 뒤 여러 갈래의 길을 열어주며

선택을 유도하기도 할 것이다.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며,

어떠한 방향으로 선택하든

좋은 쪽으로 흘러갈 수 있게

거칠고 신비로운 터널을 지나야 한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에는 어둡고 긴 침잠이 덮쳐오기도 하고

긴 시간 동안 응축된 에너지를 품었다가

다시 열정으로 쏟아내기도 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느리고 게으르고 본능에 충실하며,

이성의 중심축을 유지하려고

매일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흔들림이 있어야 창작의 시간이 더 가치가 있다.


무언가를 만들고 창작하는 과정은 생명과 닮아 있고,

내면의 시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오늘의 창작 또한 허투루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게으른 본능이 빚어낸
거칠고 신비로운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유온의 숲 일곱 번째 이야기 Dream



#에세이 #소설 #작가 #크리에이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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