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을 애순과 관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복잡한 인간을 구별짓는 정의에 관하여

by 월간 텍스트

정치 이슈로 세상이 시끄러워지면서, 광화문이 두동강 났다는 말은 이제 새롭지도 않은 뉴스가 됐습니다. 문제는 이 두 집단을 정의하면서 표면으로 드러나는 단어들인데, 부상하고 있는 2030 여성과 남성이 그 주인공입니다.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국회 앞 주역들은 주로 2030 여성인 반면 광화문과 여의도를 가득 매운 반대 집회에서는 2030 남성이 많이 보인다는 건데요.



그러면서 뒤집어 쓰게 된 프레임이라는 것이, "2030 남성은 미개하고, 생각없고, 양심조차 없다고 한다" 라는 이야기 입니다. 혐오의 시대에 걸맞는 표현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미개한'이라는 형용사를 던지자마자 '이대남'과 '이대녀'의 갈등은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양새랄까요.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젠더갈등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한국리서치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64%가 젠더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도 "남성과 여성 두 성별만 존재하는 것이 행정부의 공식 정책이 될 것" 이라고 설명했지요.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존의 거버넌스를 완전히 뒤바꾸는 발언이기도합니다.


인간을 생물학적 성별로 구별하게 된다면 남과 여, 둘로 구분하는게 일반적입니다. 이 구분이 층위를 만들어내는 것이 문제인데, 층위는 차별을 만들어 내니까요. 책 '젠더와 사회'에서는 현대로 올수록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엄격한 성 역할 구별로 억압을 느끼는 '남성'이나 스스로 느끼는 성 정체성이 사회가 허용하는 범주와 맞지 않아 갈등을 겪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책 <젠더와 사회>


여성들도 군대에 가야한다는 단골 멘트와 그 뒤에 따라 붙는 출산의 책임은 뫼비우스의 띠 처럼 반복되는데 단순히 그게 다가 아니라 이 책을 읽어보면 이 갈등의 역사가 꽤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성별의 편을 드는 투쟁의 역사가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오랫토록 조망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달까요.

이를 테면 여성 안에서도 차별은 일어납니다. 흑인 노예 출신으로 노예제 폐지 운동에 앞장섰던 소저너 트루스는 어느 날 연설에서 여성이라고 다 같겠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기 앉으신 신사 분은 여자들이 마차를 탈 때 도와주어야 하고 도랑을 건널 때 번쩍 안아주어야 하고, 어디서든 가장 좋은 자리를 여자에게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제가 마차를 탈 때 도와주거나, 진흙 웅덩이를 건널 때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제게 좋은 자리를 내주지 않은 것을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저는 여자가 아닙니까?" -16p


1960년대 미국 나사(NASA)에서 일하는 흑인여성들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히든피겨스>에서는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의 실상을 그렸습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800m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써야만 하는건데요. 리더가 찾을 때마다 자리에 없었던 주인공에게 역정을 내자, 화장실 때문이라며 토로했습니다.


"이곳에는 화장실이 없어요. 이 건물엔 유색 인종 화장실이 없고, 웨스트 에어리어 전체에도 없어서 800m를 나가야 해요. 알고 계셨어요? ... 근무 복장도 무릎길이 치마, 힐, 심플한 진주 목걸이. 그딴 목걸이 없어요. 흑인에게 진주 목걸이 살 월급을 주긴 하나요? 그런데 밤낮으로 개처럼 일하면서, 모두가 만지기도 싫어하는 커피포트로 버티고!... 그러니까 죄송하지만 하루에 몇 번은 화장실에 가야겠어요"

- <히든피겨스> 극 중 대사


인종 뿐만이 아니라, 이념과도 결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젠더와 사회>에 따르면 독일의 남성 사회주의자인 엥겔스는 결혼 및 가족제도에 역사적 유물론을 적용했는데요. 엥겔스는 사적 소유와 계급이 가족과 국가를 통해 재생산되는 구조를 분석했으며 여성 억압의 해법은 바로 사적 소유관계를 폐지하는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능력을 통한 주류 사회의 진출이 용이해진 상황에서 여성들의 경쟁력과 경쟁심 또한 강화되고 있다. 때문에 집단적으로 여성들이 경험하는 구조적 차별들에 대해 운동에 대한 반감이 증대된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능력이 있고,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 차별은 이제 종식되었다고 선언되기도 한다. 자신들이 '해방'되었다고, 남성과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여성운동이나 페미니즘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피해자'화 한다는 이유로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경향도 강해진다. -76p


중요한 것은 젠더가 단순히 여성성과 남성성의 동등한 '차이'를 구조화 하는 것이 아니라고 책은 말합니다. 분명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존재하나 그 차이를 서로 반대되거나 결합할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 등으로 구분하고, 가치판단이 개입되면서 그 과정에서 둘 간의 '위계'가 만들어진다고요.


답답한 마음에 저는 요새 흥행중인 애순과 관식의 이야기 '폭싹 속았수다'를 떠올립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이 드라마는 두 남녀 주인공이 고생을 극복하고 살아나가는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제주의 해녀문화를 입는 과정, 6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종합적으로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보다 소로 태어나는 게 낫다"는 대사가 대표적인데요. 애순의 어머니가 해녀로 살다가 순직한 후에도 애순의 딸을 해녀로 만드려는 시댁의 결정은 무자비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애순의 꿈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시인이 되는겁니다. 작은 아버지는 "계집애가 공부해서 장손의 운을 빨아먹는다" 며 앞길을 막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은 애순 대신에 부잣집 아이에게 급장자리를 주기도 합니다. 끝내는 시집간다던 '서울 놈'은 온데 간데 없고 가족 돌봄에 평생을 바치는 인생이 펼쳐지지만, 그 또한 기꺼이 꿈을 꺾고서 아궁이 앞을 벗어나지 못하기로 한 선택입니다.


"열여덟 엄마는 엄마를 잃고 엄마가 됐고, 열아홉 아빠는 금메달 대신 금명이 아부지가 됐다. 그들의 봄은 꿈을 꾸는 계절이 아니라 꿈을 꺾는 계절이었다. 그렇게도 기꺼이"


무엇보다 중요한건 이 삶의 궤적에 무쇠처럼 늘 옆을 지키는 남성이 있는데, 바로 관식입니다. 관식은 아무말 없이 아내와 딸의 밥그릇에 보리콩을 올려주고 아내 애순의 꿈을 지켜주기위해 노력하죠. 애순을 향한 순애보는 평생을 조력자로 살 수 있다는 각오를 나타냅니다.


"근데 그 금메달요, 순금도 아니래요. 금뎅이도 아닌 거 뭐 할라고 기를 써요? 이제 그냥 안 따도 돼요. 애순이 때문에 백 바퀴 뛰었어요. 생선 팔아서는 서울 못가고, 공부로는 택도 없고. 운동이라도 하면 데려갈라나 싶어서 백 바퀴 뛰었지 어떤 미친놈이 그거 뛰어요? 아, 그리고 사실 저요, 운동 싫어해요. 체질도 아니고 피똥 싸게 해도 4등이고. 금을 짝으로 준대도 애순이 아니면 안했어요"


저는 남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간의 이야기로, 그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간에 젠더 갈등이 시대가 입힌 상흔이라고 보면, 또 그 거품들을 모두 걷어내고 처음으로 빙 돌아가보면, 서로에 대한 순수한 마음만 남을텐데요.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들만의 노스텔지어를 꿈꾸는 인간들이 서로에게 힘이되고 위로가 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면요. 기꺼이 우리는 할 수 있는게 더 많아질텐데 하고 아쉬워지는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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