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이야기를 찾아서

타인에 대한 의식과 '듣기'에 대하여

by 월간 텍스트

그러니까 늘 바쁘기만 한 직장인들은 특히나 저같은 경우는 이렇게나 화사한 봄을 맞이할 때 문득 '아, 내 나이가 몇이더라'하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지낸 무방비 상태에서 바뀌어 버린 계절이 자명종처럼 머릿속을 울리더란 말이죠. 매일밤 잠못이루지 못 해 쓸어 넘겼던 수많은 쇼츠들을 생각하면서 그 중 기억나는 것이 있는가 되짚어 보면서 말입니다.


출처: 매일경제


그러나 딱히 기억나는 콘텐츠는 없습니다. 남편도 '쇼츠는 중독'이라며 자제하라고 하지만 책 읽던 좋은 습관을 어느새 파고 들어와 엄지손가락만 까닥이는 안일함이 찾아오고 몇 시간을 날리고서야 자책하며 잠에 듭니다.

굳이 쇼츠가 아니더라도 저는 많은 정보와 트렌드에 노출되어야 하는 직업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인지, 나약한 인간의 본성때문인지 자주 제 이야기를 잊고 삽니다.


그나마라도 돌파구가 되어줄까 싶어 마흔이 되기 전 늦으막히 석사공부를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돈 안되기로 유명한 국문과 학사를 나와 17년간 돈 안되기로 소문난 시사 교양 PD로서의 삶을 살다가 불현듯 내 이야기가 없다는 공허함에 시작한 일이었죠. 물론 직업병인지라 사안을 볼 때 매사 문제의식을 가지거나 시사성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습관 하나는 남겼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먹고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나만의 이야기를 찾는 건 인생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니 어쩔 수 없이 서점 가판대에 끌리는 책 제목들을 관찰해 봅니다.


책 <서사의 위기>


앞서도 살펴 봤듯이 단편적인 뉴스와 화젯거리에 몰두하게된 언론들은 물론, 저도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만은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되는 환경에 놓였습니다. 대학교 입학 면접에서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만) '발전하는 첨단 기술이 미래 산업으로 촉망받는데 어인일로 인문학도가 되시겠다는 것인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19살의 저는 호기롭게 '첨단 기술은 인문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지요. 휴머니즘에 대한 묘한 선망과 거창한 묘사가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20년 후 저는 챗 GPT에게 아이템 구성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묻곤합니다. 감정 묘사도 꽤나 그럴 듯 하더군요.


한병철 작가는 책 <서사의 위기>에서 경험이 사라진 곳, 구속적이거나 지속적인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에서는 벌거 벗은 삶, 즉 생존의 문제밖에 남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존재의 지속성은 자기의 지속성에 의해 보장된다며 이 자기의 지속성은 시간의 파편화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중심 시간축을 형성한다고요.


신자유주의적 성과 서사는 모든 사람을 스스로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게 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과의 경쟁 속에 존재한다. 성과 서사는 사회적 응집성, 즉 우리를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연대뿐 아니라 공감까지 해체한다. 자기 최적화, 자기실현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서사 또는 진정성은 사람들을 고립시킴으로써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자기 자신에 대한 숭배를 좋아하고 스스로가 지도자인 곳, 모두가 스스로를 생산하고 스스로를 공연하는 곳에는 안정적인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126p


그러니까 빠르게 언론과 정보들이 디지털화 되면서 사라진 경험의 세계는 당장 눈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같은 텍스트 저 아래로 침몰해버린지 오래입니다. 미국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 나오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면 저는 '괴물이 사는 지옥'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를 그릴텐데 말이죠. 아무튼 잃어버린 그 세계는 우리를 각자도생의 길로 이끕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보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 모르겠으나) "자기를 뽐내는 수많은 말들"로 넘칩니다.


이 또한 올드하기 그지없지만 저는 '작은 목소리에 더 귀를 귀울여야한다'는 당위적 문장을 좋아합니다. 특히나 언론사에서는 더욱 지켜져야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작가의 말대로 삶은 정량화가 가능한 사건들로만 이야기 될 수 없기 때문이죠. 심지어 작은 목소리를 지닌 주체들은 큰 목소리를 낼 여력이 없는 경우가 다반수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아웃풋을 빅데이터화하는 편리하기만 한 현시대의 언어는 그들을 더욱 등지게 할뿐 어떤 힘도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책> 모두가 듣는다


또 가수 루시드폴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JTBC 뉴스룸 엔딩곡으로 쓰였던 루시드폴의 '아직, 있다'를 처음 접했을 때 잔잔하고 평화로운 만큼 큰 울림을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주에 내려가서 감귤 농사를 짓는다는 것도 그다운 선택이다 싶었는데, 얼마전에 새로운 산문집을 내셨기에 얼른 집어들었습니다.


음악과 소리에 대한 에세이로 세상 무해한 노래를 만들어내는 장인 정신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음악적 교양이 부족해 이해하는데 다소 어려움은 있었지만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있어 편한대로 읽어도 좋을 것 같았고요. 무엇보다 이 책 한 챕터의 글귀들이 앞서 언급했던 '나를 찾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타자를 유심히 듣는 이들도 있고, 듣지 않는 이들도 있다. 듣지 않는 이들은 결코 자신을 기울이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향해 기울이기만을 원하거나, 혹은 강요한다. 그런자들이 권력을 쥐면 사회는 불행해진다. 불행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세상에 묻힌 소리를 널리 알리라는 소명을 띤 자들도 본령을 잊은지 오래되었다. 그들은 작은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 도리어 권력자가 맡긴 귀마개로 사람들의 귀를 틀어막는다. 그사이, 누군가는 조용히 사라지고 누군가는 삶을 부정당한다. -58p


챕터의 제목은 <나를 기울이면>. 한병철 작가가 말하는 모모와도 비슷합니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는데 바로 '듣기' 였다"며 모모의 우호적이고도 사려 깊은 침묵은 상대를 자기 혼자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었을 생각으로 데려간다고도 했습니다.


인도출신 음악가 안수만 비스와스는 '듣는다는 건 세상과 함께 춤을 추는 일' 이라고 했다. 다 함께 춤출 수 없는, 말하기 중독에 빠진 세상이 온 건 아닐까. 그런 세상은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한 건 듣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듣지 않는 말은 쌓이고, 말이 쌓이면, 썩는다. - 59p


살아나갈 때 겪는 수많은 우연들과 터지는 뉴스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달했던 지난날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을 지속하는 힘은 아마도 '나를 찾는 이야기'라는 레일에 올라탄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못해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 시작은 어쩌면 타인에 대한 의식, '듣기'부터 해보는게 좋은 힌트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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