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을 향한 욕망에 대하여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방과 수도권의 부동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CR리츠를 도입하는 등 공급대책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였습니다. 저도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해보는 특집 토크쇼를 기획했었고요. 하지만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미미한 반응에 이내 규제를 꺼내들었습니다. 초고령화는 가속화 되어가고 지방은 소멸위기에 닥친지 오래입니다.우리에게 양극화는 일상이 되어버렸고요.
문제는 서울 내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강남 아파트는 언제까지 오를거냐며 눈쌀을 찌푸리지만 대다수는 당장 내 집 마련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디까지일지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매스컴에서는 조식이 제공되는 고급아파트를 소개하며 시선을 끄는데 성공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적 박탁감을 불러일으키는데 한 몫하고요. 무주택자는 불안한 길목에서 이 상황을 지켜볼 뿐입니다.
실제로 제 피부에 와닿는 일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하더군요. 전세 거주자인 저도 만기가 다가오면서 강남 외 다른 지역의 매물을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는 토지거래허가제 해제로 강남권이 급상승하자 주변부의 집주인들도 치열한 눈치 싸움 중이라며 하룻밤 사이 1억은 우습다고 했습니다. 저도 딱히 그 아파트를 살 엄두는 나지 않았으나 이 가격은 말도 안된다며 집을 파는 사람으로서도 권하지 않는다고 조언했어요. 로제의 <아파트> 라는 노래는 경쾌하고 즐겁기만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기묘한 현상을 생각하다가 대한민국 중산층의 웃지 못할 흥망사를 적어 낸 책 <아파트 게임>을 떠올렸습니다.
이 책은 중산층으로 도약하기 위해 아파트를 사고 파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았는데, 다소 심각하게 보일 수 있지만 현상을 분석하는 책이 아닌 개개인의 시야로 들여다 보는 소설같은 책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이야기로 현상을 담으려면 많은 사례자들이 있어야 할텐데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소설들의 주인공들을 적극 활용했거든요.
작가는 박완서의 소설을 인용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밥벌이에 나서야만 하는 가장, 삶의 무게를 양 어깨에 짊어진 채로 고개 숙여 '산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어른"이라고 말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위한 서울 아파트를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로 여기는 어른들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수는 약간의 배짱과 뚝심을 뒤섞어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 엄격한 확률의 세계에서 풀어야 하는 수학이라고 표현했고 그 치열한 수싸움은 지난합니다.
이 책이 나온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일화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정부 대책의 모습과 비슷한데 판교 신도시의 공급 물량이 서울 집값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 아파트 가격을 들썩이게 했다는 점도 그렇고, 마침내 과세 정책을 꺼내 든 모양새가 더욱 그렇습니다. 당시 정부는 실거래가 등기부 등재, 1가구 2주택 50% 양도세 중과, 5만 가구 규모의 송파 신도시 건설과 더불어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을 실거래가 9억원 이상 아파트에서 6억원 이상의 아파트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삼았습니다.
초고령화를 먼저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데요, 우리나라의 800만 베이비부머 못지 않게 많은 숫자인 일본의 단카이 세대가 은퇴 후 도쿄 중심으로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노후 대책에는 그만한게 없다는 것이겠죠. 책에서는 정치 개혁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K씨의 사례를 보여주면서도 (결국 개혁에 실패하자 바로 신도시 아파트를 매수하지만) 잃어선 안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마지막 인간상처럼 보였습니다. 요새는 그마저도 보기 힘들어서, 그러니까 정치적 신념보다는 중산층으로의 마지막 사다리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당연해진 시대가 되어서 그 때의 기묘한 현상은 더 기묘해지는구나 싶었거든요.
그들의 첫 번째 세대는 근로소득을 능가하는 자본 이득의 중요성에 눈을 떴고, 두 번째 세대는 전세를 지렛대 삼아 아파트 한 채를 더 보유하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세 번째 세대는 수도권 일대의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자신들에게는 앞 세대와 같은 자산 증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시달렸다. 이러한 편차에도 이들의 수학에서 변치 않는 공리의 역할을 해준 것은 "실패하지 않은 건 끊임없이 지어지는 아파트뿐"
-52p
실제로 저금리를 앞세운 은행의 영업 방침, 금융 자본의 지원 사격을 받는 건설사의 사업 전략, 그리고 경제적 불확실성에 노출된 중산층의 재테크 전략, 이 삼각관계의 역동적인 흐름안에 바로 “그녀의 프리미엄” 이 자리 잡고 있었고, K 씨의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중산층 소비자들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93p
2023년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진으로 무너진 서울의 모습을 그립니다.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 생존자들은 그 안에서조차 계급을 나누는데요. 식량 부족 등의 문제로 외부인들은 내쫓기기에 이르렀고 전세와 자가로 신분을 나눕니다. 물론 그 와중에는 이타심을 발휘하다가 궁지에 몰리는 인물들도 그려지고요.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주변 고급 아파트인 '드림 팰리스' 주민들에게 차별받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어느 유명 아파트에서는 외부인 출입을 막는 불법 담장 설치를 추진하거나 입주자 간 맞선을 주선하기도 한다는데, 영 다른 세계의 이야기는 아닌듯 합니다. 다소 과격한 피해 의식을 드러냈던 주인공 영탁(이병헌 역할)은 과거 전세사기의 피해자였음이 밝혀지기도 했고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같은해 대종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본 어느 출연자가 왜 모두가 왜 동일한 규격에 들어가 동일한 장소에 누워 잠을 자는걸 자처하는지 모르겠다며 가끔은 윗집에 사는 누군가가 같은 자세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다고 상상하면 조금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좋을게 없는 아파트에서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편적으로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기묘한 현상이지만 우리 삶의 깊은 욕구에서부터 축적된 역사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요. 참 쉽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