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남지 않은 탄핵심판, 우리에게 필요한건?

헌법 정신과 용기에 대하여

by 월간 텍스트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겠지만은 또 한 번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곧 선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전히 분열의 골은 깊고, 어떤 이들은 정치 이야기에 환멸을 느껴 관심조차 두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9년간 정치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다가 최근 1년간은 경제 교양을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정치 이슈에서 멀어지니 오히려 속이 편하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이렇게 표현하기는 다소 과격할수도 있겠지만 정치의 언어들이 점점 수준이하가 되는 모습이었기에 그 메시지를 가공해 담는다는 것이 어쩌면 헛수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경제 콘텐츠에 대해 깊이 알면 알수록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정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계엄 사태로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는 폭락했습니다. 무엇보다 동맹 보다는 전략적 이득이 먼저인 트럼프 정부와 외교를 펼칠 대표자가 없어 앞으로가 더 암담할지도 모르고요.


출처 : 노컷뉴스


그래서 저는 책 <헌법을 쓰는 시간>을 다시 펼쳤습니다. 책에서는 권력을 '절대 반지'라고 표현하는데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의 속성을 보면 이 힘을 이용할 시 그 사람의 영혼을 타락시킵니다. 통제되지 않은 권력이 갖고 있는 암흑의 경고라고 표현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권력의 마지노선인 헌법에 기대어 그 결과를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헌법이 마지노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 위에 존재 하는 '최고의 법' 이기도 하겠지만 최종적 효력 역시 국민에게 의존합니다. 그 자체로는 강제력이 없다는 이야깁니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마찬가지였고 촛불을 든 시민들이 그 내용 그대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믿을 때 비로소 존재하고 효력을 발휘합니다. 이 책에서는 헌법을 권력을 제한하는 장치로 보고 그 원칙을 여섯가지 기둥으로 설명합니다.


<김진한 헌법을 쓰는 시간 책 표지>

그 첫 번째는 법치주의 입니다. 이는 법에 따라 다스린다는 원칙이 아니라 권력통제와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의 모든 원칙들의 총합체임을 말합니다. 법의 정당성은 '사실'이 아닌 '당위'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원칙이 바로 서야 사실과 적용하여 처벌을 하든 판단을 내릴수 있겠지요.


두 번째는 민주주의 입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역사적 순간을 지난번에 우리는 보았습니다. 최근 이러한 속성을 잘 아는 이들이 법을 무력화 시키기 위하여 정치적 활동을 하는 이유도 헌법의 이러한 원칙 안에서 설명될 수 있겠지요.


세 번째는 권력 분립입니다. 최근 개헌 논의가 한창입니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모인겁니다. 권력 구조를 바꾸고자 임기를 단축한다거나 4년 중임제를 채택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물론 옳고 그름은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겠지만은 두 번의 비극을 시스템의 문제 제기 없이 넘기는 것도 어려워 보입니다.


네 번째는 자유의 원칙들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완벽하게 보장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며 어떻게 어디까지 보장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조정하는 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죠.


그 밖에 표현의 자유, 우리가 직면한 헌법재판 제도도 있습니다. 헌법재판 제도가 무조건 완벽하진 않다고 쓰여있긴합니다만 원칙이 아닌 제도라는 점에서 우리가 정말 막바지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겠지요. 이 모든 원칙들을 지켜줄 제도적 장치가 결국 헌법재판 제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존F 케네디. 용기 있는 사람들> 책 표지


또 하나, 헌법 정신을 지키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최근 지인에게 추천받은 존F. 케네디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떠올렸습니다. '진정한 용기'가 없어져가는 현실에 씁쓸해 하던 그 분의 옆 모습도 함께요. 이 책은 정치적 이익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옳은 선택을 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옳은 잃을 하는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미국 JFK 재단의 '용기 있는 사람들 상'을 공동으로 수상했습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하는데요. 이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용기는 단순히 외교적 성과에 그치는 것은 아닐테죠.


"오늘날 정치적 용기에 대한 도전은 전에 비하여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거대한 힘으로 충만되어 있으므로 평판이 나쁘거나 정통적이지 않은 방향은 존 퀸시 애덤스마저도 1907년에 한창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을 때조차 상상하지도 못했을 종류의 항의의 폭풍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

"우리들의 정치 생활은 큰 돈이 들게 되었으며 무척 조직화되었고, 직업적 정객들과 선전원들에 의하여 강력히 지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자주적인 정치행동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의 꿈은 선거 또는 여러 현실적 성과의 필요 앞에서는 무참히 깨져버린다."

(중략)

"그러므로 앞으로 여간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가 강한 적과 싸워나가는 데, 살아 이겨나가는 데 필요한 결정이 어렵고 인기 없는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

-50p


존F. 케네디는 과거 우리의 정치 생활 속에 깃들어졌던 용기의 본질을 잊은 국민은 오늘날 그들의 지도자가 용기를 가질 것을 바라지도 못할 것이며, 또 설사 그들의 지도자가 용기를 가졌다하더라도 그 용감성에 보답하리라고 여겨지지도 않는다며 우리는 용기의 본질을 잊고 있다는 말을 서두에 올렸습니다.


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기사를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 쓰여질 당시보다 더 어려워진 환경입니다. 극한의 개인주의와 정치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 그들만의 일로 내버려 두기에는 어딘가 허전해지는 이유겠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두 권의 책 <헌법을 쓰는 시간>, <존F. 케네디의 용기 있는 사람들>을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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