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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Aug 30. 2020

1.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꿈을 꾸다

인생의 중반이 시작될 때 난 아부다비라는 곳에 있었다. 바로 옆 도시인 두바이가 더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아부다비는 이슬람국가이자 세계 5위의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 연합국(U.A.E)의 수도이다.

  

아부다비에 있을 때 사막을 여러 번 다녀왔다. 사실, 아부다비 자체가 사막 위에 건설된 도시라 도심만 조금 벗어나면 온통 사막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제 인생에 진짜 사막이 펼쳐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가본 사막은 예상보다도 더욱 뜨겁고 황량한 곳이었다. 피할 만한 그늘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타들어 가는 태양 아래 푹푹 빠지는 모래 위에서는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힘들었고, 수시로 불어오는 모래폭풍에는 눈조차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인생에 그러한 사막이 펼쳐졌다. 평생 정상을 향해 오르는 인생을 살아왔던 나는 사막을 만나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흔들렸고, 방향을 잃었으며,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사막을 걷게 되면서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산보다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고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사막이 어쩌면 인생과 더 닮았음을 알게 되었고, 그 흔한 길 하나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막 가운데에서 비로소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열망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의 욕망을 제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왔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부다비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는 사막 사파리라고도 불리는 사막 투어를 했을 때였다. 광활하고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황금빛 모래사막 위를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질주할 때의 전율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최대 60m가 넘는 모래언덕의 완만한 경사면을 최고속력으로 올라 반대편으로 내려갈 때면 몸이 붕 뜨면서 무중력 상태에 놓인 듯 짜릿한 긴장감을 경험하게 된다. 찰나의 무중력이 존재하는 그 순간 모래언덕 사이로 언뜻 보이는 사막의 일몰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낮의 열기가 가신 자리에 오묘한 빛으로 가득한 저물녘 사막의 모습은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움이었다.

사막 사파리는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것부터 시작된다. 사륜구동 차량 바퀴의 접지 면적을 넓혀 차가 모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타이어에 바람이 가득하면 좋을 것 같지만 사막에서는 만약 바람을 빼지 않으면 땅에서 운전할 때와는 달리 얼마 가지 못해 모래에 빠지게 된다. 

들뜬 마음으로 처음 사막 사파리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 일행이 탄 차량은 이미 타이어 바람을 뺐음에도 불구하고 모래 구덩이에 빠지게 되어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그 경우에도 필요한 일은 타이어 공기압을 더 낮추는 것이었다. 평탄한 땅에서 운전할 때 필요한 기술은 부드러운 모래 위를 운전할 때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너는 데 필요한 것은 자신의 힘부터 빼는 일이다. 자신의 생각과 방식대로 무언가를 이루려 할수록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문제 해결은 더디기만 해진다. 나의 뜻과 계획을 내려놓고 조금은 떨어져서 상황을 보려 할 때 오히려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되고, 게다가 덤으로 사막에서의 석양과 같은 삶의 아름다움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나는 인생을 높은 산에 오르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산에 오를 수 있을까?’ ‘남보다 더 빨리 산에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질문이 인생의 목표였다. 그러나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막을 걷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의 사막에서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고, 성공이 목표가 아니라 승리하는 삶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빅터 프랭클이 “성공을 목표로 하지 마라, 성공을 목표로 겨냥할수록 빗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성공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저절로 따라오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성공을 목표로 하는 삶이 반드시 승리의 영광을 가져다주진 않는다는 의미이다. 


직장에 입사하는 것보다 보람 있는 직장생활이 더 중요하며, 결혼 그 자체보다 참된 결혼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가치 있다. 아이를 낳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결국, 어떤 순간에 더 높고 화려한 곳에 도달하는 것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호흡으로 사막을 건너는 것이 승리자의 모습이다. 어렵고 힘들게 산 정상을 오르고 나면 남아 있는 일은 내려가는 일뿐이다. 더 이상 좁은 정상에 서 있을 수 없다.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길을 비켜주어야만 한다. 높은 정상에 빨리 가려 애쓴다는 건 결국 더 빨리 내려와야만 함을 뜻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공’이 아닌 ‘승리’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그 무언가를 바라보며 채우고 채워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들에 목말라할 것이 아니라, 비록 보이지 않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을 갈망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와 명예는 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필요한 가치들이다. 만약 인생이 사막과 같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러한 가치들에 이끌리지 않음을 경험하게 된다. 사막에서는 부와 명예보다는 동행, 배려, 헌신 등의 가치들이 중요해진다. 화려하고 비싼 장신구를 걸치고 혼자 사막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누군가와 함께라면 남루한 옷을 입었더라도 사막을 건너는 것이 훨씬 쉬운 까닭이다.

    

“나는 한 알의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하리라.”

화가 폴 세잔이 한 유명한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과를 그려서 파리와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일까? 세잔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세잔이 그린 사과는 마치 사진처럼 사과의 모습을 현실에서 똑같이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기하학적인 형태와 대담한 색채를 통해 바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해석한 사과였다. 만약 눈에 보이는 대로, 보이는 모습에 충실한 것을 목표로 했다면, 세잔이 그린 한 알의 사과에 결코 파리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법이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보이는 성공에 머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승리의 삶을 갈망하게 된다. 사막을 건너는 데 값비싼 옷과 명품 구두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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