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한샘 Aug 20. 2021

영화 속 교육이야기 3 - 어바웃 타임

우리의 교직 인생에 후회가 없도록...

멜로 영화의 고전이랄까? 오늘 소개할 영화는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영화 어바웃 타임이다. 러브액츄얼리, 노팅힐을 만든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작품이니 만큼 달달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달달함 뿐만 아니라 사실 교육적으로도 많은 인사이트를 남긴다. 만남과 헤어짐,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는 법, 시간과 기회 등등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명작이 아닐 수 없다.   


 어바웃 타임은 한 이상한 집안의 이야기에서 시작 된다. 그 집안의 남자들은 만 20세가 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어두운 옷장 같은 곳에 혼자 들어가서 과거의 장면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면 정말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원하는 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과거를 수정하면서 영화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펼쳐낸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어긋났다가 시간 되돌리기를 통해 다시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가게 되는 이야기가 영화의 큰 축이다. 이 영화에서 명장면을 꼽으라면 단연코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던, 비 오는 결혼식 장면. 그리고 아버지와의 이별 장면이라 할 것이다. 더 이상 스포는 하지 않겠다. 


영화속에는 다양한 매타포가 사용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옷장은 참 많은 상징성을 갖는다. 옷장안은 우리가 잘못했을 때 숨는 곳, 내 내면의 어두운 곳, 등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저지른 실수 그리고 잊고 싶은 과거를 떠올리기에 딱 알맞은 장소 말이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나만이 몰래 혼자 존재하는 어두운 내면의 공간 말이다. 


혹시 교직생활을 하면서 우리도 옷장 속으로 들어가 두 주먹을 꼭 쥐고 과거로 돌아가서 되돌리고 싶은 사건들이 있는가? 나는 있다. 그것도 20여 년전 초임 시절의 일이다. 열정 넘쳤던 초임시절, 40명이 넘는 2학년 아이들을 맡아 가르쳤었다. 그 중 잊혀 지지 않는 한 아이의 이름이 있다. 문호선, 그 당시 호선이는 2학년이지만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난독증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나는 호선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방법은 모르고 열의만 넘쳤다. 그래서 그냥 아이를 남겨 놓고 글자를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그러나 호선이는 주말을 지내고 오면 지난주에 배운 한글 내용을 다 포맷(?) 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호선이는 그러기를 몇 주를 더 반복했고, 나는 체벌문화가 남아있던 20년전 방법대로 지도했었다. 호선이가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가 배울 때 집중을 하지 않아서, 또는 집에 가서 복습을 하지 않아서 인줄 알고 아이를 호되게 혼냈었다. 반드시 한글을 떼고 올려 보내겠다는 초임교사의 열정은 지나쳤고, 2학년짜리 어린 아이는 선생님이 무서웠다. 결국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호선이는 2학년을 다 마치지 않고 전학을 갔다. 내 교직인생 첫 번째 전학생이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 나보다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한 학급에 40명이 넘었던 그 시절, 난독증이 생소 했던 그 시절에 아마도 호선이는 지속적인 학습부진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지금은 찬찬한글도 있고, 읽기자신감도 있어서 충분이 호선이와 같은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읽기자신감과 찬찬한글 책을 들고 초임 시절로 돌아가 친절하게 호선이를 다시 가르치고 싶다. 호선이는 이제는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청년이 되어있겠지만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시간을 몇 번씩이나 되돌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찾고, 문제를 바로 잡는다. 그러나 그도 돌려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불가능함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역시도 달라져 버리는 미래(자기 자녀) 때문에 돌리 수 없는 과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과거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과거를 되돌리기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다. 나의 실수나 실책을 되돌리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으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 얼마나 많은 경우에 내 내면의 옷장 안으로 들어가서 주먹을 꼭 쥐고, ‘내가 그때 이럴걸~’,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때 그것만 안했더라면...’ 하고 후회하며 자신을 자책하거나 남을 원망하는가?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시간여행을 했던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주인공은 더 이상 후회 없이 하루를 살기로 마음먹지만, 과거로 돌아갈 능력도 없는 우리는 여전히 후회하며 옷장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사)좋은교사운동에서 나는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해 학업이 뒤쳐진 아이들을 위해 “우리반 기초학력 구출 40일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이제 까지 좋은교사운동이 일하던 방식과 다르게 다른 기관(기아대책)에서 2천 만원의 후원금을 따내서, 회원뿐만 아니라 비회원들에게 까지 혜택을 주고 있다. 신청 10분 만에 “읽기 유창성”의 신청이 마감되는 높은 관심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일대일 결연 캠페인 안에 읽기 학습 지원 파트를 새롭게 넣어서 일대일 결연 아동 중에 읽기 학습이 어려운 아이가 있으면 연수와 교재를 지원해 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제2, 제3의 호선이를 돕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들이다.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 호선이를 가르칠 수 없다.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약 그때 호선이와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까지 열심히 기초학력 프로젝트에 온힘을 쏟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나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된 일은 아니지만, 그 때의 내 경험과 미안함이 지금 100여개 학급 2,000여명의 학생들을 지원하는데 큰 동력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나와 같이 실수하는 교사 호선이와 같은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하고 신중하지 못한 나는, 아마 또 후회할 말, 행동,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 사과 하고 고칠 수 있는 일들이라면 그 즉시 시정하거나 고치겠지만, 아마도 그렇지 못할 일들도 살면서 많이 일어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 그 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게 된 일들 말이다. 허술한데,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나는 그럴 때면 또 다시 나만의 옷장에 들어가서 주먹을 꼭 쥐고 머릿속 시간여행을 하며 후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젠 나이가 들어서 일까 조금씩 받아들이려한다. 더 이상 시간여행은 그만 하련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것을 잊지 않고 오늘의 최선으로 만들어 나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속 교육이야기 2 - 쿵푸팬더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