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공부하고 싶은 인문학 여행지
2월 15일
조식, 숙소 라운지에서 빵과 커피로
국립고궁박물원
베트남쌀국수로 점심
국립대만박물관
얼얼바 평화기념공원
딘타이펑(딤섬, 자장면, 야채볶음밥, 찐빵) 저녁
타이베이 101빌딩 전망대
둘째 날 아침, 습도는 높지만
저녁 비행기로 날아와 자정 넘어 청핀슈띠엔(성품서점)을 방문한 새벽 피로는 아침 기상 시에 씻겨 있었다.
새로운 땅을 밟는 여행의 피로는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나도 씻겨진다. 하루에 대한 기대감, 설렘이 몸을 정화시킨다. 간밤에 마신 타이완비어의 시원한 맛도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클릭호텔은 작은 숙소였지만, 외국인 여행객이 선호할 만한 아기자기한 라운지가 있다. 커피와 잼을 바른 빵을 먹으며 5층 창밖의 뷰를 감상할 수 있다.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행복해졌다. 서툰 영어로 다 먹은 접시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직원에게 물으니, 잘 알아듣고 안내해 준다. 도쿄, 홍콩, 교토에 이어 네 번째 해외여행에선 나는 여행에 필요한 영어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걸 상황에 부딪쳐 가며 경험한다. '고맙다'는 말도 '탱큐'보다 현지어로 말하는 게 유익하다는 것도. 그리고 왜 에어리즘 내의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얇은 겉옷을 입긴 했지만 숙소 밖에 나와 내딛는 첫걸음에 습한 공기가 얼굴에 불어와 히트택을 입은 데 대한 거부감을 일으켰다(대만 여행은 2월 중순에 했지만, 이 글은 7월 1일에 쓴다. 지금 서울 공기가 당시 대만 공기와 비슷하다^^).
타이완의 지하철 <지에윈>
타이완의 지하철은 지에윈이라고 부른다. 재빠르고 신속하게 운행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의 대부분은 지에윈을 이용했는데 무척 편리했다. 서울매트로 또한 국제적으로 편리하다고 알려진 지하철이지만, 지에윈이 한국 지하철보다 나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상상 이상으로 대만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질서 정연하다. 사선으로 승차 줄을 서는데 하차하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는다. 물론 새치기도 없다. 지하철 천정이 높아서 실내공기가가 아주 쾌적하다. 특히 환승할 때 환승로가 필요치 않을 만큼 건너편 전동차로 바로 연결된다. 우리의 잠실역처럼 길고 긴 환승로를 만나 본 적이 없다. 설계 시부터 불편한 요소를 배제한 지능적인 지하철이란 생각이 든다. 내부도 아주 시원하고 노약자, 장애인 좌석 구분도 색깔로 잘 표현되어 있다. 노선의 역명을 이름보다 큰 숫자로 표기해서 외국인 여행객이 확인하고 이동하기에 편하다. 프리 와이파이도 잘 잡혀 배려받는 느낌이 든다. 일단 지에윈 좌석에 앉으면 안정감이 들고 낯선 목적지로 이동하는 마음이 편하다. 여행 책자를 보면 지에윈에서 금지사항이 있는데 일체의 음식물, 물이나 껌, 사탕조차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발견되면 벌금을 문다니 유의해야 한다. 동물과 동반 승차도 안 된다. 애완견을 데리고 여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지에윈을 타기 전에 이런 주의사항은 잘 알아두는 게 좋다. 아는 만큼 편리한 것이 여행이니까. 한편, 지에윈의 자전거 편의 시설은 잘 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고급 자전거로 알려진 자이언트가 대만 브랜드다. 주말이면 각자 자전거를 갖고 지에윈을 타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라이더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언젠가 일본이든 대만이든 자전거 여행을 도전해 보고 싶다.
국립고궁박물원
중국 5천 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은 중국에 있지 않고 대만에 있다. 그 역사는 이러하다.
1933년 일본군의 침략으로 유물의 도난과 국외 유출을 우려한 당시 국민당은 자금성에 있던 유물을 난찡을 거쳐 상하이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이때 고궁박물원의 유물 13,291 상자가 운반되었다. 중앙박물관의 유물 6,066 상자도 함께 옮겨졌다. 국공합작의 대일전쟁 중에 역사 유적지 곳곳에서 고찰과 발굴 작업을 벌여 유물을 보태기도 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지방 곳곳에 분산되어 있던 유물을 춍칭으로 집중시키고 난찡으로 운반했다. 그러다 1948년 가을, 국공내전의 형세가 마오쩌뚱의 공산당에게로 역전되자 장제스는 핵심 유물을 선정해 타이완으로 옮기기로 했다. 공산당과의 내전 중에도 국민당의 장제스는 중요 유물을 각별하게 보호해서 지금의 국립고궁박물원에 전시할 수 있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편 장제스의 국민당 패잔병이 타이완으로 후퇴할 때 마오쩌뚱은 최후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유보한다. 장제스가 중요 유물을 싣고 간다는 정보를 듣고 폭격을 하지 말라고 했다. 중국 역사가 담긴 유물을 싣고 장제스 군대가 타이완으로 피신한 것이 마오쩌뚱의 폭격을 피해 무사히 타이완에 정착하게 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총건평 1만 9,504제곱미터에 5개의 큰 홀과 30여 개의 전시실을 갖춘 4층 건물인 고궁박물원은 1965년에 개관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뉴욕의 매트로폴리탄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박물관과 함께 세계 5대 박물관에 꼽힌다.
워낙 유물이 많아 모두 둘러보는 데 3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영구적인 전시와 일시적인 테마 전시로 구분 지어놓고 순환 전시하기 때문이다. 소장품과 시설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하니, 타이베이에서 우선 꼭 가야 할 곳으로 정할 만하다.
여행 책자를 통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미리 파악하고, 효율적인 동선을 짜두는 게 좋다. 나는 돈이 들더라도 음성안내기의 안내를 받는 편을 택한다. 언제 다시 오지 못할 곳을 짧은 시간에 충분히 공부하는 데는 한국어 서비스 편의장치를 활용하는 게 남는 것이다. 1층의 102관에 오리엔테이션 갤러리가 있다. 박물관 역사가 연대기별로 소개돼 있는 이곳을 들른 뒤 3층부터 보는 것이 좋다. 중국 고대 황실 유물과 신비로운 소장품을 보는 기분은 마치 내가 황실의 일원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대표적인 것은 취옥백채라 부르는 옥으로 된 배추와 육형석이라는 고깃덩어리 모양의 청나라 유물이다. 중국인의 옥 사랑은 각별하다. 여러 전시실에서 옥으로 만든 세밀한 유품들이 관람객의 눈을 호강시켜 준다. 2층은 고대 예술의 결정체인 도자기가 있고, 1층은 고대 문명의 탄생을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전시돼 있다.
2018년 3월 기준 고궁박물원의 소장품은 총 697,554점이다. 그래서 중국을 알기 위한 박물관을 가려면 타이베이에 가야 한다.
나는 여행지에서 가장 먼저 박물관부터 가보는 것이 그 나라의 숨결을 경험하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관광지여서 많은 사람을 겪어야 하지만, 다시 가더라도 꼭 들러야 할 1순위다. 단, 규모는 크지만 교토국립박물관에 비해 좀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조용히 과거로 여행하는 타임머신의 장소는 아닌 것이 아쉽다. 제발 전화 통화 좀 조용히 하고, 복잡해도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면 좋으련만...
고궁박물원은 유물만 있지 않다. 나는 여행지의 핫스팟보다 한적하고 고유한 분위기가 담긴 산책로를 좋아한다. 교토의 철학의 길처럼 잘 조성된 산책로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만나면 신비의 세계에 들어온 쾌감이 든다. 그 소소한 기분의 감탄사가 값진 소확행이 아닐까. 여행지의 길 중에 신비롭지 않은 곳은 없다.
대만은 음식의 천국이라고 한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전에 미리 '맛있는 타이완'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지만 매 끼니를 그렇게 채울 순 없으니 시간과 이동의 용이를 위해 점심은 박물관 부근의 시장에서 베트남쌀국수를 먹었다. 대만에 와서 베트남쌀국수라니... 그래도 패스트푸드점보다는 나았다. 타이완만의 세련된 퓨전요리는 다음에 경험하기로 하고.
국립대만박물관(궈리타이완보우관)
오전에 고궁박물원을 보고 나서 또 박물관에 갈 생각은 없었다.
타이완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마주하려고 얼얼바 평화기념공원(228 찌니엔관)에 도착 후 들어간 건물이 국립대만박물관이다. 고궁박물원에 비해 작은 곳이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08년 10월 24일에 세워진 건물로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라고 하니 그 고풍스러움에 호기심이 더해져 들어가 보았다. 외관은 경희대 본관이 떠오르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그리스 신전 분위기다. 개관 당시 '타이완총독부박물관'으로 정치 관료들의 모임 장소로 이용되었다. 약간 덕수궁 느낌도 난다. 박물관은 왠지 작은 곳, 한적한 곳이 정겹고, 고궁박물원을 보고 왔어도 설렌다. 과거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지 않은가.
사실 이 터는 청나라 때 사원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일제 총독부 건물에서 현재 국립박물관으로 시대의 변화에 쓰임새도 달라졌다. 박물관 내에는 유명한 건축가(?)의 설계 전시와 타이완의 문화, 역사, 생물의 종류 및 자연현상에 관한 전시물을 볼 수 있었다. 2층에 타이완 원주민의 생활상에 대한 자료가 전시돼 있는데 사진과 유물, 마네킹을 보면 아메리카 인디언과 몹시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
얼얼바 평화기념공원을 둘러보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좋다.
얼얼바 평화기념공원(타이베이 228 찌니엔관)
얼얼바는 228이다. 1996년 2월 28일에 2.28 사건을 추모하고 사과하는 의미로 조성되었다.
대만 여행 시리즈의 첫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우리의 제주 4.3 사건과 같은 대만의 비극적 역사를 마주하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담배를 파는 노파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관료에게 항의한 시민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발화된 시민운동이 발단이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고 무력 진압으로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일어났다. 국민당 지배체제의 부패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전국적인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무고한 시민이 학살되고 많은 지식인이 투옥되었다. 그 희생자만 1만 8,000명에서 2만 명으로 추산되니, 대만의 모든 가구에 피해자가 있는 피의 역사다.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이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얼얼바 평화기념공원, 기념탑, 기념관이 건립됐다. 그러나 2.28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은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국민당은 고인인 장제스에게 떠넘기고 있다.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깊은 위로가 연결되는 진정한 반성은 공휴일 선포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장제스의 독재자로의 비난은 2.28 사건과도 연결돼 있다.
대한민국 세월호는 어떤가? 왜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명확한 수사는 공중에 붕 떠 있는지... 유가족들은 저렇게 진실규명을 외치고 있는데 그들의 소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왜 허공에 맴도는지...
지금은 시민들을 위한 편안한 쉼터로 조성된 얼얼바 평화기념공원에서 중국 대륙 출신의 국민당 정권과 토착 원주민 사이의 평화는 어떻게 이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경제력 신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하려 한다면 박정희가 남긴 저급 정치와 도덕적 부패만 남지 않을까. 패잔병의 반공으로 대만으로 이주했다가 기득권의 친공이 된 국민당을 보면, 경제에 목숨 건다는 건 눈을 가리는 짓이다. 도덕성이 담긴 진실한 정치만이 국민의 행복과 경제 동반 성장을 안겨 줄 수 있다.
딘타이펑
얼얼바 평화기념공원을 둘러본 뒤 다음 장소인 타이베이 101빌딩으로 이동했다.
저녁 식사를 101 빌딩 1층의 딘타이펑에서 해결했다.
다행히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에 대기 번호 50번 안에 들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50번을 훌쩍 넘겨서 입구에 식사 대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딘타이펑이다. 101빌딩에 대한 얘기보다 딘타이펑 얘기를 먼저 해보자.
입구에서 아주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직원이 안내해 주길래, 어쩌면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는지 여쭤봤다. 그분은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착석하자 깔끔하게 차려입은 홀 직원도 간단한 한국어를 능숙하게 말하고 듣는다. 여기가 한국 식당이라고 해도 될 만큼. 너무 배고프고 맛있어서 딤섬이 나오자마자 몇 개 집어 먹고 사진을 찍었다. 주변 다수의 테이블에 한국말이 들린다. 젊은 대학생 친구들끼리 온 관광객도 있고 가족 여행으로 온 분도 여럿 있었다. 맛은 그야말로 최고최고!!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퍼지는 육즙이 일품이다.
101빌딩 전망대에 오르기 전 딘타이펑에서의 식사는 필수 코스다. 이 신비롭고 이색적인 타이완에서의 딤섬은, 잘 먹어야 편하게 볼 수 있고 많이 볼 수 있다는 진리를 알려준다.
타이베이 101빌딩 전망대
높이 508미터의 타이베이 101빌딩은 지하 5층 지상 101층이다. 2004년 12월 31일 완공 당시 세계 최고의 마천루였다. 2010년 1월 3일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명성을 이어갔다. 지금 세계 최고는 두바이에 있고 잠실타워가 4위, 10위 권 안에 중국 본토 빌딩이 몇 개 있다. 하지만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대만 사람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이 작은 섬에서 지반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마천루를 올렸으니 말이다. 지금도 12월 31일 자정에 터지는 불꽃 축제를 보려고 세계 각국에서 취재진과 관광객이 101빌딩으로 몰려든다고 한다.
타이완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리주위엔이 설계했고 신비스러운 옥빛이 감돌며 대나무 죽순과 같은 외형을 지니고 있다. 8층씩 묶어 총 8단으로 올려져 있다. 8은 발(發)과 발음이 비슷하여 성장, 번영, 발전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만 경제 성장의 상징과 같은 빌딩이다. 이 빌딩의 매력을 체험하려고 가는 곳이 바로 89층 전망대다. 5층에서 티켓을 판다. 티켓을 사더라도 바로 올라가지 못한다. 길이가 만만치 않은 줄을 서는 데도 대기 시간이 걸린다. 매표소에서는 89층 전망대의 시야가 어떤지 알려주는데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복잡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기 시간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서는 줄 주변에 여러 상품 가게들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여기서도 옥으로 된 예쁜 물건들을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무려 분속 1,010미터로 37초 만에 89층까지 올라간다.
89층 전망대는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타이베이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마치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다. 망고 음료를 할인해서 사 먹을 수 있다. 관람객을 위해 101빌딩이 건축되는 과정이 담긴 영상을 상영하는데 타이완 사람들만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여행객이 유독 많다.
다행히 91층 옥외 전망대를 개방하여 이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서 신비로운 분위기에 심취할 수 있었다. 천상에서 얻는 오묘하고 이색적인 그 기분은 표현하기 어렵다.
88층에는 댐퍼라고 하는 680톤의 추가 101빌딩을 강풍과 지진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한다. 이 댐퍼가 마치 예술 작품처럼 보여 많은 관광객이 놓치지 않고 둘러보고 있었다. 12월 31일 새해를 알리는 불꽃쇼는 어떨까?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그 야경을 보러 다시 오고 싶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잠시 회상에 젖기도 했다.
괴로운 시간 많았어도 이렇게 101빌딩 91층 옥외 공간에 있으니 자신에 대해 뿌듯해진다. 열심히 살다가 떠나온 여행의 풍미가 이런 것일까.
이틀 동안 타이베이 여행에서 얻은 자극은 일본과는 또 다른 환상과 현실이었다. 일본이 우리와의 역사로 얽힌 감정의 나라로 공부하고 싶은 다면적인 곳이라면, 타이완은 중국 역사와 얽힌 경제 부국의 섬으로 과거와 현재를 공부하고 싶은 인문학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 날 밤에도 편의점에서 산 타이완비어로 숙소에서 잠들기 전 시간을 시원하게 채웠다. 특히 기분 좋은 건 타이베이에서의 시간이 이틀 더 남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