쳥핀슈띠엔, 아시아 최고의 서점부터 가보다
2월 14일 첫날
저녁 7시 45분 출발 EVA항공(아시아나 라운지에서 저녁 식사)
타오위안 공항 10시쯤 도착
공항철도로 이동
숙소인 클릭호텔 체크인
쳥핀슈띠엔(성품서점) 방문
여행에 대한 소회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은 나이 마흔아홉 겨울에 떠난 도쿄 3일이었다.
브런치 플랫폼에 <내게 선물한 여행>이라는 매거진을 만들어 그 가슴 설렌 도쿄 여행기를 기록해 두었다. 그때 난 20년을 꼭 채운 어머니 간호를 마친 지 한 달여 지난 시기였다. 대학 4학년 졸업시험을 치던 때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신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여 청춘의 시간을 병간호로 보냈다.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내 인생을 매어놓고 산다는 건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들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의대생이 아니지만 식물 상태의 중환자를 잘 간호해 낸 것에 기쁨이 있었고 생기가 있었다. 집 밖에 나갈 시간이 없었고, 나가더라도 간호에 필요한 물품을 사 오거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잠깐 영화 보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내 청춘은 24시간 엄마의 호흡, 손과 발, 욕창은 절대 틈타지 않는 피부, 의식은 없지만 건강한 바이탈 수치에 집중한 채 보냈다. 그 이야기로 책을 냈고, 집에서 간호해 오던 어머니를 병원에 옮겨 계속 이어서 간호하면서 직장을 얻어 일을 했다. 글을 쓰고, 책을 편집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일을 하면서도 내 우선 관심은 어머니 상태에 있었다. 매달 수입은 모두 병원비로 지출했다. 그런 내게 다가온 아내를 만나 결혼해 두 아들을 두기까지 내가 견디고 책임져야 할 일상의 볼륨은 슈퍼파워를 요구했고, 견뎌냈다. 아니, 견딜 수밖에 없었다. 늘 통장은 마이너스였고, 어머니 상태는 미세하게 안 좋아져 갔고, 두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갔다. 나는 가장이면서 병간호하는 아들로 살며 나 자신의 위치는 '늘 참고 견디는 곳'에만 두었다. 괴롭다는 생각이 들어도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병원비도 걱정해야 하지만, 가방에 간호용품을 담아서 병실에 달려가 병원에서 하지 않는 간호를 보충해 드리는 데 정신력과 체력을 써야 했다. 1997년 김영삼 정권 말기에 와상환자가 된 어머니는 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바뀐 20년을 꼭 채운 2017년 가을에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다. 이제 좁은 병상이 아닌 천국에 계신다는 믿음은 내 마음의 짐을 모두 해소시켜 준 감사이면서 이제 나의 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시작점을 선물해 주었다.
그런데 마음이 아팠다. 청소년기부터 어머니 인생을 좀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소원이던 내 삶에서 큰 부담이 덜어졌지만, 잘 갖춘 항구가 아닌 망망대해에 홀로 놓여 있는 기분이 자주 엄습했다. 그때 내게 도쿄 여행을 선물해 주신 분이 계셨다. 그분이 비행기부터 숙소와 여행지, 입장료와 음식까지 모두 책임져 주셨다. 어머니 병원 주변, 집과 직장에만 매여 있던 내 병간호 인생에서 편찮으신 어머님도, 아내와 아이들도 없는 공간에 처음 가보았다. 해외여행이 흔해져 TV만 틀면 <배틀트립>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는데 나는 마흔여덟 살에 여권을 만들어서 떠났다.
이런 신세계가 있다니!!!
도쿄에서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유로웠고 신비로웠다. 꿈 같은 3일을 보내고 귀국한 뒤 첫 여행지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져서 <국화와 칼> 같은 고전부터 일본에 관한 책(특히 김정운 교수의 책들을 독파했다)들을 여러 권 읽었다. 나는 도쿄 여행 후, 어느덧 중년 가장이 된 헛헛한 감정과 친일과 반일로만 구분된 지식 체계를 산산조각 내는 각성이 일어났다. 위로받을 곳에서의 쉼보다는 책임져야 할 현실과의 투쟁이 익숙한 내게 강력하고 신비로운 첫 해외여행의 그리움으로 <심야식당>에 푹 빠져 있기도 했고, <리틀 포레스트> 같은 일본 원작 콘텐츠에 쉽게 동화됐다. 2018년 한 해 동안 내 버킷리스트는 교토에 가보는 것이었다. 교토 여행에 대한 꿈은 2019년 2월에 이뤄졌다. 교회에서 무역업을 하는 집사님이 오사카 출장 계획을 잡으면서 교토 3일 여행을 선물해 주셨다. 사회적기업 창업하며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그때 나는 두 번째 일본 여행으로 천년고도 교토에 다녀왔다. 그리고 교토 여행에서 복귀한 뒤 바로 출발한 다음 여행지가 대만이다.
또 다른 감동이 스며드는 타이완
대만을 공부하고 여행 에세이를 쓰겠다는 앞글에서 밝혔듯이 제국주의 근성의 일본과는 다른 섬나라 대만은 우리와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 한국도 섬처럼 4면이 외부와 떨어져 있는 데다 일제 침략으로 지배당하는 설움을 경험했고, 독재자의 탄압에 고통스러운 역사가 있다. 그러면서 정권 교체를 이루고 민주화와 경제 발전의 샴페인을 터뜨렸고 지금은 저성장시대의 불안과 싸우고 있다. 정치에 민감하고 정체성과 정통성을 중요시한다. 일본이 세운 국립서울대학과 국립대만대학 출신들이 정치권 요직에 있고, 곳곳에 눈에 익은 건물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자, 그런 대만으로 출발한다. 2019타이베이국제도서전 기간에 맞춰 티켓팅해 둔 출발 날짜가 교토를 다녀온 이틀 뒤였고, 나는 이런 호사를 맞이할 줄 꿈에도 몰랐다. 내 속에 숨어 있던 여행에 대한 갈망이 이렇게 채우지는 호사스러운 날도 다 오는구나 하며.
저녁에 한국을 뜨다
대만 여행 첫날의 기록도 서두가 길었다. 동행자와 하루 일과를 마친 시간에 만나 공항버스를 탔다. 저녁은 아시아나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먹었다. 동행자는 스타얼라이언스 VIP여서 동행인인 나까지 공항 라운지 이용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공항 라운지는 최고의 휴식 공간이자 식사 공간이다. 컵을 꽂으면 하단에서부터 올라와 컵을 채우는 맥주를 처음 보았다. 못 먹어 본 와인 한두 잔에 치즈, 카레, 스파게티를 먹는 그 순간이 어쩌면 여행 전체 시간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 아닌가 한다.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우며 설레는 기분과 출발 전 라운지에서의 식사는 그 자체로 힐링이다.
출발 전 서점에서 사둔 <프렌즈 타이완>을 좀 넘겨보다가 영화 일부를 감상하니 곧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다. 밤 10시에 내린 공항에서 여름의 습한 공기가 코로 훅 들어왔다. 입국 수속장에서는 세계 모든 인종이 모여 있었다. 2월 날씨에 맞는 겨울 패딩부터 한 여름에나 어울리는 얇은 슬리브 패션까지 4계절 옷이 모두 줄지어 있다. 나도 패딩을 가방에 넣고 얇은 쟈켓을 꺼내 입었다.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실수를 발견했다. 에어리즘이 아닌 히트텍 내의만 가져온 것이다. 20도 훌쩍 넘는 대만을 겨울 속옷 입고 다니게 됐다. 역시 여행 초보자라 여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전기 콘센트는 110볼트로 잘 준비했다.
타오위안공항의 원래 이름은 창카이섹공항이었다
타이베이에는 북쪽에 타오위안국제공항, 남쪽에 타이베이쏭산(臺北松山)공항이 각각 자리 잡고 있다. 1979년 타오위안공항이 문을 열기 이전에는 쏭산공항이 타이베이의 대표 국제공항이었으나, 현재 쏭산공항은 국내선 전용 공항으로 격하되었다. 우리나라의 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항을 보는 것 같다.
타이완 수도 타이베이(臺北)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타오위안(桃園)현 타오위안(桃園) 시에 위치한 타오위안국제공항은 타이완에서 가장 크고 붐비는 공항이다. 중화(中華)항공과 에바(EVA)항공이 이 공항을 허브공항으로 삼고 있다. 원래 이름은 창카이섹국제공항(중정 국제공항)이었다. 1979년 2월 개항 당시에 대만 초대 총통 장제스의 이름을 따서 창카이섹(中正) 국제공항이라 명명할 만큼 장제스는 중요한 지도자였다.
공항 이름을 정할 때 유명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 단연코 높은 비율이 영향력 높은 정치인의 이름이다.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뉴욕 JFK), 로널드 레이건(워싱턴 DCA), 조지 부시(휴스턴 IAH), 멕시코의 벤티노 후아레즈(멕시코시티 MEX), 프랑스의 샤를 드골(파리 CDG), 케냐의 조모 케냐타(나이로비 NBO), 이스라엘의 벤 구리온(텔아비브 TLV), 인도의 인디라 간디(뉴델리 DEL),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자카르타 CGK) 등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데 창카이섹국제공항은 2006년 최초의 야당(민진당) 출신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집권 시기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총통이 야당 출신으로 바뀐다고 하여 국제공항 이름을 바꾸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장제스에 대한 재평가, 그림자 지우기가 단행될 만큼 평가가 엇갈린다고 볼 수 있다.
24시간 문을 여는 서점, 쳥핀슈띠엔
한국의 2월과 다른, 여름 공기를 마시며 대만에 도착했다는 것을 코로 느꼈다. 10시가 넘었지만 한국과 1시간 시차가 있으니 실제로는 11시 넘어 자정에 가까웠다. 공항철도로 이동해 숙소인 클릭호텔에 도착했다. 타이베이를 여행하기에 딱 좋은 Taipei Travel Plaza 건너편이다.
이미 하루가 지나 새벽 시간이 됐지만,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어 숙소를 나와 택시를 잡았다. 성품서점이라고 쓰인 지도를 택시기사에게 보여 주었다. 왜 이런 시간에 서점에 가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쳥핀슈띠엔을 안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24시간 문을 연다는 것에서 범상치 않다. 쳥핀슈띠엔은 세계 외신들이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서점'이다. 대만에 도착해 첫 방문지가 서점이고 그곳이 쳥핀슈띠엔인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세계 최고의 서점을 출판 편집자로 살아온 여행객 둘이서 첫 관광지로 발을 디뎠으니 말이다.
새벽 시간에 서점에 가보는 경험은 매우 독특했다. 손님이 얼마나 있을지, 그 시간에 일하는 직원들의 인건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이런 통속적인 생각이 스치다가 내부에 들어가자 곧,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24시간 서점이 없을까 하는 부러움이 일렁였다. 시간을 잊고 책을 보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직원들도 낮시간에 일하는 듯 편안해 보였다.
대만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이 섬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알 수 없었을 게다. 대만은 출판 대국이다. 통계에 의하면 인구 대비 신간 도서 출간 비율 579명당 1권으로 영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출판사와 독서 인프라가 탄탄해서 홍콩국제도서전의 대만 출판사 부스에 가보면 우리나라 출판사보다 훨씬 강한 회사들이 숫적으로도 압도한다. 책을 많이 읽는 대만이기 때문에 쳥핀서점과 같은 곳이 가능하다.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인지가 궁금했다. 베스트셀러는 우리와 비슷한 분위기다. 미셸 오바마처럼 저자 파워 강한 책이 보이고 표지 디자인과 띠지가 친숙하다.
낮시간에 서점을 올 수 없는 이들에게 쳥핀서점은 천국이다. 책을 사는 사람보다 읽으러 오는 사람이 많을지라도 말이다. 동선도 잘 계획돼 있고 조명이 차분하여 오래 있고 싶은 기분이 든다. 타이베이 대표 서점의 명성답게 엄격하게 책을 선정해서 진열한다고 한다. 방대한 양의 책들에 놀라면서, 일본 츠타야서점처럼 엄청나게 충실한 잡지 코너에 또 놀란다. 한국보다 종이책이 살아 있다는 것은 잡지 종류에서도 판가름된다.
보통은 늦은 시간까지 카페가 운영되는데 이날은 끝나서 좀 아쉬웠다. 아이스커피 생각 간절했는데. 타이베이에서 늦은 밤에 갈 곳을 찾거나, 비가 오는 날이라면 쳥핀서점이 최고의 관광지다.
종교 도서 코너도 찾아보았다. 서점 규모에 비해 종교 코너는 크지 않았고 그중에 기독교 코너는 더 작았다. 나는 안 좋게 평가하는 조엘 오스틴의 책도 보이고, 반갑게도 김남준 목사님 책도 번역돼 있다. 서방종교 코너에서 한국 저자 책을 보니 애국심도 느껴진다. 우리나라 교보서점에서도 점점 줄어드는 기독교 도서들,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내용이 좋으면서 많이 읽히는 책에 대한 갈망이 편집자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지만, 외벌이 가장에게 힘든 직업이다. 아, 편집자란.
타이완 첫날 새벽에 마신 타이완비어
숙소로 오는 길, 따뜻한 여름밤 공기에 취하는 듯했다. 내일 일정에 대한 기대감도 취기에 한 몫했다. 열대의 나라에 자라는 낯선 나무들, 훈훈한 공기, 여행지에서 채워지는 에너지에 가슴이 설렜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을 샀다. 아, 숙소에서 들이킨 타이완비어의 시원함을 잊지 못한다. 추위가 남아 있는 2월에 따뜻한 여름 바람이 부는 타이베이로 날아와 새벽까지 서점 투어를 마치고 히트택 내의에 흐른 그 땀자국을 씻어낸 기막힌 청량감을.
타이완은 내게 이전에는 모르던 지식을 채우는 신선한 자극,
열정이 사라져 가는 몸에 채워지는 호기심,
그리고 기분 좋은 피로감에 혼합된 기대감으로 힐링의 섬나라로 추억된다. 첫날 심야의 몇 시간 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