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 카라바조를 통해 보는 '얼굴에 책임지는 삶'
이탈리아의 범죄자, 지폐의 인물, 살인범으로 분류되는 화가가 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년~1564년)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건축가, 조각가 그리고 시인이다.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지 7년 후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년~1610년)라는 인물이 태어났다. 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카라바조라는 곳에서 출생했고, 미켈란젤로라는 거장과 동명인 것을 구분 짓기 위해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년~1519년)는 빈치가 그의 고향이다.
카라바조는 유로화가 통용되기 전, 십만 리라에 얼굴이 삽입된 지폐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미켈란젤로에 비해 존재감은 떨어지나 카라바조는 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로 르네상스 시대를 마감하고 바로크 시대를 창시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르네상스 화가와 달리 어둡고 처참한 인생을 살았다. 그가 그린 성화는 성스러움보다 어둡고 사실적이며 고뇌하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승천하는 분위기 없이 죽음만을 표현한 <성모의 죽음>, 어둑어둑한 술집에서 급히 돈을 감추며 부르심을 받는 세리 마태의 모습을 그린 <성 마테오의 소명> 등, 당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사실적이고 빛과 어둠을 절묘하게 사용한 그의 회화 기법은 루벤스, 렘브란트 등 후대 바로크 화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카라바조는 미술사에 전환점을 마련한 거장임에도 20세기까지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오히려 생전에 유명했을 정도다. 당시 사람들은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가지면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가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카라바조가 사망 후 오랫동안 흑역사로 잊힌 까닭은, 그의 삶이 몹시 괴팍했기 때문이다. 내가 종종 쓰는 비유인데, 100미터를 9초 초반에 달려 세계적인 스프린터가 되더라도 트랙 밖에서 개판으로 살면 그의 금메달은 영광스러운가 하는 점이다. 재밌는 사실로 2016년 4월 프랑스 남부의 한 다락방에서 카라바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가 발견돼 1,570억 상당의 가격이 매겨져 화제가 됐다. 그러나 유사한 작품이라는 회의적인 결론에 다다라 프랑스 문화부가 구입 대신 반출을 허용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가 사망한 지 406년이 흘러 그림 한 점이 천오백 억대에 이르니 명화를 그린 천재 화가로서의 가치는 후대에 화려하게 재평가되고 있다.
카라바조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39세의 짧은 인생을 살며 16년 동안 화가 생활을 하며 비참한 도망자 신세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겨 '미술계의 이단아', '근대회화의 창조자' '회화의 파괴자'라는 명칭이 붙었다. 성화뿐만 아니라 거지, 창녀, 남창 등 어두운 속세의 단면을 그림으로 옮기기도 했다.
1600년 스물아홉에 그는 로마 미술계에 갑자기 등단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거리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려 팔면서 이름도 없는 화가의 조수 노릇을 하던 중에 바티칸 건축 책임자이자 미술 애호가인 델 몬테 추기경의 눈에 띄었다. 추기경이 카라바조의 천재성을 발견해 지원해 줌으로 갑자기 당대 최고 화가 대열에 들어서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는 불같은 성격에 끊임없이 스캔들을 일으켰다. 술에 취한 채로 기물을 부수거나 싸움을 벌였고, 상습적으로 도박을 하면서, 허리에 차고 다닌 칼로 사람들을 위협했다. 심지어 말리는 경찰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6년 동안 15번이나 고소를 당했고 감옥에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누가 보면 직업이 예술가가 아닌 깡패라고 할 만했다. 1606년 5월 29일 테니스 경기 도중 말다툼 끝에 젊은 남자를 살해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의 목에 현상금까지 걸려 로마에서 탈옥해 도망쳐 나왔다. 이후에도 1608년 몰타에서 말다툼을, 1609년 나폴리에서 또 싸움을 일으켜 물의를 빚었다. 1610년까지 10여 년간 두려운 도망자 생활을 하다가 언제 잡혀서 교수형을 당할지 모르는 초조함에 피폐한 생활을 하다가 사망했다.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도 천재적 재능으로 기존 화풍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기법과 독창적인 명암법으로 그림을 그려 귀족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을 손에 넣으려는 귀족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분노조절장애의 폭력적이고 어두운 죄인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한 그의 인생에 비해 작품만큼은 극찬을 받은 것이다.
1610년, 살인범으로 어두운 인생을 살던 그에게 교황은 사면을 내린다. 그는 로마로 가던 중 투스카니의 후미진 해변에서 의문사했다. 수 세기 동안 그의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다가 나폴리에서 자객의 습격으로 입은 상처에 자신의 그림에서 나온 고농도의 납 성분에 감염되어 광기에 빠졌고, 그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 작품에서 보듯이 카라바조는 생생한 현실감을 추구하며 아무도 그리지 않던 최초의 것을 그렸다.
바닥에 납작 드러누운 채 쏟아지는 빛에 눈을 감고 앞으로 펼쳐질 사도로서의 시작을 보여주는 듯한 바울(바울의 회심), 무겁게 늘어져 핏기 없는 예수의 시신을 차갑게 훑는 달빛(그리스도의 매장), 성모 신앙을 중시하는 수도회의 주문으로 그렸지만 세간에 큰 충격을 안긴, 신성함은 없고 죽음만 있는 성모(성모의 죽음), 부활해서 오신 예수 앞에 그 어떤 외경심도 표현하지 않은 채 제자들의 호기심만 드러낸 도마(의심하는 도마), 술집에서 돈을 숨기기에 급급한 마태에게 쏟아지는 빛의 부르심(마태를 부르심) 등. 그는 자신이 검증하고 해석한 표현을 거침없이 옮겼다. 살인죄로 고통하며 어둠 가운데 있던 그에게 빛이 내리기를 간절히 원한 것일까. 사람과의 교감에 실패하고 자기 속에 유폐된 채 살던 카라바조 내면이 그의 그림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카라바조의 작품에 등장한 내면의 갈등의 정점이 다윗과 골리앗 그림이 아닐까 한다. 이 그림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가 강렬하다.
먼저 그가 남긴 다윗과 골리앗 그림들을 연대순으로 보자.
그는 '다윗과 골리앗'을 하나의 작품으로 그리지 않았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서 승리한 다윗의 얼굴이 위 두 작품에서 다르게 묘사돼 있다. 1607년 작에는 다윗의 시선과 표정에 성취감을 볼 수 있지만, 3년 뒤 새롭게 그린 작품에서 다윗은 자신이 죽인 골리앗의 처참한 머리를 바라보며 측은한 감정을 표현한다. 이 그림을 그린 당시 카라바조는 살인죄에 대한 불체포 특권을 갖는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지만, 그해 10월 동료 기사와 다투고 수감되어 기사직을 박탈당했다.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어 보르게세 추기경을 만나 사면을 청하던 때였다. 즉, 지금 자신의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삶은 없다는 절박함을 담은 것이다.
그는 종종 자신을 참수의 희생자로 그렸다. 참수되고 있는 세례 요한, 방패 위에 그려진 목 잘린 메두사도 자신의 얼굴을 차용해 그렸다. 반복하여 죄를 지으며 늘 불안했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심리가 그림에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포와 불안의 자신을 죽음으로 그리며 그는 왜 구원의 불빛을 잡지 못했을까.
널리 알려진 대로 카라바조는 다윗의 얼굴과 골리앗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그렸다(소년 다윗의 얼굴은 그의 조수라는 설도 있다). 머리가 잘린 골리앗의 처참한 모습이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다. 소년 다윗의 얼굴에 젊은 자신을 투영해서, 젊은 카라바조가 나이 든 카라바조를 죽인 것으로 이 그림이 해석된다.
다윗과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모욕한 적 장수 골리앗을 이긴 소년 다윗의 기적과 환희에 초점이 맞춰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자신의 인생이 살인과 폭력으로 음울하게 점철돼 곧 죽을 수 있는 심정을 비참한 골리앗의 최후에 그려 넣었다. 그가 성화에 신성함을 담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은 자신의 일상 때문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싸우고, 테니스를 치다가 상대를 칼로 죽여버리고, 방세가 밀려 주인과 싸우고, 여자 모델의 약혼자와 시비가 붙어서 싸우는 등 걸핏하면 싸우고 감정을 못이겨 죽이기까지 했다. 폭행, 기물 파손, 명예 훼손, 살인 등으로 감옥에 7번이나 갇히고 사형 선고가 두려워 탈옥도 수차례 감행했다.
그림에는 천재였지만 삶은 악하기만 했다. 선교여행을 하며 자기의 자랑과 명예를 내려놓고 수차례 매를 맞고 감옥에 간 바울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면서도 성화를 그렸다. 그리고 짧은 자기 삶을 되돌아보니 소년 다윗의 얼굴로 시작해서 골리앗의 얼굴로 생을 마치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본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의 골리앗 얼굴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담겨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자기 인생에 책임지는 얼굴을 살아야 할 까닭을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 그림에서 본다. 나는 소년 다윗의 얼굴로 나이 먹어 가고 있을까, 이미 순간의 탐심과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분출하여 그 죄악이 쌓인 골리앗의 얼굴이 되어 살고 있지는 않은가? 큰바위얼굴과 달리 골리앗의 얼굴을 닮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 순간에 멈춰야 한다. 나를 죽이는 삶이 곧 나의 욕망대로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살인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도피하던 시기에 주로 죽음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서 세례 요한은 피를 뿜으며 죽었고, 성 루치아는 눈이 뽑힌 채 바닥에 쓰러져 있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자신의 죽음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볼 것인가. 다윗도 될 수 있고 골리앗도 될 수 있는 인생을 살면서 어느 쪽을 향해 갈 것인가. 일상을 어떤 삶으로 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된다. 지금이라도 화만 나고 기쁨이 조금도 없고 사랑과 감동이 없는 시간과 공간에 있다면 멈추고 벗어나야 한다.
소시오패스를 제외하고 선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두 모습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사는 우리는 죄를 완전히 없앨 순 없다. 성경은 빛 가운데로 죄를 들고 나오라고 하지, 죄 없이 사는 순도 100% 인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재미없는 드라마가 선인과 악인, 단선적인 인물이 나오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