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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

어느 게시물의 댓글로 쓴 글

by 황교진


저는 자부심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공익적 위치에서 분투하는 많은 분이 자신이 선택한 의미와 가치를 지키는 방법으로 자존심을 한 겹 한 겹 겹쳐서 보호막으로 자부심을 사용하고 있더군요.

자기 가치를 스스로 높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특히 그러합니다.


그 자부심이라는 보호막이 침해당하면 들을 귀가 없는 폭군의 적개심과 공격성 가득한 맹수로 표출되곤 하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니 상대를 악인으로 취급해 버리고 스스로를 지켜야 사명이 존속된다고 생각하죠.


자신이 가진 자부심이 사실은 먼저 점검하고 버려야 할 교만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난과 코스트를 선택한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에 대한 자랑(마케팅)을 계속해서 자부심을 끌어올리거나 일정 부분 유지해야 숨 쉬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 근원이 사실은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과 닮아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작은 교회, 개척 교회, 가난한 교회를 하면서 잇몸을 해치는 치석 같은 자부심을 가진 분들을 종종 접합니다. 사실은 자신의 자부심이 다른 각도로 해석하면 대형 교회의 야망이면서 자신이 비난하는 마케팅적인 수단임을 알지 못합니다. 이미 누군가(?)의 눈에는 뜨이고 있죠.


저는 어머니 소천하시기 5개월 전에 폐렴과 욕창이 찾아왔을 때에서야 20년을 욕창 없이 간호한 대단한 아들이라는 자부심이 뼛속 깊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게 건드려지고 나니, 사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고 그 누구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고백이 일어나더군요. 그 자부심이 다른 사람을 천하게 보고, 나를 우상으로 여긴, 자아중독의 우상숭배였음을 깨닫게 됐죠.



아내가 직접 염색해 주었다. 집에서 아내에게 염색 서비스 받는 남자, 건강한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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