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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과 존중

나는 저렴하지 않은데 왜 무시하고 또 남을 평가하는가

by 황교진

한 주 동안 SNS를 비활성화시켜 두고 잠시 떨어져 있어 보니 책 읽기가 수월해지고, 노트에 손글씨를 쓰고 싶어졌다. 요즘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불안>을 읽고 있다. 2005년 책인데 탁월하다. 나보다 불과 한 살 많은 그의 지식과 혜안에 놀라워하며 많이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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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교보문고에서 펜을 한 자루 샀다. 우측의 펜은 작년에 다이소에서 천 원(만 원 아니고 천 원이다)에 구입한 만년필이다. 카트리지 두 개를 쓰고 버리는 형식이다. 지금 두 번째 카트리지를 넣어 아껴 쓰고 있다. 싼 값의 펜인데도 꽤 부드럽다.


좌측 펜이 어제 산 물건이다. 모나미에서 나온 3천 원짜리 만년필. 카트리지 5개를 3천 원에 팔기에 총 6천 원을 썼다. 연대에서 강의 마친 뒤 나를 위해 선물을 하고 싶었다. 나는 고급 펜은 없지만(지금 내가 지닌 펜 중에 가장 고급은 라미 만년필인데 친구 대현이가 선물해 주어 잘 쓰고 있다. 주로 큐티할 때), 펜을 좋아해도 특별히 고급 만년필에 대한 욕심이 없다. 잃어버려도 부담 없고 괜찮은 필기감으로 오래 쓸 수 있으면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예쁜 라미 만년필에 이름을 새겨 선물하는 취미가 있다.


어제 산 모나미 OLIKA 만년필은 카트리지가 3개나 들어 있다. 집에서 실험해 보니 라미에도 호환이 되고 다이소 INKPOD펜에도 호환 가능성이 있는데 무리하게 껴맞추는 것 같아 시도해 보지는 않았다.

새 펜을 필통에 넣어두니 든든하다. 자꾸 노트에 뭔가를 쓰고 싶고, 부드러운 잉크의 느낌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싸지만 싼 취급을 하지 않는 나 같은 주인을 만난 요 녀석들 보니 '속물과 존중'이란 주제가 떠오른다.



캐임브리지를 나온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속물근성 snobbery'이란 말은 영국에서 182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많은 대학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sine nobilitate(줄여서 s.nob) 즉, 작위가 없다고 적어놓은 관례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 이 말은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향한, 정반대의 의미로 바뀌었다. 상대방이 높은 지위가 아니면 경멸하는 시선이나 마음을 속물근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보면 속물근성은 귀족계급에 대한 관심과 관련 있기 때문에 권력 구조에 따라 존경 대상이 바뀌는 것과 연관된다. 좋은 차, 좋은 집, 거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조아리고, 허름해 보이는 사람은 무시한다.


인간의 에고와 자아상은 터지기 쉬운 풍선과 같아서 외부에서 '존중'이라는 헬륨가스를 불어넣어 주어야 바닥에서 뜨고, '무시'라는 바늘로 살짝만 콕 찌르면 터져 버린다.


무시당할 때 자신의 모든 것이 모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는 이 풍선과 같다. 그래서 자아존중감을 몽블랑 만년필을 소유함으로 얻는 것은 저렴한 모나미나 다이소 펜을 쓰는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는 속물근성을 지니고 있음을 방증한다. 무시당하기 싫어 명품으로 자아존중감을 지니려 하면서 자기보다 낮은 계급을 무시하는 속물근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수시로 이런 권력 구도에서 존경 대상을 바꾸는 열등감은 인생을 두려움에 가둔다. 요즘 노출되고 있는 계급의식의 기득권 욕망도 속물근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 욕망이 곧 사회환경의 종속과 피해의식에 연결돼 있다.


나의 자아존중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늘 마음이 힘들어 금요예배에 왔다. 나는 신앙에서 사랑과 존중을 얻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쓴다. 값싼 펜에서도 위로를 얻고, 내일의 불안보다 오늘의 평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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