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성장해 가는 것이 곧 성공
이틀 동안 쉬고 있다.
월요일은 주말에 회사 행사를 지원한 데 대한 대체 휴무로, 화요일인 오늘은 월차를 냈다. 휴가지만, 난 집에서 신간 출간 일정에 맞추기 위해 원고를 교정하고 있다.
월요일은 어머니 병간호 다녀오느라 거의 하루를 다 보냈다. 병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세차장에 들렀다. 아내가 아이들 태우고 운전하여 장모님 댁에 2주 다녀오는 동안 차에 온갖 흔적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실내에 흘린 것들을 싹 치웠다. 세차하는 데 돈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는 친한 벗의 말이 귓가에 스쳐갔다. 돈 안 들이고 차를 산뜻하게 청소하니 마음도 산뜻해진다.
병원과 세차장에서 땀 흘린 몸을 씻고 오랜만에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었다. 갑자기 가을이 온 것처럼 2주 동안 안 본 사이에 갑자기 커버린 두 아들의 주먹과 발차기를 온몸으로 받아주다가 10시에 재웠다.
정적이 흐르는 밤에 드라마를 몰아서 시청하고 자신감만으로 승부수를 던질 수 없는 세상에 대해 묵상해 보았다. 온갖 작전을 구사하며 다음 단계를 내다보는 드라마 주인공들만큼 열정, 두뇌, 인맥으로 엮인 세상이다. 전문성과 자신감은 기본이어야 한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얼마나 부족함 많은 가운데 여기까지 살아왔던가. 이 생존이 모두 내가 애쓰고 부딪치고 견뎌낸 힘이 아니다.
꼭 뭔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이 시대에 생존해 내는 모든 사람이 성공과 종이 한 장 차이의 삶을 살다가 간다고 생각한다. 살아서 성장해 가는 것이 아무 결과 없어도 대단한 성공과 다르지 않다.
오늘 월차로 쉬는 날, 큰아이가 개학 이틀째 등교를 하고, 아내가 오전에 개인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동안 집안 청소를 했다. 그리고 내가 쌓아 놓기만 하고 몇 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업무 박스들을 정리했다. 버릴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구석구석 청소했다. 땀범벅인 나시티에 반바지 복장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박달동에서 금천구까지 안양천을 달렸다. 얼마나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지 살에 맺힌 땀방울들이 얼음처럼 느껴지며 날아갔다. 금천구 다리 밑에 도착해 공공 운동기구들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집으로 와서 씻고 슬림해진 몸으로 점심을 먹었다.
여섯 살인 둘째 예승이는 유치원에 다닌 첫째와 달리 아내가 홈스쿨로 교육한다. 집에 있으면서 아이와 아내가 깊이 교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글, 숫자, 성경 모두 둘째는 빨리 터득했고 재밌게 학습하고 있다. 출근을 안 하니 그 세부적인 표정과 말투까지 보게 된다. 난 아이가 이렇게 학습해 가는 모습을 그동안 왜 미처 몰랐을까, 후회가 되었다. 쉬는 날이면 피곤해서 누워 있거나, 서점에 가거나, 혼자 극장에 간 적이 많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니 병원에 달려간 날이 부지기수였다. 조금 더 가정을 향해 마음과 시간을 열 수 있었을 텐데...
전문적으로 일을 잘하는 건, 성과를 내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주변을 잘 정리하고 관계를 잘 맺어가며 가정도 잘 돌보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이다. 자기 일을 잘하지만 동료와 선후배에게는 부정적 평가 투성이고, 뭔가 정리되어 있지 않고 불안정하며, 가정은 늘 위기라면 그만큼 불행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높은 연봉보다 즐겁게 일하는 직장, 사람을 존중하는 직장, 발전 가능성이 있는 직장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오늘 쉬지만, 회사 업무의 연장으로 미팅 계획이 잡혀 있다. 이 글을 쓰고 곧 출동한다. 방금 초딩 3년 큰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힘든 일 없었는지 묻고 꼭 안아주었다. 둘째도 목말을 태워 인간 놀이기구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해 놓고 집을 나선다. 가장의 체력은 국력이고 가장의 표정은 경쟁력이다.
201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