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치료센터 입소한 뒤 2일째
7.3
주말에 모 대학에서 소셜창업 멘토링 교육을 마치고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 함께 참여한 강사분들과 차를 마셨다. 그때부터 몸살 기운이 느껴졌다. 티 타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해열진통제와 쌍금탕을 사 먹고 버스에서 푹 자고 내렸다. 하차 후 집으로 걸어갈 때만 해도 몸에 큰 이상은 없었다.
7.4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새 오한을 겪었고 주일인데 온라인 예배를 드리기 어려울 만큼 컨디션이 안 좋아 침대에서 계속 잠만 잤다. 오후 늦게 정신 차리고 집안 청소를 하고 월요일을 맞았다.
7.5, 7.6, 7.7
3일 모두 아침이면 타이레놀부터 챙겨 먹어야 할 정도로 몸살이 낫지 않았다. 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이 들어서 몸살 회복 속도가 더딘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요즘 스트레스가 정말 많구나. 이깟 몸살이 이렇게 오래가다니…. 집에만 있었다.
7.8
컨디션이 조금 나아졌다. 문득 외롭고 쓸쓸한 기분에 친구 약사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몸살이 닷새째 낫지를 않네. 오늘도 타이레놀 먹고 겨우 기분이 나아졌어.”
친구는 코로나일 수 있다며 가까운 보건소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오산시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아갔다. 이른 시간이라 대기줄이 없었고, 몸살이 닷새째 낫지 않아서 검사받으러 왔다고 하니, 바로 문진표를 작성하고 코로나 검사를 해주었다. 이렇게 남들 몇 번씩은 받았다는 코로나 검사를 이제 나도 받아보는 구나. 검사 후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다고 안내해 주어 한참을 걸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중간에 다섯 정거장 정도는 버스를 탔다(나중에 동선 확인할 때 실토했다. 그 버스에 타신 분들께 죄송하다).
7.9
오전에 검사 결과 문자가 오지 않는다. 혹시라도 양성일까, 의심이 들었지만 설마. 11시 다 되어 전화가 왔다. 아! 코로나 양성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가슴이 무너졌는데, 전화 주신 담당자는 차분히 설명해 주셨다. 너무나 차분히.
캡처로 보낼 것 - 사진(마스크 미착용, 착용 2컷), 7월 1일부터 카드내역서, 아이들 학교와 아내 연락처.
전화를 끊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중죄인의 심정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큰 잘못을 한 것처럼 심각한 죄책감이 엄습했다.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 빨리 아이들과 보건소 가서 검사받으라고 문자를 보냈다. 어제부터 몸살도 거의 나았기 때문에 친구가 검사받아 보라는 얘기 안 했으면 나는 모르고 살아갔을 것이다. 하루 1,300명씩 확진자 나오고 있다. 실제로는 13,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 아닐까.
동선 확인은 7월 1일부터 파악했다. 나는 6월 30일 식사 약속한 분들부터 전화를 드렸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면서 꼭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시라고…. 특히 7월 1일부터 3일까지 만난 분들께 죄송했다. 그날 내 체온은 정상이어서 입장할 때마다 한 체온 체크는 무용지물이었다.
조금 있으니 역학조사관이 전화가 와서 확진받은 날부터 일주일 전까지의 동선을 모두 설명했다. 식사한 곳, 차 마신 곳들 얘기해 주면서 그 가게 주인에게 미안했고, 내가 만난 분들 연락처도 전달하면서 다시 중죄인의 심정이 들었다. 확진받은 날 마음이 그렇게 착잡할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들은 괜찮을까? 특히 둘째는 어제 내가 안방 화장실에서 목욕을 시키고 예뻐서 볼에 뽀뽀도 했는데.ㅠ 아내와 두 아들 검사받도록 했고, 결과는 내일 나온다는데.
7.10
도대체 나는 어디서 감염됐을까? 집에 주로 머물며 동네 산책 외엔 아주 드물게 서울 외출해서 식사하고 왔는데. 그동안 내가 감염시킨 사람이 있을까? 나도 피해자면서 가해자인 것 같은 생각에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다행히 나와 밀접 접촉한 사람들은 모두 음성이 나왔다. 이미 백신을 맞은 분께는 괜히 고마웠다. 나도 빨리 맞을 것을.
나는 두통과 피로감 외에는 증상이 없어서 생활보호치료센터에 입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확진자가 폭증하는 중이라서 주일까지 입소할 곳이 정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일단 안방에서 자가 격리하고 온 가족이 집에서도 마스크 쓰고 생활하기로 했다. 아내가 안방 문 앞에 일회용기로 빵과 김밥, 물을 가져다두면 방에서 먹고 쓰레기봉투에 담아놓으면서 담당자 연락을 기다렸다.
저녁 6시 다 되어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으로 입소하라는 문자가 왔다. 7시쯤 출발하니 그전에 옷과 충전기 등을 준비하고 퇴소할 때 입을 여벌 옷(입소 중에 입은 옷은 소각시킨다고 한다)을 챙기라고 알려주었다. 집 부근에 15인승 버스가 올 예정이니 연락을 기다리란다. 내가 떠나면 방역 담당자가 와서 우리 집을 소독한다고 따로 전화가 왔다.
막상 격리받게 된 현실에 처하니 덤덤해졌다. 수련회 참석하는 셈치고 이런 일도 겪어보지 뭐. 나를 태울 버스 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KF94 마스크에 비닐장갑을 끼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꼭 내려오라고. 그렇게 아파트 비상계단으로 내려갈 때부터 내가 감염자라는 현실이 부각됐다. 정문 앞 도로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곧 버스가 왔고 서늘한 15인승 버스에는 아무도 안 타고 있었다. 운전석과는 밀폐된 차단벽이 있었는데 방역복을 입은 두 분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계셨다.
동탄 지역을 돌며 입소할 분들 6명을 태웠다. 그중에 우리 둘째쯤 돼 보이는 초등학생 아들과 엄마가 동시에 차에 올라타기도 했다. 다들 얼굴이 착잡해 보였다. 차가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졸음이 몰려왔다. 아산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 마치 어딘가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는 것 같은 기분, 수련회가 아닌 격리수용소라는 현실에 피로감이 덮쳐왔다.
경찰인재개발원에는 이미 크고 작은 버스와 앰뷸런스들로 장사진이었다. 이렇게 많은 확진자를 한꺼번에 받으려면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건지도. 하차 후 숙소를 배정받고 내가 열흘 이상 머물러야 할 방에 들어서자 먼저 와 계신 어르신이 계셨다. 잘 맞춰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58세 덤프트럭 기사 아저씨로 말씀하시는 투가 거칠었지만, 까탈스럽지 않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다만 핸드폰 소리가 너무 크고, TV가 고장난 방이라 핸드폰 영상 소음이 신경 쓰였지만 금세 적응이 되었다. 내가 참으면 그만이니까.
2인 1실로 지내야 하는 방은 너무나 좁았다. 겨우 한 사람 지나다닐 공간을 두고 싱글침대 2개가 있고, 실내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 책상도 없다. 방문 밖을 나가서는 안 된다. 폐기물 통을 내놓거나 문 앞의 식사를 들여놓을 때만 문을 열 수 있다.
인터넷으로 생활치료센터 후기들을 읽어보았다. 내가 입소한 이곳이 가장 열악한 편이다. 1인실로 해도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조화를 이뤄 지내야 한다. 부디 10일 후에는 꼭 퇴소할 수 있기를.
실내에서도 가능한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답답해서 자주 벗게 된다. 이미 양성이고 무증상이라서 실내에서 마스크 쓰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7.11
잠을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함께 지내는 분이 코를 골지는 않으셨다. 덤프트럭 운전하며 많이 고단하셨는지 그분은 금세 잠들었다가 아침 식사 후에도 다시 잠드셨다. 아침으로 나온 도시락은 엉망이었다. 군대에서도 먹지 않을 것 같은 생선 튀김이 반찬의 중심이라니. 다행히 점심과 저녁은 조금 나았다.
침대에 기대어 아이패드로 주일예배 설교를 들었다.
방에 있는 작은 테이블을 내게 양보해 주셔서 난 이곳에서 아이패드와 핸드폰으로 기록을 남긴다. 둘째가 가장 보고 싶다.
확진자는 죄인이 아닌데 죄인의 심경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먼저 의심하고 검사를 받은 사람들인데도 책임감이 크다. 건강한 편인 나 같은 사람은 며칠 몸살을 앓다가 호전되면 코로나 양성인 줄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코로나가 턱밑까지 와 있고 생각보다 너무 쉽게 감염된다. 몸이 좀 이상하면 의심하고 검사받아 보기를 권한다. 생활치료센터의 답답함을 견뎌야 하지만, 무증상인 내가 갇혀 지내는 시간에 더 심각하게 퍼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참고 견뎌야지. 지금까지 내 주변 모두가 음성인 것으로 봐서는 집에서 2주간 격리해도 될 것 같지만, 국가가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게 상식이니까.
오늘 밤 엑스레이 검사가 있다고 한다. 퇴소할 때까지 치료 행위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조용히 밥 먹고 열흘 이상 채우고 나가는 시스템으로 보인다. 식사 가져다주시고, 방역복 입고 복도에 왔다갔다 하는 분들께 감사하다. 생활치료센터 입소한 사람들 중에 40%가 우울감을 겪는다고 한다.
나는 좁은 싱글침대에서 배에 힘주고 다리 들어 올리면서 운동을 대신하고자 하는데 잠이 계속 몰려온다. 잠을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자는지 모르겠다.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이라 그런지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이제 이틀째인데 제발 2주 다 채우지는 않기를.
3층 발코니의 하늘에 조금씩 붉은 기운이 피어난다. 2021.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