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치료센터 입소 4일째

격리 생활의 첫 위기

by 황교진

어제 멘붕이 되는 이벤트가 있었다.

나는 환경이 바뀌면 화장실을 잘 못 가는 습관이 있다. 20대 초반 훈련소에서 일주일 넘게 화장실 못 간 게 최장기간이었는데 당시 내무반 동기들 중에도 나같이 화장실 못 가는 이들이 꽤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낯선 분과 함께 지내니 아침에 샤워할 때도 그분이 먼저 사용하고 나면 들어가서 내 일을 본다. 가능한 폐를 안 끼치고 내가 한 가지씩 더 양보하며 지내려고 한다.


덤프 아저씨는 술 담배를 좋아하실 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을 여기저기 누비시는 분이라 격리 생활을 나보다 훨씬 힘들어하신다. 툭하면 욕이 나오고 이곳 관리자에 대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토로하신다. 금주, 금연에 강제 방콕이니 방랑벽이 있는 사람에게는 트라우마가 걸릴 수도 있는 환경이다. 나한테는 말투가 친절한 편이라 그분이 욕을 하실 때도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고 있다.


그러다 어제 오후 덤프 아저씨가 주무실 때 배에서 신호가 와서 첫 배출을 했는데 문제는 변기 안에 버린 휴지가 막혀 버린 것. 계속 물을 내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려가지 않는다. 세 번째 물 내림에서 결국 물이 넘치고 말았다. 나는 사색이 되고 말았다. 일단 샤워기로 바닥 청소를 하고, 급히 생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전화해서 겨우 연결된 뒤 조치를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다.


덤프 아저씨가 일어나셔서 화장실이 막혔다고 죄송하다고 실토하고 한 시간마다 전화를 계속해도, 안 되면 방을 옮겨달라고까지 해도 저녁 7시 지나도 연락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태가 되자 슬슬 정신적으로 충격이 왔다. 방에서 나갈 수도 없고 화장실은 사용할 수 없고 덤프 아저씨께 불편을 드린 것 같아 죄송하고. 점점 화가 나니 한 번만 더 전화하면 내 말투가 격해질 것 같았다.


결국 내가 고쳐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사정이 있어 늦게 배급된다고 한다. 어떻게든 식사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하니 화장실을 정상으로 만들어야 했다. 비닐을 손에 덮고 점심식사 때 사용한 나무젓가락을 구해서 변기에 뭉쳐 있는 휴지를 건져 폐기물통에 버리고 물을 내려보니 시원하게 내려갔다. 이 생활치료센터 변기는 벽에 붙어 있는 형태인데 화장지를 함께 내리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있는 방만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별도의 휴지통도 없다.


아무튼 한시름 덜기까지 오후 내내 멘붕이었다. 밖에서라면 마트 가서 뚫어뻥 사서 해결하면 될 일을, 계속 조치해 주기만을 바라며 갇혀 지내는 심정엔 억울한 감정이 가득 차오른다. 아무튼 이 일로 덤프 아저씨와 사이가 나빠지진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분은 티비 안 나오는 것에만 화가 나 계셨다. 밤 9시 넘어 방호복 입은 사람이 문을 두드리고 문 앞에 뚫어뻥을 두고 갔다. 내가 화장실을 고치지 않았으면 5시간이나 방에서 화장실 없이 지낼 뻔했다.


밤에 후배가 제공해준 넷플릭스 계정으로 한국 영화 <새콤달콤>을 봤다. 가벼운 로맨스물인데 지루하지 않게 꽤 잘 들었다. 간호사로 나오는 채수빈이 정말 매력적이었고, 독특한 캐릭터로 나오는 크리스탈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한 영화다. 남주인 장기용이 건축구조설계사로 나와서 친근했는데 이 영화는 마지막에 살짝 반전이 있다. 채수빈이 왜 환자인 뚱보 공대 오빠에게 왜 그렇게 친절했는지 비밀이 숨어 있다. 죽어서 소멸된 연애세포가 살짝 눈을 끔뻑하게 해주는 영화다.


하루 13시간 넘게 자는 것 같다. 여기 있다가는 게으름만 늘겠다. 오늘은 아침에 눈을 뜨고 덤프 아저씨가 깨실 때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제 화장실 사건 때문에 좀 힘들었지만, 오늘은 좀 생산적으로 보내자고. 8시에 배식된 아침은 먹지 않았다. 식욕이 뚝 떨어졌다. 아직 미각과 후각은 그대로다. 체온도 정상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나한테 전염력이 있는 건지가. 무증상 양성자에게 감염의 정도는 어떤지도 확인해 가면서 생활치료센터 입소시키고, 입소 후 매일 검사해서 퇴소 날짜를 당겨주면 좋을 텐데.


어제는 송파구청에서 7월 2일 잠실롯데월드점에서 식사할 때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를 물어왔다. 무려 열흘 전 내가 입은 옷을 기억해서 말해 달라니! 짜증과 황당함이 확 몰려왔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하자 평소 자주 입는 옷 스타일을 또 묻는다. 그럼 정확하게 동선을 추적하자는 건지 대충이라도 기입하겠다는 건지… 최대한 협조하려고 하면서도 이렇게 과하게 물어오는 질문에는 답답함이 맥시멈이다. 확진자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확진자가 겪는 답답함을 이해해주는 추적조사는 어려운 건가.


입소 4일째 마음을 추스르며 모든 불편함을 이길 힘을 구한다. 정신적으로 덤덤해져야 하는데 어제처럼 돌발변수가 생기면 한 큐에 짜증이 압박해올 수도 있다. 이제는 최악의 답답함을 지나와 덤덤하게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7월 7일 생일날 받은 배스킨라빈스 쿠폰으로 집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베라를 배달시켰다. 둘째가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한다. 아이들도 집에서 격리 중이라 문밖출입을 못하고 있다. 화성시에서 집에 생활물품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계속 먹고 자고만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직 반환점도 멀었다. 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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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도 조금씩 적응이 되어 입맛을 음식에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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