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옮겼다
어제 큰 변화가 있었다. 점심 이후였는데 갑자기 방을 옮기라고 한 것이다. 덤프 아저씨가 티비 안 나오는 문제를 계속 건의하자 방을 옮겨주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데 방을 옮길 거라는 예고를 해주지 않고 갑자기 방역복 입은 직원이 노크하며 짐을 챙기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하여 나는 티비가 필요한 한 사람만 가고 나는 이 방에 혼자 남으면 안 되는지 물었다. 방역복 입은 분은 옮기려면 둘 다 가고 남으려면 둘 다 남아야 한다고 했다.
주섬주섬 개인 짐을 챙겨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갔다. 새로 배정받은 방은 구조와 크기가 똑같았다. 침대가 더 깨끗해 보였다. 창밖에 나무와 잔디가 보여서 다행이고,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도 찬 바람이 너무 강하여 잠깐씩만 켜야 했다.
티비가 나오자 덤프 아저씨의 화는 많이 수그러들었다. 그 전에는 방문 열고 복도에 계신 방역복 입은 분들에게 화를 분출하시거나, 욕을 자주 하셨는데 티비를 켜고 채널을 돌리시면서 순한 모습이 되셨다. 그리고 계속 잠만 주무셔서 나는 혼자 책을 보거나 아이패드를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4일째를 넘기니 나름의 생활패턴이 생겼다. 8시 아침식사를 전달해 주는 소리가 들려도 덤프 아저씨가 깨시기 전까지 조용히 핸드폰을 보다가 깨시면 식사를 가져다드린다. 어제는 내가 아침을 안 먹고 버렸고, 오늘은 덤프 아저씨가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먼저 샤워를 하시도록 기다렸는데 오늘 덤프 아저씨는 침대에서 꼼짝도 않으신다. 정신적으로 힘드신가 보다. 나는 식은 국과 반찬을 조금 떠먹고 폐기물통을 정리한 후 스트레칭을 했다. 좁은 공간이라 몸을 크게 움직이며 오래 할 수는 없어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마치고 열이 좀 오른 상태에서 샤워를 하고 속옷을 빨았다. 퇴소할 때 입던 옷을 버려야 하기에 최대한 매일 빨래를 하면서 버티고 있다. 화장실 정리 후에 어제 세탁해둔 옷을 입고 미니 테이블에 앉는다.
밤새 올라온 답글에 답을 달고 새 일기를 쓴다. 오전 9시경에 쓰기 때문에 사실은 전날의 일기다. 허리 통증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침대에 기대어 핸드폰이나 책을 보기 때문에 허리가 쑤신다. 오래 누워 있기도 곤란하다. 어제는 조금씩 움직여가면서 일본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와 일드 <심야식당> 도쿄 스토리 시즌1의 2화를 감상했다.
먼저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
2011년작으로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울증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것 같다. 극 중의 남편은 외국계 소프트웨어 회사 고객센터 일을 하고 있다. 소심한 편이고 매일 넥타이 색깔을 정해두고 치즈도 요일별로 정해서 요리해 먹는, 자기 원칙이 강한 사람이다. 지옥철을 타고 성실하게 근무하는 그와 달리 아내는 인기가 별로 없는 만화를 연재하며 집에서 일하는 만화가다. 남편이 알아서 요리해서 도시락을 싸서 출근한다. 이 집의 또 한 명의 식구는 커다란 이구(이구아나)다.
아내는 남편을 동반자라는 뜻의 ‘츠레’라고 부른다. 남편에게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온다. 츠레의 우울증은 무기력감, 대인기피, 고객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태로 더는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상사에게 우울증임을 고백하며 큰 용기를 낸 그에게 상사는 무시하는 말투로 대한다.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 1년 이상 약물치료를 권한다. 아내에게 고백하자 아내는 퇴사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혼하자며 소심한 남편을 응원한다. 자신이 만화를 그려서 먹여 살리겠다고.
이 영화에서 아내의 헌신이 빛난다. 평소에 그리지 않던 자기계발서 일러스트를 그리며 돈을 벌면서, 남편의 감정 기복과 무기력감을 든든하게 곁에서 지켜준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녀는 지혜롭게 “우울증에 애쓰거나 맞서지 않고 받아들임”을 선택해 남편 곁을 지킨다. 그러니까 잠만 계속 자거나, 집에서 매일 자신은 무가치하다고 통곡하는 남편을 닦달하거나 불안하게 획책하지 않고 그저 기다려주고 쓰다듬어 준다. 츠레가 이구를 안고서 자신도 파충류였으면 좋겠다고 하자, 아내는 츠레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며 파충류는 우리처럼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없다고 하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부부는 위기의 순간을 잘 지나오며 우울증에 친숙해진다. 남편은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고 불안감도 이겨내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과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운 만화 연재물로 그리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남편은 자신의 일기장을 건네며 우울증에 대한 책을 써보라고 권한다. 츠레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자 많은 화제를 몰고 오고 급기야 남편은 대중 강연으로 자신의 우울증을 설명하고 완치는 되지 않았지만 견뎌온 경험을 소개한다. 그 자리에는 평소 고객센터에 무례하게 전화를 해온 노인이 손을 들어 츠레를 격려해 주고 돌아갔다.
이 영화에서 여러 부분 공감이 되면서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볼 수 있었다. 책임감을 가지며 이겨내라고 다그치거나, 그런 사소한 병에 걸려서 힘들어하냐는 무시가 가장 위험하다. 즉 강하지 못한 사람 취급하는 것은 금물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약해서 걸리는 게 아니다. 마치 코로나 확진자가 평소에 지저분하게 살았다고 할 수 없듯이. 가까운 사람의 격려와 이해는 모든 병을 이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정신병은 가족이 회복의 속도에 대한 키를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야식당 도쿄 스토리 시즌1은 반가운 일드다.
24분 정도 되는 한 화에는 마스터의 가게에 모인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1화 탄면, 2화 옛날 소시지 두 편을 보았는데 모두 가슴이 훈훈해지는 에피소드다. 1화 탄면에는 마흔 중반의 여자 택시 기사와 심야라디오 디제이가 나온다. 이 식당은 자정이 넘어 들린 사람들이 마스터의 요리를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디제이는 어렸을 때 5인조 닌자 초능력자 프로그램을 보며 자랐는데, 국수 없는 탄면을 시키는 여자 택시기사를 가만 보니 그 닌자의 진홍단풍이었다. 자신의 첫사랑인 티비 스타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진홍단풍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그 인기를 넘어서지 못해 연기를 포기해야 했다. 택시기사에게는 아픈 과거인 것이다. 게다가 연기가 부족한 자신을 도닥거려 준 팀의 리더 날다람쥐는 남자지만 여성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그와의 사랑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녀가 방송에서 자신이 소환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다.
다이어트에 신경 쓰며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 택시기사가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디제이는 심야방송에 초대하려 했지만 사정을 알고는 미안해했다. 그러나 디제이가 방송에서 택시기사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응원하자 감동을 받아 결국 날다람쥐와 함께 출연해 과거의 그 닌자 캐릭터에 추억을 가진 청취자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리고 날다람쥐는 현재 자신의 모습도 솔직하게 밝히며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심야식당이 감동적인 것은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부분이다. 심야시간에 허전함을 달래는 사람들은 모두 고통과 벗 삼은 이들이다. 이들은 마스터의 요리로 자신의 추억, 향수를 끄집어내고 옆에 앉아 있는 타인의 말을 경청한다. 요리는 소외된 삶의 이야기를 거들어준다.
생활보호치료센터에서 심야식당을 보니 편의점 도시락 같은 3끼를 얼른 벗어나고 싶다. 과일도 음료수도 없이 도시락과 생수로만 지내야 하는 이 시간이 끝나면 마스터의 심야식당에서 본 요리들, 탄면, 핫도그, 오므라이스, 달걀두부 모두 실컷 먹어보고 싶다. 여기서는 조금만 먹고 다이어트해서 나가는 것으로!
이 글을 올리고나서 매일성경 큐티, 이지 잉글리시로 영어 회화 공부를 이어서 한다. 오전은 그렇게 흘려보낸다. 앞으로 일주일 내에는 퇴소할 것이다. 퇴소 시에는 가족이 와서 픽업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온양온천역까지 7킬로 정도 걸어서 간 후 지하철과 버스로 귀가하려고 한다. 202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