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치료센터 입소 6일째

글 쓰고 운동하고 넷플릭스 보면서 달래다

by 황교진

어제 덤프 아저씨는 이곳 연락망의 번호로 언제 퇴소시켜 줄 것인지 문의했다. 별 이상이 없으면 확진받은 날 이후 11일째라고 한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다음 주 월요일이다. 이번 주 주일까지만 잘 견디면 집에 갈 수 있다.


이제 허리 아픈 것 외에는 큰 불편 없이 익숙해졌다. 양 옆방에도 입실자가 들어왔는데 그분들은 사교성이 좋은 건지 방에서 엄청 떠든다. 원래는 대화 자제인데 말이다. 게다가 새벽 2시까지 티비를 크게 틀어놓아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창문을 꼭꼭 닫고 자야 했다. 발코니 쪽 윗부분이 뚫려 있어 발코니 내부 창문 열어놓고 티비 크게 틀면 옆방으로 소음이 모두 전달된다. 덤프 아저씨는 그런 소음에 상관없이 잘 주무시지만 나는 심하게 방해가 되어 조용히 해달라고 항의하려다가 참았다. 그분들도 오죽 답답하면 이 밤에 티비를 저렇게 크게 틀어놓고 볼까 싶어서.


오늘부터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크게 줄이기로 했다. 좁은 침대에 눕거나 기대어 뭔가를 보는 것이 허리에 계속 통증을 진행시킨다. 하루 스쿼트 40개씩 3번, 푸샵도 가능한 20개씩 3번은 하며 몸을 계속 움직이고 있다. 덤프 아저씨 주무실 때 침대 옆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도시락 3끼만 먹다 보니, 과일과 단 것이 엄청 당긴다. 과일 못 먹는 건 좀 아쉽지만, 단 것을 강제로 못 먹으니 허리가 조금씩 날씬해지고 있다. 오늘 아침은 곰국이 나왔는데 밥 서너 술에 국만 조금 떠먹었다. 물을 자주 마시고 있다.




아침에 이 글을 쓰는 시간이 내겐 가장 창의적인 시간이다. 수동적으로 갇혀 지낼 때 이런 창의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정말 유용하다. 그래서 1차세계대전 참호 속에서 수많은 참전 군인이 탄피나 군용 물품에 그림을 그려 넣지 않았는가. 페북을 할 수 있고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건 격리 중에 큰 축복이다.


어제는 일드 <심야식당> 한 편과 할리우드 영화 <베이워치: SOS 해상 구조대>, 일본 멜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를 보았다. 어제 본 심야식당 오므라이스 편에는 고아성이 출연했다. 부모님 빚을 갚으려고 호스티스 바에서 일하는 한국인으로 나온다. 그녀도 일을 마치고 괴로운 허기를 달래려 심야식당에 왔다가 오므라이스를 먹고 비를 맞고 나가는 물리학자를 친절하게 대해준다. 뛰어난 물리학자지만 일상에 허술한 구멍이 많은 그는 고아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나중에 한국까지 가서 청혼하는 내용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서민 중에서도 고통과 상처, 결핍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밤늦은 시간이어도 집에 갈 수 없는 고독과 삶의 빈자리에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 <심야식당>에 출연한 고아성의 일본어 연기가 출중했다. 언제 그렇게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을까.


자기 전에 본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는 꼭 추천할 만한 명작 멜로다. 2017년 작품인데 다른 시간을 사는 남녀의 이야기 구성이 신비롭고 슬픈 영화다. 대학에서 카툰을 공부하는 스무 살의 타카토시는 지하철로 등교하는 어느 날 비슷한 또래의 에미를 만난다. 지하철 문쪽에 서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첫눈에 반한 타카토시는 그녀가 내릴 때 용기를 내어 다가가 만나고 싶으니 연락처를 달라고 한다. 에미는 핸드폰이 없다고 하는데 거절당한 줄 안 타카토시에게 내일 만날 수 있을 거라 말하면서 갑자가 눈물을 흘린다. 타카토시는 그녀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타카토시가 동물원에서 기린을 그리는데 그녀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 그림은 실습실에 걸릴 거라고 말해준다. 뜻밖에 나타난 그녀를 반기며 두 사람은 매일 만나는 친한 사이가 된다.


에미는 만날 수록 다정하고 따뜻했다. 타카토시의 이사를 도와주고 카레를 만들어주는 데 신기하게도 타카토시가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맛과 똑같다. 두 사람이 처음 손을 잡을 때도 에미는 눈물을 흘렸다. 타카토시는 점점 그녀가 미래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능력을 의심한다. 다음 날 비밀을 알려주겠다는 에미.


에미는 자신이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타카토시의 과거가 에미의 미래이고 두 사람은 5년에 한 번 딱 30일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스무 살 때 타카토시가 처음 에미를 만난 날은 사실은 에미가 타카토시와 같은 나이로 만나는 마지막 날인 것이다. (좀 복잡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래서 타카토시는 어제의 기억을 에미와 나눌 수 없고, 에미는 오늘 수첩에 쓰여 있는 대로 행동한다. 그 수첩의 내용은 타카토시의 마지막 날이며 에미의 첫날에 타카토시가 알려 준 기록이다. 혼란에 빠진 타카토시는 괴로워하다가 문득 에미는 자신보다 더 괴로울 거란 걸 알게 된다. 자신은 하루하루 추억이 쌓이지만, 시간을 거꾸로 사는 에미는 매일의 만남이 그녀에게 마지막 경험이 되니, 결국 에미의 헌신이 타카토시에게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타카토시는 에미에게 달려가 고마워하며 더 애틋하게 고백한다. 에미는 매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어도 자신은 타카토시를 만나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한 달 후 이별해야 하는 남녀의 이야기인데 그 애틋함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일본 작가는 이런 이야기 설정과 전개에 탁월하다. 한국보다 훨씬 많은 멜로를 만들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창작해내며 공감이 되는 명작을 선보인다. 여주인공으로 나온 고마츠 나나라는 배우는 국민 첫사랑 같은 얼굴과 표정을 지니고 있다. <건축학개론>의 수지와 같은 이미지가 있으면서 수지와 달리 남자 친구와 밀당하지 않는 헌신적인 캐릭터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의 첫사랑을 소환하게 된다.


첫사랑은 순수하지만, 자기감정과 입장만 생각하다가 실패하고 만다. 타카토시처럼 내가 괴로운 것보다 상대가 괴로운 것이 더 클 거라는 공감능력, 에미처럼 서로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의미 부여가 없으면 첫사랑은 깨지고 만다. 깨졌기 때문에 더 아련한 평생의 기억으로 남는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 내게 요리를 해주었을 때, 내 머리를 깎아주었을 때… 타카토시는 그 소중한 기억들을 가슴에 품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에미의 시간대에 맞게 이야기를 재구성해 주는데 마치 <시네마천국>의 토토의 입장에서 과거를 회상하듯이 화면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뭉클했다.


이곳에서 격리돼 있는 동안 이런 멜로드라마에 날마다 심쿵하니 연애세포가 부활할 것 같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만 살아나서 현실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겠지만.


내가 일본 드라마를 즐기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심야식당 오프닝 주제가 나올 때 도쿄 밤거리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차올라 그때 알았다. 2017년 12월에 내게 도쿄에 같이 가자고 하신 형님이 계셨다. 그분의 배려로 3일 동안 도쿄를 누비며 다닐 때 나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만 20년을 중환자인 어머니를 간호하다가 하늘로 보낸 감정을 도쿄에서 정리했다. 한국이라는 무거운 책임의 나라를 생전 처음 벗어나, 어머니 간호와 지킴이로 살아온 인생을 도쿄에서 3일간 털어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리움을 애써 참아온 흔적이 남았다.


그 흔적이 나를 과거의 어머니와 함께해 온 시간으로 소환시켜서 그때의 삶의 가치로 스며들게 한다. 나 자신에게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너무 힘들었고 아쉽고 그립다. 2021.07.15



173883575_10159437665351971_3030021580663449310_n.jpg 내 전용 책상이 된 작은 테이블, 각티슈 위에 아이패드를 올려두고 글 쓰고 영화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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