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하고드라마 보면서 즐거움을 찾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금요일 오전에 양성 판정을 받고 멘붕에 빠졌다가 일주일 동안 많은 변화를 겪으며 지나왔다. 지금도 나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 격리한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그분들은 나와 만난 지 2주가 돼 음성 확인받고 자유로운 몸이 되신다. 내가 지난주에 외출을 안 하고 집에만 있었던 것이 밀접접촉자 수를 줄였고, 그전에 접촉한 분들만 자가 격리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이면 그분들 모두 2주가 된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 후 오전 시간이 참 감사하다. 아침 도시락을 두세 술 뜨고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 후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큐티와 EBS 영어회화 공부까지 마치면 오전 시간이 다 가는데 이 시간에 덤프 아저씨는 티비도 안 보시고 조용히 다시 주무신다.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내가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은 참으시는 것 같다. 심지어 티비를 보실 때도 최대한 볼륨을 줄이신다. 화면만 보면 된다고 하시면서.
첫인상은 좀 거칠거칠해 보였지만 덤프 아저씨 매너가 상당히 좋은 분이란 것을 알게 됐다. 바로 옆방은 어젯밤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라이터가 켜지는 불빛까지 다 보였고 연기가 우리 방으로 그대로 흘러들어왔다. 그 시간에 덤프 아저씨는 주무시고 계셨는데 나는 조금 곤혹스러웠다. 얼마나 답답하면 금지된 연초를 피우실까. 그에 비하면 덤프 아저씨는 욕은 찰지게 자주 뱉으시지만 규칙은 철저하게 잘 지키신다. 내가 아주 좋은 룸메이트를 만난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그의 직업과 말투로 절대 그 수준을 평가할 수 없다.
사실 그제부터 폐기물통과 식사 전달을 내가 다 맡아서 하고 있다. 덤프 아저씨는 자신의 폐기물통까지 내가 테이핑해서 내다 놓고, 문밖의 새 통을 들여놔 비닐을 씌워서 버리기 좋게 해두는 모습에 조금 감동하신 것 같다. 이제는 전염력이 거의 제로란 생각에 그까짓 폐기물통은 내 것 정리하는 김에 함께 정리해도 괜찮다고 본다.
전화 주시는 분들이 고맙다. 나와 접촉한 분이 격리 기간을 마감하는 코로나 재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50분이나 줄을 섰다고 한다. 이 난리에 생활치료센터에서 쉬고 있으니 답답함이 들더라도 다행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1,600명 넘는 대량 확진자가 나오지만, 겪어보니 건강한 사람은 가벼운 몸살 정도 앓고 지나간다. 후각도 미각도 나는 그대로다. 이런 확진자 추세라면 곧 전국의 생활치료센터가 포화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치명률에 대한 관리다. 1.18퍼센트의 위중한 환자와 사망자 관리에 집중하고, 무증상 감염자는 이렇게 확진 숫자가 늘어나면 집에서 격리시키다가 일상생활에 복귀시키는 게 나을 수 있다. 건강한 사람에겐 전혀 공포스러운 병이 아니다. 코로나 양성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감염시키지 않도록 스스로 잘 격리해 있도록 하면, 말 안 듣는 사람들 생길 수 있고 확진자 관리는 어려워질 것이다. 생활치료센터의 매일 버려지는 폐기물 또한 아까운 소비재다.
넷플릭스를 매일 접하니 내 취향이 정해진다. 화려한 액션물보다는 나는 멜로물을 좋아하고 판타지보다는 일상생활이 배경인 드라마를 선호한다. 인간냄새 물씬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어 그런 작품을 고르느라 이것저것 첫 화의 앞부분만 보다가 접은 것도 많다. 한 번 빠지면 40화 넘는 것을 다 보아야 하니, 1화를 보고 신중하게 결정한다. 특히 한중일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에 쉽게 몰입한다.
어제는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을 감상했다. 나이 서른의 여성 세 명이 나온다는 구성에서 <멜로가 체질>과 비슷한데 이 드라마를 상대적으로 더 좋아하는 팬층이 두텁다는 걸 확인하고 1, 2화를 감상했다. 대도시 상하이에서 살아가는 서른 살 세 여자 이야기다. 아주 깔끔한 중산층을 배경으로 하며, 우리 드라마 펜트하우스처럼 치졸하게 죽이고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다.
‘구자’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전업주부로 아이 양육, 남편 격려, 요리, 몸 관리까지 매사 철저하다. 불꽃 디자인과 어린이책 제작을 하는 남편의 창업과 성공을 도운 것도 그녀다. 심지어 남편이 하기 싫은 거래처 전화까지 자신이 도맡는다. 그녀의 철저한 생활관리 덕분에 베이징의 부유한 주상복합건물 12층으로 이사한다. 이 집도 넓고 부유한데 그녀의 꿈은 펜트하우스에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욕망이 전혀 자극적으로 나오지 않는 게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아이를 부유한 가정이 보내는 영어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완벽하게 영어 인터뷰에 응하지만, 아이가 면접 선생님의 팔을 깨물면서 보류된다.
구자는 이 아파트의 회장인 펜트하우스에 사는 왕여사를 찾아간다. 왕여사의 남편이 영어유치원의 임원이기도 하다. 상하이의 부자도 여느 나라 부자들처럼 거만하고 돈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구자는 왕여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케이크를 직접 구워 바치고 엘베가 고장 났을 때 직접 비상계단 수발을 들면서 왕여사의 마음에 드는 데 성공한다. 엄마이기 때문에 하는 이런 노력은 어쩜 그리 한국과 똑같을까. 구자는 왕여사가 명화를 구입해 거실에서 수령하는 장면을 보는데 왕 여사가 모네의 수련을 고흐의 수련이라고 무식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저런 무식한 사람이 펜트하우스에 살다니, 나도 10년 후면 펜트하우스로 올라갈 수 있다는 목표를 삼는다. 구자는 어렵게 자란 이력이 있다.
‘중샤오친’은 구자의 친구이다. 이 아파트 관리를 하는 회사에서 온갖 궂은일을 다 해낸다. 남편은 아이를 낳는 데 관심이 없고 물고기 키우는 데만 집중하고, 그녀는 남편이 싫어하는 고양이를 키우며 드라마에 푹 빠져서 산다. 구자의 부부와 달리 남편과 소통이 없다. 남편이 물고기만큼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지만 자신은 물고기보다 더 못한 존재인 것 같다. 그녀는 친정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친구 구자가 훨씬 잘 사는데도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더 잘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할 만큼 구자의 따뜻한 친구이다. 직장에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남자 신입사원이 들어오는데 그는 중샤오친이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는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만니’는 성공하려고 상하이에 와서 구자가 사는 주상복합아파트 1층의 명품숍에서 8년 차로 일하고 있다. 한 달에 15,000위안(우리 돈 260만 원 정도)을 벌고 있다. 그녀는 어떤 직원보다도 열심히 매상을 올리며 열정적으로 일한다. 부지점장에게 인정받으며 동료의 시기도 받는다. 낮에는 우아한 모습의 명품숍 직원이지만 퇴근하면 녹초가 된다.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부모님 집에 돈을 부치면서 허리가 아파서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살아간다. 대도시 명품숍에서 우아한 모습의 직원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점장이 되어 성공하려는 애달픈 캐릭터다.
이 세 여자가 이야기가 질척거림 없이 깔끔하게 그려져 있다. 대도시에서 중산층으로 살며 성공을 바라는 여자, 벼락부자의 허영과 사치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고향에서 이들을 걱정하는 부모들은 돈이 많지 않아도 따뜻하고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겨우 서른>의 세 여자의 일과 가정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한국 사회와 비슷한 점이 많기에 공감이 되면서 이런 드라마를 쓰는 작가의 스토리 전개 능력을 배우는 의도로 감상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잘 생긴 남자가 나오면 “한국 드라마 배우 같이 잘 생겼다”는 대사가 나온다. 중국에서 미남은 한국 배우다. 영화는 장동건보다 유해진, 조우진인데, 아직 우리 드라마는 원빈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역시 드라마는 비현실적 판타지다. 그 속에서 나는 현실을 보려 한다.
하고 싶은 것
- 여행! 후보지 세 곳 중 한 곳은 퇴소 후 꼭 간다(강릉 속초 or 여수 남해 거제 or 제주).
- 염색과 모발 케어(이곳에서 공급한 샴푸로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해졌다. 관리받고 싶다).
- 카페에서 책 읽기
- 좋은 사람 만나 대화하기
먹고 싶은 것
- 연어초밥(특히 제주 애월연어의 그 연어초밥), 튀김 종류, 시원한 음료(딸기 스무디, 자바칩 프라푸치노), 찹살떡, 단팥빵, 그외 달달한 것들
- 옛날 팥빙수, 수박
사고 싶은 것
- 문구류(챙겨 온 유일한 볼펜의 잉크가 안 나온다. 큐티와 영어공부는 어떻게 하라고? 볼펜 좀 달라고 전화했는데 소식이 없다.)
2021.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