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치료센터 입소 8일째

감탄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행복

by 황교진

아침식사와 함께 비닐봉지 안에 볼펜이 배달되어 있다. 가져온 볼펜 한 자루가 어제부터 잉크가 안 나와 난감했는데 그래도 전화로 요청한 지 하루 만에 삼색볼펜을 지원받아 감사하다. 물자가 귀하다 보니 이런 작은 배려에 감동한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돈이 많은 것보다 자기 위치에서 감탄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감탄의 숫자를 늘리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두통과 요통이 함께 온다. 좁은 공간에서 이 두 가지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도시락 세 끼만 먹으니 잘 안 먹던 아침도 간단하게나마 두세 술 뜨고 바로 맨손 스트레칭에 들어간다. 어느 정도 내 몸에 맞는 적절한 맨손 스트레칭을 만들었다. 스쿼트까지 하고 나서 화장실에 들어가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한다. 샤워 마치고 수건을 팽팽하게 잡고 수건 스트레칭을 하면 두통과 요통이 사라진다. 물론 덤프 아저씨의 행동반경을 살피면서 구석에서 적절하게 운동하고 있다.


덤프 아저씨는 어제까지 설사를 하다가 오늘 아침은 괜찮다고 하신다. 아무래도 전국 건설현장을 매일 누비다가 계속 침대에만 누워 있으니 소화가 안 되시는 것 같다. 매일 20대 중반의 딸과 통화하시는데 딸의 애교가 사랑스럽게 들린다. “따님이 애교가 장난이 아니네요. 아빠를 무척 좋아하나 봐요.” 한마디 건네드리니 너무나 화사하게 웃으신다. 아무래도 나이 든 아버지는 딸 칭찬 들을 때 행복해하시는 듯. 그러면서 아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덧붙이신다. 하긴 우리 집 장남도 나한테 전화 한 통 안 한다. 둘째는 매일 두 통씩 꼬박꼬박 통화 시전해 주는데.


거울을 보니 얼굴 살도 빠졌고, 복근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앉은 자세에서 아랫배를 잡아보면 손에 쥐어지는 양이 현저히 줄었다. 이 좁은 방에서 낯선 덤프 아저씨와 8일째 지내면서 소식과 운동으로 건강해지고 있으니 잘 됐다. 화장실 배출도 매일 잘 되고 소화도 잘 되는 편이라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있다.




어젯밤 천둥, 번개와 비가 쏟아졌다. 뭔가 시원하게 씻기는 느낌이 좋았다. 오늘 하늘이 맑다. 지난주 금요일에 양성 확진자 전화를 받고 주말까지 안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참담한 기분을 견디다가 주말 밤에 보건소 차에 실려서 이곳에 왔다. 그동안 위로금을 보내주신 분, 집에 가면 아이들과 먹으라고 쿠폰을 보내주신 분, 퇴소 후 커피 마시라고 스벅 카드를 선물하신 분, 전자책 구독권과 넷플릭스 계정을 제공한 후배 등 안부전화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 돌아보면 어머니 병간호할 때도 주변의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견딜 수 있었다. 사람은 풍요로운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풍성한 사랑을 받고 감탄하며 살아간다.


어제 <심야식당> 도쿄 스토리 시즌1을 거의 다 봤다.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외로운 사람, 과거를 숨겨야 하는 여자, 아내를 잃은 원로 변호사 등 힘든 삶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스터의 요리와 함께 등장해 감동을 준다. 여기서 마스터는 바른 목회자와 비슷하다. 손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 주면서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요리해준다. 그런데 그는 설교하지 않는다. “그렇군요” 하며 경청해 주면서 좀 못돼 보이는 손님까지 언제나 반겨준다. 저녁에 집에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는 좋은 친구이면서 어른이다.


<겨우, 서른>은 자기 전에 7화까지 감상했다. 이 중국 드라마는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만든다. 구자는 아들을 일류 유치원에 입학시킨다. 그런데 등원 첫날 깐깐하게 생긴 학부모회장이 구자에게 이 유치원 전통은 등원 첫날 같은 반 아이들의 이름을 새긴 컵케잌을 선물하는 거라고 알려준다. 구자는 이미 탁월한 베이킹 실력을 지니고 있다. 오전에 금세 맛난 컵케잌을 만들어 아이 반 친구들에게 선물해 준다. 그녀의 세련되고 탁월한 모습을 본 학부모회장은 구자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학부모회장은 구자에게 채팅 계정이 두 가지가 있고 자신에게 먼저 보고하고 채팅창에 올리라고 한다. 그러면서 너무 나대지 말라고 꽤 불쾌한 말투로 말하면서, 채팅창 두 가지는 선생님이 있는 계정과 없는 계정이라고 한다. 뭔가 작당하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 구자는 껄끄러워한다. 다음 날 학부모들과 함께 파티하는 자리에 한 아이가 뇌전증으로 쓰러진다. 그 집 아이는 태어날 때 산소 부족으로 간질 증상을 앓고 있다가 처음 노출됐다. 아이들은 쓰러져 발작증세를 보인 아이를 보고 놀라고, 학부모회장은 당장 퇴원시키자고 주장한다. 다수의 학부모들도 동의하는 추세다. 그러나 구자는 이런 차별적인 교육현장에 아이를 교육시킬 수 없다며, 선생님과 학부모가 모두 보는 채팅창에 자신은 아이들이 친구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습으로 키우고 싶고 이런 일로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교육을 반대한다고 쓴다. 구자의 설득력 있는 글로 많은 학부모가 뇌전증 아이의 퇴학을 반대한다.


결국 학교 측은 구자와 학부모회장을 함께 호출해 두 사람의 의견 일치를 부탁한다. 학부모회장은 몹시 불쾌해하며 여론에 따라 퇴원 반대에 마지못해 찬성한다. 그러나 똑똑한 구자에게 몹시 불쾌함을 전달하며 앞으로는 개인행동에 나대지 말라고 경고한다. 후에 학부모회장은 구자의 허락 없이 가정에서 벌인 생일파티에 구자의 아들을 초청해 감금하는 참담한 복수를 한다. 구자는 그날 남편의 고객사 회장의 화를 풀어주러 갔다가 자신을 성추행하려는 그 회장에게 당당하게 거래를 끊자고 하고 늦게 귀가한 날이다. 아들이 아줌마와 함께 귀가하지 않은 것을 채팅창으로 알고는 생일파티가 열리는 집을 찾아가 감금된 방에서 아들을 구출한다. 그리고 학부모회장을 방으로 밀어 넣고 패 버린다. 폭행 고소하겠다는 학부모회장 말에 유괴와 아이 감금으로 고소당할 사람이 누군지 쳐 알라고 말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귀가한다. 결국 그 학부모회장의 아이가 퇴학됐다. 구자는 공석인 학부모회장직을 제안받지만 이권 때문에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오해받는 것이 싫어 거절한다.


이 외에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구자의 이 드라마틱한 설정은 앞으로의 전개에 기대를 모은다. 그 일류 유치원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남편의 회사가 부도 위기이고 집도 은행에 저당 잡혔는데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 현재는 남편이 구자를 사랑하며 인정해 주지만 점점 숨 막혀하지는 않을지…


명품숍에서 일하는 만니에게도 큰 위기가 찾아온다. 돈 많은 손님들의 갑질이 만니의 명품 매장에서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명품숍 손님들의 진상짓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온갖 무례한 모습의 부자들을 다 경험한 만니는 가장 침착하고 인내심 있게 대처하는 직원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자리를 비울 때 중요한 손님이 올까 봐 화장실도 참고 물도 잘 마시지 않아 신부전증에 걸린다. 허리가 아파서 기절했다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의사로부터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생활하다가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는다.


만니가 쓰러졌을 때 119를 부른 만니 어머니는 딸이 입원했다는 소식에 한숨도 자지 못한다. 만니는 엄마의 걱정에 짜증을 내면서 독백한다.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의 갑질과 무례를 웃음과 친절로 대하면서 정작 가장 가깝고 소중한 가족에게는 짜증과 화를 내며 살고 있구나.” 우리는 만니처럼 밖에서 친절한 만큼 집에서 짜증을 내면서 살아간다. 특히 그녀처럼 승진하기 위해 전심전력 다하며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집에 오는 사람일수록. 앞으로 판매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자.


샤오친은 남편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고, 남편이 아이를 지금 감당할 수 없다며 중절수술을 하려 하지만 병원을 뛰쳐나온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싶었다. 경제력이 갖춰질 때까지 보류하자는 남편과 첨예하게 다투다가 결국 낳는 방향으로 부부의 뜻이 모아질 즈음 유산하고 만다. 상하이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데는 돈이 관건이다. 고도 경제성장시대를 사는 중국에서 자신의 가난과 불편을 아이가 겪지 않도록 하고 싶은 부모의 염원은 지나치게 강하다.


한편으로는 그 상하이에서 주인공들과 연결고리가 적은 노점상 어머니가 나온다. 아이를 노점대 옆에서 키우면서 토스트를 파는 그 어머니는 바쁘게 토스트를 구워 팔며, 안 바쁜 시간에 큐알코드 결제를 걸어놓고 가게를 비워가며 아이를 잘 키운다. 주인공들과 대조적인 이 모습에서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돈으로 낳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으로 열심히 키우는 거란 걸. 콘트라스트가 훌륭한 드라마다.


<겨우, 서른>은 화면이 주는 메시지와 대사가 주는 메시지 모두 괜찮은 드라마다. 상하이의 그런 모습이 서울 강남의 모습과 비슷하고 부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인간성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품격과 존중이 가능한 현실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시청자인 나는 어떤 위치를 지향할 것인가를 묻는다. 사실 많이 불편한 이곳 생활치료센터에서 적응해 있지만, 부자 확진자는 이곳에 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나는 내게 주어진 현실에서 감탄을 많이 하기로 했다. 내가 드라마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것, 덤프 아저씨와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것, 혼자 운동 프로그램을 정해 컨디션 조절해 나가는 것 모두 감탄한다. 행복하기 위해 감탄하면서, 감탄하다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2021.07.17



217901362_10159437666021971_3527665059850700836_n.jpg 격리 생활의 답답함 중에 묵상한 오래 참음과 인내의 성경 말씀이 꿀처럼 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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