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치료센터 입소 9일째

퇴소일이 보인다

by 황교진

어제 생활치료 앱 문자로 지난주 입소한 사람들은 퇴소 처리에 필요한 증상을 기록하라는 소식이 들어왔다. 매일 두 번의 체온 기록 외에 퇴소에 필요한 증상 기록은 처음 받는 것이라서 혹시나 주일인 오늘 퇴소하는 것 아닌가 설렜다. 덤프 아저씨 친구 분은 하루 늦게 확진돼 동탄의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했는데 월요일에 퇴소한다기에 우리 방은 그 계산대로라면 주일에 퇴소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아, 이제 끝에 다다랐구나.


덤프 아저씨는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태우러 오라고 연락하면서 내게 성남까지 태워주겠다고 손을 내미셨다. 나는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걸어서 온양온천역까지 가서 지하철과 버스로 귀가하기로 했다. 전화 주신 분들은 지금 폭염이라 1시간 반 걷는 건 고생이라고 했지만, 나갈 수만 있다면 더위쯤은 견디면서 좀 걷고 싶다. 그리고 덤프 아저씨가 이렇게 마지막에 친절하게 대해 주시니 지난 열흘간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나는 마지막 밤일지도 모르는 지난밤 뒤척거리며 잠을 설쳤다.


아침식사가 문 앞에 오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일어나 덤프 아저씨께 식사를 가져다드린 뒤 상황실에 전화를 해보았다. 정확하게 퇴소일이 오늘인지 확인차. 상황실에서는 각자 증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증상이 없으면 우리 방은 내일 월요일에 퇴소라고 한다. 갑자기 김이 팍 샜다. 덤프 아저씨는 가족에게 출발했으면 차를 돌려 집으로 가라고 통화한 뒤 실망하셨고, 나는 하루 더 있을 마음가짐에 돌입했다. 아침에 샤워하면서 입소 후 첫 면도를 했다. 처음으로 열흘간 수염을 길러보았다. 그런대로 봐줄 만했지만 깨끗하게 밀었다. 오늘 주일이기도 하니 단정한 얼굴로 온라인 예배를 하려고.


어쨌든 하루만 있으면 퇴소라니 기쁘다. 한편으로는 돌아가서 생활할 일들에 대한 걱정도 든다. 여기 열흘간 있을 때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능동적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이전보다 나은 일상이 되지 않을까.





어제는 주말 오전에 방송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인 <영화가 좋다>, <접속 무비월드>를 다시 보기로 감상하고, 애정하는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에 집중했다. 시즌1의 43화 중에 11화의 중간쯤 왔다.


만니는 실적이 높은 공로로 슈퍼바이저로 승진하고 회사에서는 그녀에게 크루즈여행을 보내주었다. 고향을 떠나 상하이로 와서 정착하려고 발버둥치는 그녀에게 처음 주어지는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크루즈여행 경험이 있는 구자는 만니를 통해 귀부인 클럽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한정판 명품 가방을 대기 시간 없이 구입할 수 있게 돼 만니와 절친이 되었다. 만니에게 꼭 VIP로 업그레이드해서 즐기라고 조언한다. 만니에게 파티 드레스도 빌려주며 일반승객이 누리는 공간과 차이가 크다고 말해준다. 살뜰한 만니는 회사에서 끊어준 일반석으로 승선한다. 바다 뷰 없이 사방이 막힌 작은 방에 짐을 푼 만니는 자신의 고객들의 세계인 VIP 층에 올라가 유료 식사를 해본다. 그때 멋진 남성이 만니에게 다가온다. 홀로 떠난 멋진 크루즈여행에서 매너 있고 돈 많은 남성이 호감을 표하며 다가온 것이다. 만니는 카드 할부로 VIP룸으로 업그레이드한다. 나는 만니가 이렇게 자신을 위해 과감하게 돈을 쓰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평생에 한 번쯤은 가족들과 미래에 현실을 저당 잡히지 않고 지금 행복한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게 멋지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선상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나더라.


만니는 부유한 그 남성의 친절에 감동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그가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보러 같이 가자고 한 프러포즈를 거절한다. 꿈같은 시간은 꿈으로 간직하고 현실에 가져오지 않고 싶은 게 만니의 심정이다. 그녀는 매일 분투하는 월세살이에 명품숍 판매직으로 복귀했다. 집에 오자마자 얼마 전 월세를 크게 올린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말을 듣는다. 그것도 느닷없이 집에 찾아와서 빨리 나가 달란 말을 쏟아낸다. 상하이 집값이 천정부지라 딸 시집보내기 위해서는 이 집을 팔아야 한다며. 서울이나 상하이나 집주인들은 세입자의 어려운 상황은 나몰라라다. 아마 천국에서 가장 보기 힘든 부류가 집주인들 아닐까. 착한 집주인은 응팔의 복권 당첨 집주인밖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만니는 상하이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이사를 간다. 집세를 아껴서 일 년에 한 번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샤오친은 아이 유산 후 남편과의 사이가 안 좋다. 자신은 아이를 잃은 비탄에 잠겨 있는데 남편은 장모님이 전기 코드를 빼둔 수족관의 물고기가 죽은 것에 더 슬퍼하는 것 같다. 이 부부는 현실 부부다.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고 대화가 없다. 줄무늬 물고기가 자라면서 줄무늬가 사라지듯이 신혼과 지금이 너무나 달라졌고 서로에 대한 오해가 잔뜩 쌓여 있다. 샤오친의 남편은 방송국 일을 하는데 팀장이 주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의 스트레스 처리 능력은 현저히 낮다. 직장에서 터지고 집에 오면 아내에게 인간도 아니라는 취급을 받는다. 서로 진심 어린 대화가 없다. 두 사람의 결혼에 해결점이 안 보이는데 양쪽 모두에게 공감이 된다.


제2의 장쯔이라는 별명을 가진 배우가 열연하는 구자는 단호하고 지혜롭다. 위기에 처한 남편 회사에 새로운 고객을 연결하기 위해 귀부인 클럽의 한 부인에게 접근해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며 친해진다. 부자이지만 첩으로 사는 부인의 애환을 이해해 주며 그녀의 남편이 운영하는 놀이공원의 불꽃축제를 수주받는다. 구자의 능력을 잘 아는 남편은 다시 회사로 복귀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구자는 그 귀부인 클럽에서 계속 고급 정보를 알아오겠다고 거절한다. 나는 여기서 구자가 완벽한 현모양처로 나오지만, 남편에게 먼저 의견을 묻지 않고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부유한 모습이지만, 샤오친 부부처럼 진정한 대화가 없다. 매사 완벽하고 철저한 관리와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전업주부인 구자에게 그녀의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상하이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이 드라마의 캐릭터에 빠질수록 나는 정신없는 롤러코스터 같은 액션물보다 흥미가 더해진다. 사실 우리의 일상이 조용한 액션들이니까 말이다. 대화가 없으면서 찌르고, 독단적인 말만 하면서 찌른다. 어린 줄무늬 물고기가 성장하면서 줄무늬가 사라지듯이 어항이 문제가 아니라 물고기가 변하는 것이다. 가정이라는 어항도 그렇지 않을까. 살아가면서 변해가고 변하면서 상처와 오해가 쌓인다. 그 상처를 만져줄 사람을 필요로 하면서 외로워하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문제들에 짓눌린다. 나이 들면서 예전에 들었던 노래, 예전에 다녔던 곳, 예전의 그 이야기들이 그리운 건 내게 사라진 줄무늬를 찾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퇴소 안내문 문자

"7월 19일 퇴소 예정입니다. 식사 시 함께 제공된 착용해야 할 개인보호구(KF94마스크, 비닐보호복)가 제공될 예정이니 안내문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안내문에 따라 퇴소일 아침에 아침식사 후 샤워를 하신 다음 지급된 개인보호구 안에 있는 마스크와 비닐보호복(개인사복 겉에 착용)을 착용하시면 됩니다. 절차에 따라 순차적으로 퇴소를 진행할 예정이나 인원이 많을 경우 대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집에 간다!!!

오늘이 생활치료센터에서의 마지막 하루다.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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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453103_10159437665436971_8731801499720649680_n.jpg 입소해 있던 방에서 찍은 하늘들, 방문 밖 복도도 나갈 수 없는 심정을 구름이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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