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소일이 왔다
기대했던 주일 퇴소가 불발됐지만, 이곳에서 주일을 보내게 된 것에 불만이 틈타지는 않았다. 오히려 단정하게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 하루가 평안한 안식이 되는 데 마음을 쏟기로 했다. 저녁 식사 후 퇴소일에 어떻게 소독하고 물건들을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문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염으로부터 차단하는 물품을 배달해주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본 수술실 멸균 가운까지 들어 있다.
밤에 잠들기 전에 묵상했다. 남동탄에서 조용히 자연을 벗 삼아 살던 내가, 엄청 깔끔 떨며 매일 샤워를 두 번씩 하는 내가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 소식을 들었을 때의 참담함, 가족과 떨어져 세균 덩어리 취급이 되는 듯한 입소 첫날의 억눌림에서 열흘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건강하게 복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게다가 코로나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에게만 획득되는 자연 면역체 lg A를 얻는다고 하니 말이다.
나와 비슷한 것이 거의 없는 덤프 아저씨와 열흘간 지내면서 많이 친해졌다. 그분은 답답함 때문에 거의 침대에서 잠만 주무셨지만, 서로 배려하면서 잘 지냈다. 내가 테이블을 전용 책상으로 쓰는 것을 배려해 주셨고, 나는 그분이 편하게 지내시도록 아랫사람처럼 수종 드는 일을 맡았다. 화장실 청소, 폐기물 정리, 도시락 심부름 등등. 덤프 아저씨는 말투는 거칠지만, 자기 가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었다. 덤프트럭 운전도 노후에 가족들을 더 잘 부양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고, 이미 조치원에 아파트 한 채를 사두었다고 하신다. 나보다 훨씬 부자시다.^^
오늘 버스 몇 대가 온양온천역, 천안아산역까지 갈 수 있다는데 탑승자가 많으면 출발 대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상황을 보고 온양온천역까지 7킬로미터를 걸어가려고 한다. 오산대역이나 병점역까지 1호선으로 가면 집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편의점이 나오면 시원한 탄산음료수에 스니커즈 한입 깨무는 것이 소원이다. 팥빙수를 주문할 수 있는 빵집이 나오면 들어가 팥빙수를 꼭 먹고 싶다.
이번 주는 집에서의 상황을 볼 것이다. 가족들 자택 격리기간이 끝날 때까지 곁에서 아내와 아이들 보건소 검사 픽업도 해야 하니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음 주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으면 한다.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제주도다. 바닷가 현무암에 앉아 저녁노을을 보며 지금까지의 삶을 좀 돌아보고 싶다.
체중을 재봐야겠지만 살이 눈에 띄게 빠졌다. 특히 얼굴과 배가 많이 슬림해진 티가 난다. 도시락과 생수만 먹고 저녁 6시 마지막 식사 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아침에 샤워하고 퇴소에 입을 새 옷으로 환복하고 거울에 비친 사진을 찍었다. 가져가야 할 물건들 소독까지 마쳤다. 퇴소자 안내 방송이 나오면 이 방을 떠난다.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건 시원한 커피다! 그러고 보니 믹스커피를 제공받았지만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내가 커피 없이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가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싶다. 특히 여기서 지낼 때처럼 오전 시간을 밀도 있게 사용할 것이다. 오전을 잘 보내는 습관도 얻어 가니 어찌 보면 축복받은 생활치료센터 생활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21.07.19
흙과 잔디를 다시 밟으니 참 좋다.
익숙하던 일상의 환경이 이렇게 엄청난 감사로 다가올 줄이야.
라포엠이 부른 <샤이닝>을 들으며 동탄호수공원을 걸으니 만물이 새로워 보인다.
나를 받아주는 이곳이 있어서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