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동화여서 설레고 쓸쓸해지는 로맨스
개봉 20년 만에 다시 본 <노팅힐>
서른 살의 봄, 1999년 4월에 본 영화 <노팅힐>은 상영 내내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띄워 주었다. 당시 나는 대학원을 휴학하고 집에서 중환자인 어머니를 간호 중이었고, 교제하던 사람에게 내 미래와 현실이 어두워 이별을 통보받은 지 1년 정도 흐른 때였다. 그 1년간 24시간 두문불출하며 병간호하면서 글쓰기로 극복한 일상에서 자존감이 회복되어 갔다. 그 시기에 본 <노팅힐>은 내게 단순한 로맨틱 코디미 영화가 아니었다.
휴 그랜트가 줄리아 로버츠에게 달려가는 순간 뭔지 모를 들뜬 열정이 나의 현실로 달려왔다. 다시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다가 왜 그랬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1년 만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그 사람은 줄리아 로버츠처럼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내 목소리도 잊고 있어서 내가 누군지를 설명해야 하는 고통도 마주했다.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가 운영하는 작은 서점에 할리우드 스타 애나 스콧(줄리아 로버츠)이 불쑥 들어와 책을 고른다는 비현실적 이야기는 그야말로 판타지다. 게다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겠다며 윌리엄의 아내가 되어 행복한 엔딩을 맞은 <노팅힐>의 마무리는 더욱 비현실적이다. 남자들의 로망을 한껏 부풀리면서 비현실적 만남, 비현실적 키스, 비현실적 마무리의 남자 신데렐라 판타지 <노팅힐>을 개봉 20주년 기념작으로 다시 본 이유는 뭘까? 그만큼 이 영화를 본 청춘을 보낸 뒤 중년 남자로 익숙해진 현실주의에 한 번은 돌아가서 마주하고 싶은 예쁜 동화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게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붙잡고 싶을 만큼 헛헛한 삶의 문에 들어섰다. 나의 지난 20년에 죽어버린 연애세포, 동화의 판타지, 꿈결 같은 부드러움을 부활시켜 준 영화 <노팅힐>. 왜 로코(로맨틱 코미디)인지 모르겠다. 나는 영화를 본 후 슬픈 감정이 피어올랐다.
아름다운 음악, 미소, 스타 여배우 vs 소소한 서점 주인 남자
로맨스는 죽지 않는다. 숨어서 사라진 척할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 적적해지는 건 죽지 않고 어딘가 숨어서 살아 있는 로맨스의 욕구가 심장을 살짝살짝 찔러대기 때문이다. 책임져야 할 가족 앞에서 주어진 일들 앞에서 로맨스는 영화나 드라마 감상하며 살짝 올라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내 그만 들어가 계속 숨으라고 타이른다. 아내가 떠나면서 버려진 남자, 삶에 기쁨이 별로 없는 데다가 서점 매출도 매일 적자인 윌리엄 태커.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주 드나드는 거리도 아닌 노팅 힐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불쑥 그의 가게에 세계적인 스타가 들어온다. 애나 스콧은 인기를 가리려고 큰 선글라스를 끼고 여행 책들만 있는 작은 매장을 둘러보다가 친절함과 약간의 유머가 있는 윌리엄에게 책을 한 권 산다. 윌리엄은 이게 현실일까, 흥분하며 인사를 나누고 어쩌다 일어난 서프라이즈로 여긴다. 이런 장면은 남자의 심리에 핵폭탄을 던지는 셈이다. 폭발음은 윌리엄도 남자 관객도 누구나 느낄 만한 로망의 음악 소리다.
개봉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보지 않는 편인 나는 재개봉작으로 <러브레터>와 <노팅힐>을 보았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아름다운 음악, 장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스토리, 어딘가 기억 저 편을 소환해 내는 장면들이다. <러브레터>의 피아노 선율은 십 대의 설렘과 현실을, <노팅힐>의 그루브 있는 음악은 청춘의 열망과 열린 가능성을 부풀린다. 그 소환된, 그리고 숨어 있던 감정을 끄집어내 주는 것만으로 감동을 받는다. 감성은 조용한 폭발음으로 나의 인연들을 소환하고 홀로그램처럼 잠시 곁에 왔다가 사라진다. 여전히 청춘 시절만큼 소소한 중년을 보내지만, 그 시절보다는 현실주의자가 된 어깨 무거운 남자의 가슴에 줄리아 로버츠가 똑같이 활짝 웃으며 열어젖히고 들어오다니... 나는 허락할 여유도 없이 불쑥 찾아온 그녀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다시 상처 입고 비현실적이어도 붙잡고 싶은...
꿈을 꾼 거겠지. 서점을 나간 그녀가 윌리엄의 심장에 일으킨 물결은 곧 사라지고 한 때의 화젯거리로 남아야 하는데 노팅 힐의 골목에서 다시 만난다. 음료수를 그녀의 흰색 티에 쏟아붓는 영화 같은 영화의 장면으로. 그럴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합리화에 빠진다. 왜 스타 배우가 매니저도 없이 저렇게 다닐까 하는 쓸데없는 질문을 꾹꾹 누르고 '나의 가게에 들어온 그녀'에서 '나의 집에 들어온 그녀'를 만난다. 작은 가방에는 여분의 옷이 어떻게 준비돼 있을까, 하는 다시 쓸데없는 질문에게 그만 쫌! 외칠 때 애나는 윌리엄의 집을 나오기 전 그에게 인사용 키스가 아닌 영원히 못 잊을 키스를 선물로 남긴다. 얼얼하다. 그렇게 흘려보내는 선물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 천사가 현실에 온 것도 놀라운데 나의 공간에서 키스해 주고 사라지다니! 애나는 처음 만난 영국의 평범하고 소박한 서점 남 윌리엄의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저럴까? 스타로 만나는 스타들과는 다른, 소박하고 친절하고 화를 낼 줄 모르는(윌리엄이 서점의 CCTV로 발견한 책 도둑에게 조용히 인격적으로 대하는 장면에 감동하는 듯한 애나의 미소에 의하면) 모습에 호감을 느낀 걸까? 그런데 왜 내가 발휘한 친절에는 선을 넘어온 사람이 없었을까? (이 글에서 아내는 잠시 논외로 하자. 로코 후기에 복잡한 설명과 양해는 빼고 가자.) 예견돼 있었다. 다시 만나는 순간부터 쉽지 않은 연애가 될 것임을. 비현실적인 만남에 고맙다는 말을 취소한 윌리엄에게 애나는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해온다. 진짜 비현실적이어서 설렌다. 버려진 남자에게 세계적인 여배우가 다시 만나고 싶다니! 윌리엄의 낮은 자존감은 그때부터 하늘로 치솟기 시작한다.
단 하루만 같이 있어도 좋은 연애, 그러나 현실
애나의 호텔에서 여러 기자들 속에 <말과 강아지> 잡지 기자로 위장하고 만나야 하는 현실, 그것도 잠시지만 윌리엄의 임기응변에 애나는 재밌기만 하다. 연애세포 없이 본다면 무리한 전화를 건넨 여자와 거추장한 긴장점을 감내해야 하는 남자일 뿐이지만, 세계적인 여배우와 골목 서점주 남자의 접촉점이 아닌가. 용납이 될 뿐만 아니라 '내가 윌리엄이라면...' 하는 흥분과 황홀한 세계에 얼른 발을 디뎌놓게 된다. 영화인들과 관객 아무도 없는 둘만의 공간에서 윌리엄의 심정에 빠져들 때 눈앞의 애나는 인간이며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와 남자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당연히 곧, 얼마 못 간다. 길어지면 누구라도 자극은 사라지고 숙제만 남으니까. 뜻밖에도 알렉 볼드윈이 카메오로 나와 둘 사이를 흔들어 놓을 줄이야! 사실 윌리엄의 친구이며 B급 유머 담당인 조연 스파이크 역의 리스 이판도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 20년 전에는 몰랐다. 20년 전의 나에게는 줄리아 로버츠의 미소만이 탱크처럼 가슴에 진군해 들어왔을 뿐이다! 윌리엄의 현실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얼른 꿈 깨라는 속삭임만 남는다. 그 속삭임이 이 영화의 가장 현실감 넘치는 괄호 안 글자였다.
나도 불행한 사람이에요
스타 애나가 윌리엄의 친구들과 만나는 장면이 있다. 다들 그 천상의 배우 애나 스콧인지 의심한다. 그녀가 왜 우리 집 생일 파티에 온단 말인가. 윌리엄이 뭘 어떻게 했고 그녀에게 대체 무엇이기에! 일상 속 만남에 들어온 애나도 살짝 긴장한 얼굴이지만 평범한 사람들과의 생일 파티와 대화가 즐겁기만 하다. 식탁에 브라우니 한 개가 남았을 때 갑자기 제일 불행한 사람이 먹기로 게임을 제안한다. 다들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처참한 인생인지 한마디씩 한다. 윌리엄도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눈 맞아 떠나버린 얘길 하고, 누가 봐도 이 브라우니의 주인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평생 휠체어 신세가 된 벨라일 것 같다. 그런데 저마다의 불행을 듣고 있다가 애나가 '나만큰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거액의 개런티를 받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여배우가 불행하다고! 믿을 수 없다는 윌리엄과 그 친구들에게 십 대부터 다이어트를 해서 채식만 해왔고, 두 번의 고통스러운 성형수술을 감내해야 했으며, 남자 친구를 사귀다 헤어지면 전 세계에 스캔들 기사가 나간다며, 스타 여배우의 이런 불행 또한 얼마나 괴로운지 이해할 수 있겠냐며... 윌리엄의 친구들은 애나의 망언(?)을 있는 모습 그대로 따뜻하게 포용해 준다. 카메라 앞의 유명인으로 사는 그녀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 전달할 때 그 모습이 가장 사랑스러웠다. 우리는 누구나 불행을 견디고 있고 그것을 다루며 살고 있다는 공통된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찾아야 할 사랑을 억누르는 건 고통일까 선물일까
사람은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가장 편안한 사람을 찾는다. 애나는 스타가 되기 전에 찍은 영상이 문제가 되어 스캔들 기사로 터지자, 즉시 윌리엄이 있는 노팅 힐에 온다. 아예 윌리엄의 집에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윌리엄은 대본을 읽어주며 그녀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친구이자 헬퍼로서 함께 시간을 갖는다. 차라리 아픔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온 게 감사한 얼굴이다. 유명한 애나가 아닌, 상처 입은 자연인 애나가 훨씬 친근하다. 결국 또라이 친구 스파이크의 경솔함으로 모든 연예신문 기자가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여전히 애나는 스타이고 스타의 일상이 더 중요하고 익숙한 사람이다. 윌리엄은 그 스타성을 자신이 대체할 수 없다는 현실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노팅힐>의 명장면은 윌리엄이 걸어가며 노팅 힐 거리와 사람이 바뀌는 부분이다. 애나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며 잊으려 애쓰는 윌리엄의 걸음이 깊이 공명돼 온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서점에 들어온 애나가 핵폭탄의 폭발음이었다면, 잊으려는 걸음의 노팅 힐 거리는 비바람의 싸늘한 청각 효과를 일으킨다. 물론 영화에서는 감미로운 음악만 흐른다.
윌리엄은 거의 시체처럼 살며 시간이 약인 얼마의 기간를 보낸 뒤에 친구들에게 이제 밝게 살겠다고 선언한다. 소개팅도 나가 본다. 하지만 애나를 대체할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잊어버린 척 간직하며 살 것인가,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려 누르며 살 것인가. 애나가 가까운 곳에 촬영하러 왔다는 소식에 앞뒤 보지 않고 달려간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대해줄까. 무조건 달려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통일까, 선물일까.
마지막일 수 있을 때 한 번은 내볼 용기
오랜만에 만난 그녀, 얼마 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모든 떠들썩한 스캔들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다. 윌리엄을 거부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녀는 윌리엄을 촬영장 안으로 초대한다. 음향팀에서 준 헤드폰으로 대사를 들으며 기다리던 윌리엄의 귀에, 애나가 입이 싼 남자 배우에게 조심스럽게 한 말이 들려온다. 자신이 별 것 아닌 사람으로 표현된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서점에 돌아온다. 그래, 맞다. 이것이 현실이다. 각자 다른 인생이 있고 길이 있으니까. 나는 뮤지컬 영화 <라라 랜드>의 결말에 공감한다. 그렇게 사랑했지만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하지 않는 결말 말이다. 낯선 다른 사람과 웃음 지으며 스크린 밖으로 걸어가는 현실적인 결말이기를. 심지어 20년 만에 재개봉한 이 영화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이 뒤집어지길 바라다니.
애나는 촬영장에서 말도 없이 가버린 윌리엄의 서점에 다시 온다. 그녀가 내게 다시 올 줄은 처음 올 때처럼 꿈에도 몰랐다. 결혼에 실패하고 애나에게도 버림받는 상처를 겪은 윌리엄에게 그리운 그녀가 다시 온 것이다. 윌리엄의 집과 자신의 아파트를 연결한 그림인 샤갈의 <신부> 원화를 선물로 가지고 온 애나가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을 건넨다. 윌리엄이 가지고 있는 가짜 샤갈의 작품을 애나가 소장한 진짜 작품으로 대체하고, 당신의 <신부>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윌리엄은 이런 또 한 번의 비현실적 현실에서 반복하여 상처 받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리 아프지? 버림받아 본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다시 만나 '당신이 내게 소중한 사람'임을 각성시켜 준 적이 있던가. 이것이야 말로 비현실적인 영화 같은 장면이다. 윌리엄은 애나에게 이런 영화 같은 선물을 받는다. 바로 남자의 자존감이 상하지 않고 고귀하게 다뤄지는 여자의 마음을.
그녀는 샤갈의 <신부>를 두고 쓸쓸한 작별 키스를 남기고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윌리엄은 이 혼란스러움을 친구들에게 털어놓는다. 다들 잘했다고, 네 결정을 존중한다고, 넌 소중하다고, 좋은 여자는 어딘가 또 있을 거라고 하지만... 윌리엄에게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 평생을 후회할 순간이 될지 모를 지금, 그의 친구들은 똘똘 뭉쳐서 도로를 질주하며 애나를 만나도록 돕는다. 카 액션 장면을 거쳐 기자 회견 장소에서 <말과 강아지> 잡지 기자로 다시 위장한 윌리엄은 로맨틱하게 단상의 애나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그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냐고. 애나는 영원히,라고 한다. 에잇! 저게 뭐야. 그렇지만 그 판타지는 남자의 로망을 한껏 끌어올린 최고의 순간이다. 꿈속에서라도 경험하고픈 장면이지 않은가.
노팅 힐의 공원에서 윌리엄과 애나는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여유 있고 행복한 오후를 즐긴다. 판타지에 빠졌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그 장면에서 나는 궁금해진다. 윌리엄은 서점을 계속 운영할까? 애나가 벌어놓은 수입으로 하고 싶은 것 마음껏 누리며 살겠지. 제발 이러지 좀 말자. 식상한 말,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그런 현실도 로망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어느 날 내 공간에 갑자기 들어왔으면 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하는 20년 전 청춘은 끝났다. 그 감성만 숨 쉬고 있을 뿐이다. 노팅 힐의 서점은 사라졌을까? 관광지로 남아 있을까? 혹시나 사라졌을까 봐 검색해 보고 싶지 않다. 로망은 가슴속에 살려두어야 인생의 작은 낙이라도 존속하게 된다.
줄리아 로버츠의 큰 입으로 활짝 웃는 그 환한 미소가 다시 가슴에 들어올 때 여전히 파문이 이는 감성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에 작은 행복을 둔다. 비현실적 남자 동화여서 쓸쓸해져 버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노팅힐>은 <라라 랜드>를 본 후 느낀 아련함보다 더 아련해져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까지 한다. <노팅힐>이 수작인 까닭이 그 지점에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가장 먼저 달려가 기대고 싶은, 편한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