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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May 06. 2020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1993)

살아서 장국영을 보는 슬픔, 명작을 다시 보는 기쁨

 
장국영의 기일인 4월 1일에 재개봉하려 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5월 1일 개봉했다고 한다.

극장은 여전히 한산했고, 나는 3시간을 몰입하면서 이 대작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감상한 것에 감사했다. 이처럼 재개봉으로 본 명작이 <노트북>이었는데 <패왕별희>는 그보다 더 큰 감동을 지닌 명작이다.


1993년 첫 개봉 시 나는 군 복무 중이었다.
개봉일을 살펴보니 홍콩에서 1993년 1월 1일, 중국에서 7월 26일, 미국에서 10월 15일, 한국에서 12월 23일이었다. 그리고 재개봉이 2017년 3월 30일이었고, 올해 5월 1일 2차 재개봉은 디지털 리마스터링 확장판으로 최초 개봉작(156분)보다 15분이 늘어난 171분 분량이다. 15분이 어디에서 잘려나갔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이런 명작은 꼭 확장판으로 감상해야 한다.


1994년 봄에 제대했을 당시 TV를 보면 개그맨들이 종종 경극 흉내를 냈는데 <패왕별희>의 장국영을 희화한 거였다. 그러나 이번에 본 영화에서 경극은 개그 프로에서 흉내낸 데 불쾌감이 들 정도로 훌륭한 예술로 다가왔다. 내가 1993년에 봤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동을 접하며 뒤늦게 본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명절에 TV에서 더빙판으로 두 차례 한 것으로 안다. <패왕별희>는 명절 TV 특선영화로 봐서는 안 될 영화다.


타이베이, 도쿄, 교토 등 인접 국가를 다녀와 중국 근대사를 공부한 뒤 <패왕별희>를 보았기 때문에 다채로운 경험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영화가 관통하는 중국의 격변기에서 예술의 위치, 경극 배우로 자라난 고통의 인생,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한 감정 이해 등은 93년 스물넷 나이의 내가 봤다면 스쳐 지났을 포인트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인 이 영화는 소년기의 배우들이 영화가 주는 매력의 절반은 차지한 것 같다. 특히 장국영의 두 번째 아역배우로 나온 76년생 인즈는 연기도 훌륭했지만 눈매가 완전히 장국영의 어린 시절이라고 느낄 만큼 수려하면서 슬픔이 가득했다.


몸 파는 여자에게 태어나 길거리 공연 극단에 맡겨진 아이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우희 역의 최고의 배우가 된 장국영, 적벽대전에서 조조로 분해 장엄한 연기를 보여준 패왕 역의 장풍의, 그의 아내로 나온 공리. 세 배우의 93년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에 집중한 시간이 아깝지 않다.


특히 장국영이 떠나간 것을 알고 스크린으로 그를 마주한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영화 내내 패왕을 떠나는 우희 역할처럼 슬프고 처절해 보인다.


청 왕조 말기에서, 일제 침략기를 거쳐 국민당 집권과 국공내전, 그러다 공산당 집권 후 문화대혁명까지 얼마나 어려운 시대였는가. 경극 무대는 그 시대를 관통하며 예술로서의 존귀한 대접을 받기보다 지배자에 의해 유린되고 심판까지 받는다. 오직 경극만 알고 살아온 장국영에게 가해진 폭력의 시대만큼 순수한 인간이 살기 어려운 시대 변화를 말하는 듯하다. 그의 눈빛과 손의 움직임에서 영화 내내 슬픔이 전해져 왔다. 쳉 데이는 국민당과 공산당만 아니었으면 경극이 일본까지 전해졌을 거라며 국가 폭력에 쓴소리를 하며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가 끝나 집에 오는 길에 버스를 타지 않았다. 걸으면서 1993년부터 2020년까지 얼마나 빨리 흘러왔고,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지의 상념이 밀려왔다. 장국영은 떠나갔지만, 스크린에서 그는 여전히 빛났다. 나이 먹어가는 나도 스무 살 시절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시대에서 바라본 기대와 환희는 변하고 사라졌지만,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자축은 남기련다. 힘 있는 자들이 주도하는 변화보다 문화와 예술이 남기는 변치 않는 가치가 오래간다는 것을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순간에 본 이 영화에 대한 기억 또한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기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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