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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Aug 10. 2021

리틀 포레스트 (2018)

자연과 음식으로 사람다워지는 회복 탄력의 미학

 



브런치 무비 패스로 <리틀포레스트>의 시사회 티켓 2장을 얻었다. 시골에서 자란 추억을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아내와 데이트할 계획이었는데 영화 시작 몇 시간을 앞두고 아내가 같이 갈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동행할 사람을 찾기 어려워 옆좌석은 코트를 벗어두는 용으로 비워두고 관람했다(신촌 메가박스 저녁 8시).


원작이 고단샤에서 연재한 만화라는 사실과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 두 편의 영화로 제작된 일본판이 꽤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다는 사전 지식 없이 극장에 갔다. 이런 얘기하면 아재 인증이겠지만 난 1994년작 <포레스트검프>가 떠올랐다. 순수한 외톨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라는 연결점이 있겠지만, 전혀 다른 영화다. 극의 흐름과 분위기에서 일본 작품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얼마나 그립던 드라마인가. 지친 도시인이라면 일본보다 더할지 모를 한국에서 진작에 나왔어야 할 싱그러운 힐링 드라마다.


<아가씨>와 <1987>에서 연기 잘하는 유망주 정도로 생각한 김태리는 <리틀포레스트>의 혜원 역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혼자서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간다. 내레이션과 요리하는 모습,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농사일을 하는 장면 모두 잘 소화해냈다.

임순례 감독은 남녀 애정 요소를 잔잔하게 처리하고 사계절과 음식, 고향의 봄과 같은 추억의 정서를 아름답게 소환했다. 혜원 엄마 역의 문소리는 두말할 것 없는 대배우이다. 그녀가 대사를 칠 때마다 묘한 에너지가 전달된다.



혜원 가족은 아버지의 병환으로 요양 차 시골로 내려온다. 병수발하다가 남편을 떠나보낸 뒤 엄마는 결핍을 감추고 어린 혜원에게 다양한 요리로 사랑한다. 혜원이 수능을 마친 어느 날, 편지 한 통 남기고 가출한다. 엄마는 왜 딸을 버렸을까에 대한 의문을 쫓지 않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시골을 떠날 꿈을 꾼 혜원보다 먼저 떠난 엄마에게 조금 상심하나 상처받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을 사랑해 준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혜원을 향한 엄마의 사랑법이란 것이 영화가 끝날 즈음 떠오른다.


대학생이 된 혜원은 편의점 알바를 하며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자신이 정성껏 도시락을 만들어 만나던 남자 친구는 임용고시에 붙지만 자신은 떨어진다. 시험, 연애, 취업 모두 뜻대로 되지 않은 혜원은 도피하듯 시골집에 내려온다. 도시에서 지친 마음은 옛 추억의 집에서 오랜 친구들과 해후하고 직접 요리를 해 먹으며 달랜다.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자전거 타고 한참을 달려야 한다. 이 불편한 시골집은 겨울에만 잠깐 머무르기로 했지만, 혜원은 엄마가 요리해 주던 기억과 함께 사계절을 보낸다.



스토리는 별다른 특색이 없다. 그런데 난 이 영화의 화면에서 단 한순간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선명한 사계절과 각양각색의 제철 요리에서 어떤 액션보다 다채롭고 화려한 에너지를 받았다. 생각하며 들어야 하는 대사들도 화면이 주는 휴식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조금 비현실적이라면 한국의 시골집인데 예쁜 일본 주방처럼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그릇과 요리 기구들, 환한 자연빛(건축 설계 각론에서는 음식의 상함을 막기 위해 부엌에 과도한 태양광은 들어오지 않게 한다) 정도가 판타지스럽다. 하지만 그 판타지에서 하늘 한 번 제대로 쳐다볼 여유 없는 고단하고 삭막한 도시인은 치유를 얻는다.


혜원은 요리를 시도할 때 엄마가 한 요리 잔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만큼 엄마가 해준 요리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 자신은 조금 다르게 변형시켜 맛보면서 그리움과 자기만족을 채운다. 도시에서 살면서 우리는 삶을 선택할 자유를 잃는다. 어쩌면 인간 존재의 근원인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박탈 당하여서 불안과 불행을 앓는 게 아닐까. <리틀포레스트>는 그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누군가에게 바보 취급당하며 루저로 살아온 중병의 자신을 보여준다. 그 중병의 자각에서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설렘이 있다는 것 아닐까. 도대체 우리는 복잡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도시에서 설렘을 가진 적이 언제였던가. 혜원은 봄이 오기 전에 돌아가려는 마음을 잊고 쌔싹으로 요리하고, 아카시아 꽃으로 튀김을 만들어 먹는다. 직접 해먹는 음식과 함께 다음 계절을 설레며 맞는다. 친구 재하(류준열은 말단 회사원의 구차함을 버리고 귀농한 재하를 잘 소화했다. 혜원에게 마음이 있는 츤데레인 그의 몸짓이 여러 번 웃음을 줬다)와 은숙(막말도 친근하게 하는 은숙 역의 진기주라는 신인 배우를 발견했다)을 불러 요리를 해준다. <리틀포레스트>의 삼분의 이는 요리 장면이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혜원의 다양한 요리, 과거 엄마가 해준 요리가 아픔을 잊게 하고 기쁨을 자라게 한다. 같이 먹는 장면에서 웃고, 혼자 먹는 장면에서 아프니까 청춘을 극복해 낸다.


추운 겨울 지치고 상한 몸과 마음으로 내려온 첫날부터 혜원은 얼어붙은 텃밭에서 배추를 캐내어 배춧국을 끓여먹는다. 다음 날 장작을 패고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하여 수제비를 해먹고, 땀 흘린 뒤 막걸리도 만들어 마신다. 재료부터 요리가 만들어지는 기다림을 거쳐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첫사랑을 만나는 듯한 설렘을 전달한다. 원래 첫사랑은 시작한 후보다 시작하기 전까지의 설렘이 기쁘고 아름다운 법이다. <리틀포레스트>는 두리번거리면 보이는 엄마와의 사랑이 있던 작은 숲으로 초대하여 자신이 잃어버린 설렘을 회복시켜 주는 영화다.


금메달을 딴 사람들의 교과서적인 말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말이다. 왜 우리는 소중한 나, 조심히 다루어야 할 나와 다투고 이겨야만 하는 걸까.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꼭 금메달이어야 할까. <리틀포레스트>는 조금 다르게 살아 보기, 내가 몰입하고 있는 곳이 불행하다면 일단 떠나 보기, 나를 깎아서 쟁취하는 성공 담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곳에 있어 보기를 제안한다. 남과도 나와도 다투지 않는 곳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순수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로 직접 해 먹는 맛있는 요리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뿌리내려야 할 곳을 알고 그것을 알려준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이 견딤의 근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곳을 만나는 것이다. 자연과 음식의 아름다움으로 회복시켜 준 인간미, 기억 속의 친정과 고향에서 뿌리내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모든 상황을 견디게 한다. 결국 회복은 인공 조미료, 비인격적 대우, 결과 중심의 성장에서 벗어나 자연과 나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인심, 기다림, 성숙에서 얻게 된다.


<리틀포레스트>에서 입맛을 돋우는 화려한 음식과 자연의 풍광만큼 다이내믹한 액션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공 김태리는 너무 매력적이다. 사계절을 지나면서 농사일을 많이 한 얼굴로 좀 망가져도 좋을 텐데, 여주인공이 그 무엇으로도 망가지지 않는 얼굴인 것은 일본판도 마찬가지다. 이런 아기자기하면서 에너지가 넘치는 감성 영화를 왜 우리 원작에서 찾지 못할까. 남녀 간의 이야기, 때리고 부수는 이야기 말고 음식과 자연만으로 완성되는 치유와 감성 드라마가 나와 주어 고마웠다. 한국 로컬화로 잘 각색했다. 저런 시골집과 마을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영화 촬영지가 경북 의성이다. 여자 컬링 시스터즈들의 고장, 의성이 때마침 영화에서도 빛이 난다. 정식 개봉 후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이고 의성에 여행하고 싶게 한 섬세한 작품이다. 일본판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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