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이라는 말이 놓치고 있는 것들

치매를 부르는 우리의 언어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by 황교진

《초고령사회 사람들》 출간 기념 심포지엄의 사회를 보면서 사전 도착한 청중에게 퀴즈를 냈다. “국제 명칭인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을 한국에서는 ‘치매 극복의 날’이라고 부른다. 날짜는 언제인가?” 치매안심센터 근무자 중에 한 분이 정확하게 ‘9월 21일’을 맞혔다. ‘치매 극복의 날’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는 참석자도 적지 않았다.


노년, 주거, 돌봄 분야를 깊이 다루는 칼럼니스트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심포지엄 참석 후 의미 있는 문제를 제기했다.


“저는 ‘치매 극복의 날’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극복’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장애도 치매도 극복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와 포용으로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법정기념일 명칭에 버젓이 '극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도 똑같이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이라고 했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치매’라는 말 자체도 논란이 있어 ‘인지증’으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이 많은데, 거기에 ‘극복’까지 더하니 더욱 거부감이 생겨요”라고.


‘치매 극복’.
오랫동안 정부 정책과 캠페인, 각종 행사 제목에서 익숙하게 반복된 말이다. 하지만 이 표현이 환자와 가족에게 어떤 무게로 들리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된 적이 없다.


2023년 8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장애 극복’이라는 표현이 장애인의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장애인의 자기 정체성을 훼손하고 사회적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법령 개정을 권고한 사실은, ‘치매 극복’이라는 표현이 전하는 어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극복”이라는 말이 불러오는 낙인


인권위는 ‘장애 극복’이 장애를 개인이 이겨내야 할 시련처럼 오인하게 하고, 사회적·제도적 장벽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장애인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식 문서에서 사용하지 않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치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치매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 장기적 돌봄의 상태다. 그럼에도 ‘극복’이라는 단어는 환자에게 “극복하지 못한 책임”을, 가족에게는 “예방 못 한 죄책감”을 덧씌운다.


언어는 시선을 만들고, 시선은 정책의 방향을 정한다. ‘치매 극복’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치매를 개인의 책임과 실패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후로 볼 수 있다.



“치매를 1년 늦추겠다”는 목표를 철회한 일본 사례


2019년 당시 일본 아베 정부는 ‘치매 대강(大綱)’ 초안에서 “향후 10년간 70대 치매 발병 연령을 1년 늦추겠다”고 제시했다. 이를 통해 70대의 치매 비율을 10% 줄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불과 3주 만에 이 수치 목표는 철회됐다. 언론·의료계·단체·정치권에서 치매 예방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 예방 중심의 메시지가 환자에게 ‘노력 부족’이라는 왜곡된 책임을 돌릴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잇따랐다. 예방 담론은 이미 치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더 소외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국 일본 정부는 해당 목표를 공식 정책에서 삭제하고, ‘공생사회’라는 틀로 방향을 돌렸다. 숫자가 아니라 돌봄과 환경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 사례는 치매를 질병의 문제로만 보는 언어·정책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예방 효과에 대한 과도한 약속은 오히려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을 키우고, 돌봄 시스템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은 여전히… 치매 용어 변경은 국회에서 멈춰 있다


한국에서도 ‘치매’라는 용어가 갖는 부정적 의미를 줄이고자, ‘인지저하증’, ‘인지증’ 등의 대안 용어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일본이 2004년에 이미 ‘치매(癡呆)’ 대신 ‘인지증(認知症)’을 도입해 법으로 ‘치매’를 쓰지 않도록 한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늦은 움직임이다. ‘치매’라는 단어가 가진 역사적 낙인성과 차별성을 생각하면, 이는 단순한 어휘의 문제가 아니다. 돌봄 주체들의 존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가치의 문제다.



‘치매머니’라 부르는 순간, 사람은 사라진다


최근 국내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치매머니’라는 용어도 재고가 필요하다. 이 표현은 일본의 ‘인지증머니(認知症マネー)’에서 그대로 들어온 말로, 치매로 인해 본인 스스로 자산을 관리하기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동결된 금융·부동산 자산을 의미한다.


그러나 ‘치매머니’라는 표현은 사람이 아니라 돈에 초점을 두고, 자산을 사회적 위험 요인으로만 바라보며, 결국 치매인을 관리되지 않은 금융 리스크의 소유자로 축소한다.


내가 치매머니를 ‘인지보호자산’이라는 용어로 사용하자고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산을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보호해야 할 권리의 영역으로 바라보자는 뜻을 전하고자 한다.



언어가 바뀌면 돌봄의 방향이 바뀐다


인권위의 판단, 일본의 정책 실패, 한국의 용어 논의 지연,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표현들 모두가 말한다. 우리가 치매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것은 단지 언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치매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극복’이라는 말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사회적 돌봄 의무를 흐린다. 부정적 용어는 환자와 가족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 잘못된 언어는 정책의 방향을 왜곡한다.


치매국가책임제, 통합돌봄, 장기요양 개혁…. 어느 것도 언어의 토대 없이 설 수 없다. 이제는 치매를 둘러싼 언어를 다시 만드는 일을 사회적 과제로 인식해야 할 때다. 언어는 현실을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먼저 바꿔놓는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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