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돌보기 쉬운가’로 나누는 사회에 대하여
돌봄 현장에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그 어르신은 착한 치매예요.”
대개 공격적 행동이 없고, 배회나 거부 반응이 적으며, 돌봄 지시에 순응하는 치매 노인을 가리킨다. 돌봄의 무게에 짓눌린 보호자들에게 이 말은 한 줄기 안도감이 되기도 한다. 치매에도 ‘착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상황을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돌봄의 부담을 견뎌야 하는 현실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쓰는 이 표현은 치매를 겪는 당사자의 언어가 아니다. 당사자에게 치매는 증상일 뿐인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 증상을 착하다, 나쁘다로 나누기 시작했다.
치매 증상을 ‘착하다’ ‘나쁘다’로 구분하는 기준은 누가 편한가, 누가 힘든가에 있다. 즉, 착한 치매로 나누는 기준은 늘 돌보는 쪽에 있다. 장애를 두고 ‘돌보기 쉬운 장애’라고 말하지 않고, 세심하고 헌신적인 돌봄이 필요한 중환자에게 ‘나쁜 병의 환자’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가벼운 질환의 환자를 두고도 ‘착한 환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치매는 왜 ‘착한 치매’로 특별히 분류되고 있을까. 그렇게 분류하는 근거에 주목해 보자. 유독 치매에서만 이 표현이 관행처럼 쓰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치매 돌봄이 구조적으로 어렵고, 지원 체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치매’라는 말은 고립된 돌봄 환경에서 보호자들이 상황을 설명하고 감당하기 위해 선택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돌봄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언어가 곧바로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 표현이 개인적 대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일부 영역에서는 ‘착한 치매로 가는 법’, ‘문제 행동 없는 치매 관리’ 같은 제목의 책과 강의,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다. 겉으로는 가족을 돕는 정보처럼 보이지만, 전제는 ‘착함’을 하나의 기준으로 설정하고, 증상을 이해하기보다 돌봄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치매를 재단한다는 데 있다. 이때 왜 그런 행동이 나타나는지, 환경은 안전했는지, 의사소통은 존중적이었는지, 통증이나 불안은 충분히 살폈는지 같은 질문은 뒷전으로 밀린다.
흔히 ‘문제 행동’이라 치부되는 BPSD(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치매의 행동·심리 증상)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이를 교정해야 할 문제로 보기보다 치매 환자가 자신의 불편이나 필요를 드러내는 하나의 신호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행동은 치매가 더 진행됐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 통증이나 불편감, 의사 표현의 어려움, 과도한 통제에 대한 저항 등이 겹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동을 줄이는 데에만 집중해 왔고, 왜 그런 행동이 나타났는지를 묻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증상을 억제하는 돌봄이 아니라, 그 배경과 맥락을 함께 살피는 돌봄으로의 전환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 지점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기준을 세워왔다.
영국에서는 알츠하이머 소사이어티(Alzheimer’s Society)를 중심으로, 공격성이나 배회처럼 돌봄 과정에서 어려움을 주는 행동을 ‘문제 행동(Challenging Behavior)’으로 단정하는 표현 사용을 지양하고, 이를 치매인이 자신의 불안이나 필요를 드러내는 의사소통의 한 방식으로 이해할 것을 공식 가이드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이러한 행동이 개인의 성격이나 ‘나쁜 상태’ 때문이 아니라, 통증이나 불안, 낯선 환경에 대한 혼란, 존엄이 침해된다고 느끼는 상황에 대한 반응일 수 있으며, 언어 선택 자체가 돌봄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네덜란드의 치매 돌봄 역시 같은 맥락에 서 있다. 네덜란드는 국가 치매 전략에서 ‘사람 중심 돌봄(Person-Centered Care)’을 명시하고, 증상 통제보다 환경 조정과 관계 중심 접근을 우선한다. 공격적 행동이나 반복 행동을 교정해야 할 문제로 규정하기보다 환경 설계와 일상 구조를 바꾸어 증상이 증폭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 원칙이다. 이 접근에서는 ‘돌보기 쉬운 치매’와 ‘어려운 치매’라는 구분 자체가 의미 없다. 치매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돌봄 체계의 준비 정도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문제 행동’이라는 표현을 점차 재검토해 왔다. 일본의 치매 정책과 임상 현장에서는 BPSD를 치매인의 ‘의사 표현’으로 해석하는 관점이 널리 공유돼 있다. 지역포괄케어시스템 안에서 재가 치매인을 지원할 때 증상의 경중보다 생활 환경과 관계 맥락을 먼저 점검하도록 지침을 뒀다. 치매인이 ‘순응적인가’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그 변화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다.
이 흐름에서 보면 ‘착한 치매’라는 표현은 몹시 뒤처진 언어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치매인을 ‘나쁜 상태’에 있는 존재로 분류하고, 가족에게는 죄책감과 좌절을, 돌봄 현장에는 차별적 대응을 남긴다. 무엇보다 치매 당사자의 존엄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표현이다.
3월 27일 시행되는 돌봄통합지원법은 재가 케어와 지역 포괄 돌봄을 핵심으로 한다. 시설 중심, 관리 중심 돌봄에서 벗어나겠다는 방향 자체는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돌봄을 바라보는 언어와 관점이 그대로라면 현장은 달라지기 어렵다. 만약 지역사회 돌봄에서도 ‘착한 치매는 집에서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설로’라는 암묵적 기준이 작동한다면, 통합돌봄은 또 다른 배제의 장치가 될 수 있다.
재가 돌봄이 대안이 되려면, 돌봄의 난이도를 개인의 성격이나 순응도로 환원하지 않는 기준이 필요하다. 문제는 ‘치매가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돌봄 지원이 부족해서 발생한다는 점을 제도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충분한 인력, 시간, 다학제적 지원이 전제되지 않는 재가 돌봄은 가족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하는 고통의 방식이 될 뿐이다.
우리가 목표로 삼을 것은 ‘착한 치매’가 아니다. 치매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사회다. 치매 증상을 도덕적 언어로 평가하지 않는 공적 기준, 행동 통제가 아니라 이해와 환경 조정을 중심에 둔 가족 교육, 지역 돌봄 인력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적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 이 표현을 우리는 얼마나 무심하게 사용해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치매는 착해지지 않는다. 다만 사회가 더 준비될 수 있고 그것이 마땅하다. ‘착한 치매’라는 말이 사라질수록 우리는 치매인을 존중하는 사회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다양한 치매 증상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를 얻게 될 것이다.
황교진 _디멘시아뉴스 편집주간, 매거진 <Dementia>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