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책] 한국에 없는 마을

치매를 앓아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마을은 언제쯤 한국에 생길까

by 황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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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책, 《한국에 없는 마을》


감성 에세이를 쓰다가 작년 11월에 《초고령사회 사람들로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을 처음 냈고, 이어서 비슷한 주제이면서 제 전공을 살린 책을 썼습니다.


디멘시아뉴스 기자로 일하고 있어서 가능한 기획 연재였고, 그 글들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만든 이 책은 건축의 관점에서 치매 돌봄을 바라본 기록입니다. 묻어둔 전공의 언어를 본격적으로 적용해 집필한 첫 책이어서 몹시 설렙니다. 공간이 삶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지, 치매라는 조건에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일본 현지 답사 없이 방대한 문헌과 자료 분석을 통해 일본 사회를 설득력 있게 해석해 냈습니다. 이 책을 쓰는 과정도 유럽 각국의 치매 마을과 치매 친화 도시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 건축 회사의 공식 자료와 공개된 연구·정책 문헌을 토대로 구성했습니다. 개별 사례의 나열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왜 이러한 마을과 도시 구조가 필요한지를 묻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통합돌봄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둔 지금, 돌봄을 ‘서비스’가 아니라 ‘환경과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은 의미 있는 참고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복지·주거·지역이 분절되지 않고 연결될 때 가능한 풍경을 공간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한국에 없는 마을》을 쓴 바탕에는 어머니를 돌본 오랜 기간의 제 삶이 축적돼 있습니다. 가족을 돌보는 일상이 무엇을 무너뜨리고, 무엇을 끝내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기획 전반에 자연스럽게 반영했습니다. 그래서 해외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시선은 끝까지 한국의 현실에 머물러 있습니다.


책은 건축과 환경 매거진 느낌으로 컬러 사진들이 다양한 디자인으로 구성돼 있고, 온라인으로 연재한 글에서 볼 수 없는 인사이트를 곳곳에 삽입했습니다. 김경인 박사, 노태린 대표, 송영신 변호사 등 도시·건축, 돌봄 현장, 사회복지에서 활동하는 추천인들은 이 책이 특정한 ‘마을 모델’을 제시하기보다 치매가 있어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태도와 관계를 묻는 책이라고 언급해 주셨습니다.


요양시설 확충을 넘어 치매가 있어도 괜찮은 동네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록이라는 점을 서문에 제시했고요. 아직 한국에는 없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해질 마을에 대한 인사이트를 담았습니다.


에필로그를 남깁니다.





한국은 치매 마을을 가질 수 있는 사회인가


13편의 원고를 마무리하며 한국 사회는 과연 호그벡의 철학을 계승한 치매 마을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졌다. 더 정확히는, 우리는 그것을 정말로 원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좋은 시설’을 만드는 데 익숙했다. 크고, 새롭고, 안전해 보이는 공간을 지어 왔다. 그러나 치매 마을이 던지는 질문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이것은 건축의 문제가 아니라 치매인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고,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노인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문제다.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대학병원 유치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치매 돌봄 시설이나 치매 마을을 계획 중이라는 소식에는 지역 부동산 가격 하락을 먼저 걱정한다. ‘우리 동네에 왜 그런 시설이 들어오느냐’는 반응은, 치매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격리해야 할 불행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치매 마을을 또 하나의 요양시설로, 관리와 보호의 공간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해외 사례들이 반복해서 보여주듯, 치매 마을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지역사회 안에 열려 있는 생활 공간이며, 주민과 섞여 살아가는 일상의 일부다. 치매인은 돌봄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동네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전제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모델이다.


우리는 솔직하게 물어야 한다. 치매 마을이 우리 동네에 들어온다면, 그것을 ‘피해야 할 시설’이 아니라 ‘미래의 나를 위한 인프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지금은 타인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우리 자신과 가족이 이용하게 될 예비 의료·돌봄 공간으로 기꺼이 환영할 수 있는가. 선진국들처럼 지역 주민들이 먼저 나서서 “이런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형성될 수 있을까.


물론 제도적 한계도 분명하다. 토지 이용 규제, 재정 구조, 의료와 돌봄의 분절된 체계, 지방정부의 정치적 부담까지 치매 마을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벽은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한 여러 나라의 사례는, 완벽한 제도 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치매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지자체장, 시설장 등 먼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 선구자가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이 문제를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우리 사회에서는 누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치매 마을은 요양시설의 대안이 아니다. 그것은 돌봄을 시설 안에 가두지 않고, 삶의 공간으로 다시 풀어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요양시설과는 그 본질부터 다르다. 관리의 효율보다 삶의 지속성을, 통제보다 선택을, 보호보다 관계를 우선에 두는 방향 전환의 모델이다. 결국 치매 마을이 가능한 사회란, 늙음과 취약함을 공동체의 실패가 아니라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다.


이 책에 소개한 마을들은 완성형 모델이 아니다. 각국의 문화와 제도, 지역 여건에 맞게 다르게 진화해 온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필요한 것도 ‘한국형 호그벡’이라는 복제물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조건과 감수성 속에서 토착화하는 새로운 상상일 것이다. 그 출발점은 거창한 단지가 아니라, 한 동네의 태도 변화일 수도 있다.


치매는 피할 수 없는 노년기의 질환이다. 그러나 그 시기를 어떤 공간에서, 어떤 관계 속에서 맞이할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서두에서 던진 질문을 다르게 가져 보자. 한국 사회가 치매 마을을 가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선택을 외면한 채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이 책은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 의 지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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