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구하는 건축가, 제3세계로 간 김원철 소장
“건축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일, 소외받은 이웃을 위하여 일할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Architect 4 Life(생명을 구하는 건축가)'를 설립하여 제3세계의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MBC 예능 '러브하우스'에서 따뜻한 건축가로 익히 알려져 있는 김원철 소장. 어렵게 사는 중환자 가족의 집을 고쳐준 뒤 기뻐서 우는 그들의 손을 잡고 눈물로 축복하던 그 따뜻한 모습을 기억한다. 공간에 행복을 불어넣는 김 소장은 그 후 기독교 신자가 되어 평신도 선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현재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에 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무상원조 프로젝트인 콩고국립박물관 신축공사 현장에 상주 CM(Construction Management)으로 있습니다. 아내와 두 딸과 함께 낯선 땅에 온 지 만 2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익숙한 모든 것과 다른 곳이지만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 마음이 열려 이 땅에 오게 되었습니다.
건축가가 되기까지 성장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꿈이 건축가이셨는지요?
저는 1964년생입니다. 제 부모님 세대는 만만치 않은 시련과 가정사가 있었죠. 자신들이 겪은 어려운 현실을 아들이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는 늘 "서울대 법대에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3 무렵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는 정보공학과에 지원했지만 낙방했고 2차로 지원한 건축공학과에 합격했습니다. 개인적인 꿈은 천문학과에 진학해서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군 입대 전에는 방황하며 공부를 멀리했고 제대 후에 제자리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프랑스 유학에 대한 기회를 잡아서 프랑스로 갔습니다. 이국땅에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동시에 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절에 건축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터졌습니다.
MBC '러브하우스'를 통해 김 소장님을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시 김 소장님의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에 시청자들이 큰 감동을 받았는데요. 그 방송을 하기 전후의 소감은 어떠신지요?
2001년에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건축사무소를 개업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일은 없고 대출만 쌓여가던 시절에 홍보 목적으로 방송을 시작했죠. 짧은 기간이었지만 목적도 이루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첫 방송으로 이창순의 집을 지어 주고 몇 개월 지났을 때 창순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새 집에서 인터넷으로 공부하여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었다며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어 공부는 워낙 기초가 없어 과외를 하고 싶다고 해서 과외를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 후 창순이는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경기도 군포에서 지하철로 통학하여 대학원까지 마친 뒤 현재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창순이를 2001년 말에 만났을 때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만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 청년이 대학에 진학하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건축을 통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방송으로 유명해지면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때마침 신앙을 갖게 되면서 저에게 주어진 한번 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지선 교수(한동대 사회복지학)를 만나면서 뒤늦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그 믿음의 과정에 대해 들려주세요.
2004년 초 지선이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당당하고 유머러스한 태도를 보면서 큰 감화를 받았는데 대화 중에 그녀의 웃음과 자존감은 믿음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허접한 인생을 살고 있는 제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지선이는 저를 온누리교회 예배에 초대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저는 지선이에게 칭찬(?) 받으려는 마음에 새신자 과정 7주를 보내고 세례증서를 받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마치 번개를 맞은 것처럼 제 주변의 모든 것이 예수님과 연관되어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배금주의에 물들어 속물인 제 인생관을 하나님이 세밀하게 터치하셨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져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돈 좀 주세요"라고요. 하나님은 돈을 주시지 않으셨죠. 회사는 파산했고 보증을 서주신 부모님의 집마저 경매에 넘어가는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 문제는 돈이 해결되는 데 있지 않고 다른 데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연약한 저는 하나님만 붙들면서 세상의 시각으론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지만 상실감이나 공허함이 없었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들도 다 지나갔습니다. 2008년 사업을 정리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상담학을 공부했습니다. 세 번의 대학생활을 했는데 당시의 그 공부는 내 인생의 문제를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중년의 위기를 치유의 메시지를 배우며 보냈습니다. 신촌에서의 2년 반은 무너진 내면을 주님이 만드신 모습으로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품안을 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는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던 제가 건축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일, 소외받은 이웃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Architect 4 Life(생명을 구하는 건축가)'를 설립하여 제3세계의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신앙을 가지게 된 후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어릴 때 세계관이 정립되기 시작할 무렵,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있고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우주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유학 생활은 인본주의의 끝판왕이었죠. 텅텅 비어 있는 교회를 보면서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가 이해되었고, 한국에 귀국해서는 교회를 다니는 직장 동료에게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세상은 이렇게 아픈가? 반문하면서 비아냥거렸습니다.
새가족 7주 과정 중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항상 개입하셨고 지금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마음 속 깊이 전해졌습니다.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말입니다. 나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나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이란 것을 조금씩 깨달으면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하고 예배하면서, 부모님과 교회 형제자매를 통해서, 직장동료 등을 통해서 온통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경험해 갔습니다.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옮겨지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진리의 발견은 제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선물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된 삶을 말해달라면, 저는 기초도 없고 그저 근근이 버티고 서 있던 나라는 집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완전히 허물어지고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것도 완전 프로페셔널한 건축가 예수님이 지으시는 집으로요!
특별히 하나님의 채우심과 돌보심을 경험한 일들 중 기억에 남으시는 일을 들려주세요.
2017년 12월 휴가차 한국에 가족들과 입국해서 2018년 1월 1일 출국하는 과정에 항공사 카운터에 짐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가슴이 조여 오면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공항 내 병원으로 가보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날 출국하지 못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짐을 찾아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응급실에서 진단 결과 심근경색으로 판명되어 다음 날 스텐트 시술을 받았습니다. 회복을 위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만약 공항에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비행기를 탔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고 새로운 기회를 다시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것도 세브란스 병원에서 말입니다. 제가 있던 중환자실 병상은 대학교회가 바로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2009년 임상목회 실습으로 6개월간 세브란스병원교회 전도사로 파트 근무를 한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 있는 내내 시술하는 순간 잠깐의 두려움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평안했습니다.
그때 콩고에서 생명을 구하고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했는데,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사랑보다는 미움으로 살고 있는 제 모습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하는 것임을요. 사람들이 악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소장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신앙적인 깨달음과 열정만으로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사랑의 실천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로 사는 것이 처음 1년 정도는 좌불안석이었는데 2년이 되니 불편함이 무감각해지더군요. 저에게 아직도 ‘생명을 구하는 건축가(Architect 4 Life)에 대한 울림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제3세계의 바다에서 욕망에 빠져 죽지 않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생명의 집을 세우는 건축가가 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_글 황교진 / 가스펠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