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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다
by 황교진 Jun 10. 2018

누군가가 나의 손을 잡아 주었듯이, 최려나 이야기

전신 3도 화상의 아픔을 견디고 화상 경험자들을 돕는 최려나 씨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14학번으로 입학해 지난 2월 졸업한 뒤 사회복지학 대학원 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최려나 씨. 중국 지린성에서 자란 그녀는 11살 때 가스 폭발 사고로 전신 9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그 사고로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고, 40여 차례의 수술을 받으면서 기적처럼 생명의 숨을 잃지 않았다. 자신처럼 불의의 사고로 화상의 고통을 견디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지선 씨를 멘토 삼아 2004년 한국에 와서 검정고시를 치르고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했다. 목소리에 활기가 넘치고 마음이 밝은 려나 씨,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을 늦게나마 축하드려요. 검정고시와 이화여대 졸업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드는 소감은 어떠신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10여 년의 긴 시간을 오로지 치료에만 집중했어요. 친구들이 초중고 졸업할 때까지 저는 초등 4학년에 머물러 있었죠. 틈틈이 독학하며 교회 언니 오빠들 도움으로 공부했어요.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졌고, 문득, ‘나도 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와서 검정고시를 준비했어요. 짧은 시간에 시험을 준비하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꿈에 가까워졌기에 즐겁게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죠. 그렇게 대입 검정고시를 보았고 감사하게도 2014년 이화여대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또래 친구들보다 3년 늦게 학교에 들어오니 뒤쳐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자체로 감사했고 천천히 가더라도 바르게 가고자 마음먹었어요. 매 학기가 새로운 도전이었고, 친구들을 사귀며 다시 시작한 삶은 평범한 20대 여대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휴학 한 번 없이 4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받은 학사 학위 졸업식이 제 생애 첫 졸업식이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후,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졸업사진이에요. 드디어 저도 졸업사진을 찍으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다시 일어났고, 누군가가 나의 손을 잡아 주었고, 두려워도 용기를 내었기에 값진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해요.

 

사회복지학 대학원을 장학금과 생활비를 보장받으며 진학하셨는데, 영문과를 마치고 사회복지학을 선택한 이유와 꿈을 듣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어,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고 영어와 문학을 배우고 싶어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했어요. 4년의 시간은 제 내면을 한층 더 깊게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였고요.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제가 받은 사명에 다가서고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로 했어요. 매년 여름 화상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어린 친구들을 멘토링하면서 같은 아픔과 상처를 공유하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제가 이지선 언니에게 받은 그 힘을 다른 이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죠.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어지면서 사회복지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청년 화상 경험자들의 모임인 위드어스(WithUs)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어요. 비슷한 경험을 한 또래 친구들과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더 나아가 사회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어요. 사회는 편견 없는 시선으로 화상 경험자들을 보고, 한 사람이 당당히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화상 환자가 아닌 화상 경험자가 되기까지 저 역시 힘든 순간들을 지나왔고,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려 해요. 화상, 꽃을 닮은 형상(花狀), 상처가 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복지가 필요한 현장에서 쓰임 받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어졌어요.

 

려나 씨의 인생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화상을 만난 뒤 저는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왜 하필 나여야만 했는지, 나와 가족에게 그토록 힘든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 없었죠. 평화롭던 제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어요. 최선의 방법으로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을 열어 주셨죠. 죽어가는 피부를 기적처럼 살리셨고, 치료비로 인해 치료가 끊기는 일 없도록 항상 그 다음 길을 예비해 놓으셨어요. 열이 4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때도, 생사를 오가는 그 수많은 순간에서도 안전하게 지켜 주셨어요. 가족들의 눈물과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저를 인격적으로 만나 주셨어요. 하나님은 예전의 저도 사랑하셨지만 지금의 저를 훨씬 더 사랑하시는 분이에요. 지옥이라고 여긴 시간들을 통해 천국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리고 앞으로 저를 통해 하실 일들이 무척 기대가 돼요.




주변에 감사한 사람들에 대해 들려주세요.

한국에서 치료 받도록 도움을 주시고, 공부할 수 있도록 줄곧 애써 주신 이윤락 장로님(중국 천진 엘림교회), 저에게 처음으로 성경을 건네주시고는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고 한 분이에요. 그때는 그 사랑을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사랑을 알려 주신 장로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화상을 입은 모습이어도 충분히 멋지고 예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이지선 언니(한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흉터를 가리려고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온통 신경 쓰며 살던 제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언니는 한걸음 앞서 행동으로 보여 주셨죠. 언니를 따라가며 저 역시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고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주변의 감사한 사람들을 모두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아요.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해 주신 수많은 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가르쳐 주신 분들, 환자 그 이상으로 돌보아 주신 의료진들, 만난 적 없지만 멀리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주신 많은 분들, 한 아이를 위해 행동하신 작은 움직임이 모여 11살의 생명을 살려 냈다고 생각해요.

 

화상으로 큰 아픔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죠. 제발 꿈이기를 바라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 과정은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지치게 만들어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 안 되는 온갖 ‘왜’ 때문에 밤낮으로 괴로워했어요. 그때마다 억지로 힘내야겠다는 의지보다는 마음을 토닥이며 울고 싶을 때 맘껏 울고, 지칠 때 잠깐 쉬기도 하고, 또 그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어요. 이런 모습인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어 감사했고, 충분히 더 안 좋아질 수 있는데 그래도 이 정도라서 감사했어요. 응원해 주신 많은 기도와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어요. 그 사랑들로 인해 다시 밑바닥에서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었어요. 삶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고통 중에 계신 분들, 결코 포기하지 마시길 바래요. 사고로 인해 불편한 부분이 생겼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사고 자체가 주는 불행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힘이 훨씬 크니까요.





최려나 씨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그 흔적을 온몸에 지니고 있지만, 참 밝은 사람이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님에도 현재 진행형의 고통을 넉넉히 이겨내는 힘을 가지고 있고, 남을 돌보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고 가지려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자신의 고통에 머물지 않고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려 하는 사람, 최려나 씨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깊은 어둠과 낙심에 소망이 깃든다. 사랑을 받고 인내한 사람만이 가지는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열매를 접하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란 말이 떠오른다. 최려나라는 사랑의 나무가 어떻게 성장해서 꽃 피울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 큰 고통을 견뎌 낸 그녀의 인생에 담긴 진정성이 오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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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소풍 중>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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