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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Jun 18. 2018

고통 중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걷고 싶은 이들의 행진

이화여대 앞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밝은 성격의 려나 씨와

이번 글은 인터뷰는 아니다. 최려나 씨 인터뷰 글을 올린 뒤 이대에서 같이 점심 먹고 티타임을 가지다가 613지방선거 이슈 때문에 6월 6일 서울 시청광장 위드어스 걷기 캠페인이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글을 쓰기로 했다.

려나 씨가 피닉스 소사이어티의 WBC에 참석한 뒤 쓴 수기도 읽어보고 피닉스 소사이어티 홈페이지를 들어가 설립자 글과 활동을 살펴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위드어스(with-us.org) 설립 배경이 된 피닉스 소사이어티의 역할로 미국 화상 경험자들의 현실은 우리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다.





피닉스 소사이어티(Phoenix Society)의 세계 화상 회의에 참석한 최려나 씨

피닉스 소사이어티 홈페이지(https://www.phoenix-society.org)

1963년 항공기 추락사고로 안면에 큰 화상을 입은 알렌 브레슬라우(Alan Breslau)는 화상센터의 어린이들을 만나고 1977년 비영리 단체 피닉스 소사이어티(Phoenix Society)를 설립한다. 자신이 큰 고통을 겪은 심정을 토대로 화상 경험자들이 연대하여 존엄성을 유지하고 회복을 돕고 편견을 덜어내는 사회 환경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피닉스 소사이어티는 화상 경험자들을 위한 의료인, 전문가, 소방관 등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만들어 의학적 치료를 병행한 장기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전 세계 화상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어 화상 치료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15년 10월, 대학 2학년인 최려나 씨는 중간고사 기간이었지만 한림화상재단의 지원과 지도교수의 배려로 피닉스 소사이어티의 세계 화상 회의(World Burn Congress, 이하 WBC)에 참가했다. 11살에 끔찍한 가스 폭발 사고로 생사를 오간 흔적을 고스란히 지닌 려나 씨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3박 4일의 WBC에서 깊은 치유와 희망을 느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화상 환자를 화상 생존자라 부르며 ‘고난을 이겨낸 승리자’로 존대했다. 같은 아픔을 겪은 또래 집단과 대화하며 고통에 공감하고 뜨거운 눈물의 포옹으로 서로를 어루만지고 치유했다. 외모에 화상을 입었어도 재능은 화상을 입지 않으며 사회에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을 한껏 느낀 시간이다. 려나 씨는 특히 인디애나폴리스 시청 앞에서 진행된 ‘Walk of Remembrance'라는 걷기 행사에서 전율을 느꼈다. 화상 경험자와 소방관, 의사 등 연관된 사람들이 함께 행진하며 그녀의 가슴에 뜨거움이 요동쳤다.

죽음과의 싸움을 외롭게 견디던 시간을 통과한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란 것을 인식했다. 피닉스 소사이어티 같은 모임을 한국에도 만들어 화상에서 생존한 사람들이 승리자로 존중받고 세상 밖으로 나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려나 씨는 피닉스 소사이어티에 참가한 서정은 씨와 화상캠프 멘토로 함께한 김혜빈 씨를 주축으로 청년 화상 경험자들의 공동체 위드어스(With Us)를 만들었다. 위드어스는 지난 6월 6일 청계광장에서 작년에 이은 두 번째 걷기 캠페인 ‘2018 함께 걸어요’를 개최했다.

 

위드어스 캠페인 송 ‘한 걸음 우리(With Us)’를 합창하는 참가자들



청년 화상 경험자들의 모임, 위드어스(WITHUS)의 걷기 캠페인

613 지방 선거를 앞두고 더운 기운이 가득한 가운데 위드어스의 걷기 캠페인이 시작됐다. 외모지상주의가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화상 경험자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품어 달라는 취지이다. 이 행진은 아픔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이 이겨나가려는 용기에 박수 쳐주는 가운데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배움의 현장이다. 화상으로 거울 앞에 낯선 자신이 되고,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에 당당해지고 싶어도 걸음을 내딛지 못한 청년 화상 경험자들의 소리와 정성이 담겼기 때문이다.

위드어스의 이번 행사에 피닉스 소사이어티의 에이미 액톤(Amy Acton) 사무총장, 미국 화상경험자 사회복귀 전문가 바바라 콰일(Barbara Quayle)이 참석했다. 한림화상재단 윤현숙 이사장의 개회사, 한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이지선 교수의 축사로 시작하여, 참가자들을 위한 음악치료(이화여자대학교 예술교육치료연구소), 메이크업 및 페이스페인팅 행사, 각종 코스별 부스 등 체험활동과 응원 메시지 남기기 등의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음악 콘서트로는 류범열 New Fellowship 밴드 및 가수 홍석민이 무대를 꾸몄다. 화상을 경험한 사람들과 비경험자들이 위드어스 캠페인 송 ‘한 걸음 우리(With Us)’를 합창할 때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 청계광장을 수놓았다.


나경철 아나운서와 박여명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소감을 나누는 위드어스 가족들(사진: ⓒ김상준/위드어스)



<지선아 사랑해>로 많은 독자들을 울린 이지선 교수는 “화상경험자들과 비화상경험자들이 함께 걷는 시간을 통해서 화상경험자들에겐 사회로의 첫걸음에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비화상경험자들은 화상경험자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거리감을 좁히는 계기 마련을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위드어스의 홍보대사인 배우 김정화, 오산하 씨도 함께했다. 2018 위드어스 걷기 캠페인은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과 꿈’의 선도적 복지모델화 사업부문에 선정돼 3년간 실시 중인 화상경험자 맞춤형 복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일상 속에서 흔히 겪는 사고가 화상이다. 환자 스스로 아픔을 이겨내라고 방치하기보다 함께 교류하고 의지하며 평범한 생활인으로 보듬어 주는 시선이 필요하다. 화상경험자들처럼 배제되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포용해 달라는 몸짓을 보내올 때 우리는 따뜻한 이해로 손잡아 줄 가슴을 가졌는가? 내가 겪은 아픔처럼 공감해 주는 가슴, 한국 사회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공동체로서의 중요한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화사한 얼굴로 행진하는 위드어스 참가자들(사진: ⓒ김상준/위드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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