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다 _2004년 5월

내가 쓴 글, 책이 되기까지 2

by 황교진



김영사 홈페이지의 원고 접수창을 통해 14개 항목의 질문에 답을 해야 했습니다. 제 원고의 의도를 꼼꼼히 정리하면서 답하기에 까다롭다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쓰는 글에 대한 평소의 생각들이 질문별로 잘 구분되어 있어서 주저하지 않고 써 내려갔는데, 마지막 항목의 원고 파일 보내기에서는 홈페이지 주소를 남겨놓았습니다. 저처럼 책으로 엮어질 수 있는 원고로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고 출판사 쪽에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알아서 보시라는 성의 없는 출간 의뢰를 한 저자가 또 있을까 싶네요.

5월 3일 밤에 접수를 해놓고, 일주일 뒤 도서관에 가서 의대생 모임에 전할 말씀을 준비하던 중, 동생이 둘째 아기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입원해 있는 산부인과에 달려갔습니다. 둘째 조카는 엄마를 크게 고생시키지 않고 한 시간 반 만에 3.7kg의 건강한 공주님으로 태어나서 저를 매우 기쁘게 했지만, 친정 엄마 없이 산후조리할 동생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차마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속으로 울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애처로운 표정이 동생에게 전해질 것 같아서 얼른 뛰어나오다시피 하여 지하철을 탔습니다.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꼭 참았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던 바로 그때, 지하철 내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황교진 씨죠? 김영사입니다."

아, 이게 무슨 일일까요.
"보내 주신 출판 의뢰 잘 보았습니다. 홈페이지 글들 읽었어요. 금주 목요일에 만나서 출판에 대한 얘길 나누면 어떨가요?"
순간 마음의 소망을 들어주시고 깊은 고통의 순간에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중환자인 친정 엄마를 생각하며 외로운 출산을 한 동생을 보며 느낀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과 희락으로 순간 이동하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동생과 목사님, 그리고 소중한 벗들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핸드폰을 들고 전동차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터질 것 같은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는데, 다들 어찌나 크게 기뻐하며 축하해 주시는지, 제 기쁨이 여러 배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방금 전의 척척한 기분은 사라지고 환희로 전환되는 변덕의 엄청난 보폭을 경험했습니다.

화곡동 병원에서 어머니를 돌봐드린 뒤 아산 병원에 가서 의대생들에게 성경 말씀과 함께 견디고 있는 제 삶을 전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날아갈 것 같은 몸이었습니다. 출판에 대한 소식도 전하니 젊은 의대생들 얼굴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더군요.


그리고 다음날 김영사와의 첫 미팅을 갖기 위해 가회동으로 갔습니다. 안국역에 내려 편집부실을 찾아가는 동안 아주 조금은 혹시나 미팅 후 결과가 반려되는 건 아닐지 조마조마하기도 했습니다. 의심과 염려는 모두 내려놓고 잘 진행될 일만을 마음에 담아 편안하게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잘 설계된 아담한 가옥과 같은 김영사 편집부실 1층에서 제게 전화 주신 편집부 실장님이 내려오시는 동안, 김영사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벽면을 보았습니다. 성공 자기계발, 학습법, 소설 등 저와는 다른 유명한 국내외 저자들의 책들 옆에 과연 신앙 고백이 담긴 제 책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진열될 수 있을까. 김영사의 저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처음 만나 뵌 임 실장님이 아주 차분한 모습의 책 향기가 폴폴 풍기는 인상으로 2층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커피를 내주시며 인사를 나누고 제 홈페이지 글들을 출력한 프린트물을 보여 주셨습니다. 책에 들어갈 만한 제 글들이라고 한 번 보라는 말씀부터 하시는 겁니다.

순간, 아! 내 글이 책으로 정말 되는 거구나, 하는 실감이 들면서 예전에 썼던 글들을 쭉 훑어본 뒤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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