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와 귀소 본능의 조합, 첼로

by 한량

일본어에 이어 지금 하고 있지 않지만, 조만간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취미생활은 첼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첼로가 방 귀퉁이에 부담스럽게 세워져 있다. 첼로가 만약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소리치지 않을까?

"대체 언제까지 세워만 둘 거냐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쯤부터 첼로 레슨을 2년 정도 받았다. 첼로를 시작하게 된 건 우리 반 친구의 엄마이자, 다니던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무슨 음악적인 재능이 있어서는 전혀 아니었고(그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마침 그때 원장 선생님 딸이 첼로 레슨을 시작해서 첼로 선생님이 피아노 학원으로 레슨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피아노 학원에서 비교적 저렴한 레슨비로 배울 수 있다는 말에 나에게 첼로를 권하셨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 엄마는 피아노는 질려 했지만 특이한 악기를 하라고 하면 내가 할 거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오케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허세가 좀 있는 나는 비교적 흔한 피아노보다 희소성 있는 첼로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첼로를 메고 다니면 뭔가 부잣집 딸 같은 느낌도 들 것 같았고 말이다.

처음에는 첼로를 메고 다니면 사람들이 '오~' 하고 쳐다보는 것 같고, 누가 "너 첼로 해?" 하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었다. 그 맛에 2년 정도 첼로를 배웠는데, 허세만 가지고 버티기에 첼로는 만만한 악기가 아니었다.

피아노는 그래도 '도'를 누르면 '도' 소리가 나지만, 첼로는 내가 손가락으로 현의 정확한 위치를 짚지 않으면 엉뚱한 소리가 나기 일쑤였다.

나는 음감이 별로인지, 내 귀엔 분명히 '도' 같은데 선생님은 자꾸 '도 샵'이라고 하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연습도 제대로 안 해서 선생님께 핀잔을 얼마나 들었는지, 그때 자주 듣던 말 '오늘도 연습을 병아리 눈물만큼 했네.'가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첼로 레슨을 그만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첼로는 내 방구석에 마치 장식품처럼 세워져 있다. 내가 첼로를 다시 꺼낸 건 고등학교 때 음악 실기 시험 보느라 잠깐, 그리고 몇 년 전에 악기 수리하느라 꺼냈던 게 전부다.

7~8년 전쯤인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소품처럼 생각하던 첼로를 케이스에서 꺼내 봤는데, 현도 끊어지고 활털도 늘어나고 악기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30년 가까이 방치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다행히 옛날에 엄마랑 악기 살 때 갔던 '이정우 현악기'라는 이름이 생각나서 인터넷 검색으로 그 악기점을 찾아봤다. 없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 악기점이 아직도 있었다. 구반포에서 예술의 전당 앞으로 이사를 하긴 했지만, 30년도 더 된 악기점도, 주인아저씨도 건재하셨다.

그때 현이랑 활도 갈고 악기를 싹 재정비했는데, 수리한 김에 다시 레슨이라도 받았으면 좋았을 걸 기껏 돈과 시간을 들여 고쳐서는 그 후로 지금까지 또다시 고이 모셔만 뒀다.


내가 왜 첼로를 이사할 때마다 꼭꼭 챙겨서 방구석에 장식해 놓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긴 하다. 예전에야 언젠가 다시 할 생각이 있어서 챙겨 뒀지만, 그 생각을 한 지도 20년이 넘은 것 같다. 한때는 애들한테 배우게 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우리 집 애들도 나를 닮아 그다지 음감이 뛰어난 것 같진 않다.

솔직히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 집에 첼로가 있다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놀러 와서 "누가 첼로 해?" 하면 그때서야 '아, 우리 집에 첼로가 있었지.' 하는 수준이다.


생각해 보면 첼로와 내가 함께한 세월이 30년이 훌쩍 넘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이 정도 세월을 함께한 게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나에게 첼로는 어쩌다 함께하게 되었지만, 같이 있다 보니 익숙해지고, 그러다 정들어서 끝까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대충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원래 사람이고 물건이고 당장 죽고 못 사는 것보다 가늘고 길게 가는 인연이 더 질긴 법이다.


최근에 첼로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피아노를 치면서부터다. 피아노를 오랜만에 다시 치다 보니 첼로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써 놓고 보니 취미가 또 다른 취미를 불러들인 형국이다.

물론 첼로는 피아노보다는 나에게 훨씬 더 까다롭고 어려운 존재이긴 하다.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그때도 안 들렸던 음이 지금이라고 들릴까?', '시력에 이어 청력도 떨어지고 있는 요즘 더 안 들리는 건 아닐까?', '높은 음자리표 악보도 잘 못 보는데 낮은 음자리표 악보는 어떻게 보지?' 하는 생각이 자꾸 나를 멈칫거리게 만든다.

그래서 살짝 미뤄두고 있긴 하지만, 피아노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그다음에 첼로를 재시작할 생각이다. 단지 그 '어느 정도 수준'이 얼마큼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언젠가는 꼭 연주해 보고 싶다(미샤 마이스키 독주 앨범이 내가 살면서 사 본, 몇 개 안 되는 클래식 앨범 중 하나다).

초등학교 때 미샤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사랑의 인사’를 듣고 ‘나도 언젠가는 저 곡을 꼭 연주해 봐야지.’ 했었는데, 그러고 보면 사람에게도 귀소 본능이 있나 보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취미생활 중에 많은 것들이 어린 시절 꿈꿨던 것들인 걸 보면…….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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