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D Aslan Dec 14. 2020

전공의 일기.

5-31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의 짐으로 남았던 할아버지가 드디어 퇴원을 맞이하게 되었다. 큰 수술을 한두 번 받아보냐며 큰소리치시던 자신만만한 할아버지의 모습과 수술 후 아프다며 투정을 부리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되며 미소를 짓게 했다. 이런 여유가 생긴 것은 할아버지의 수술 후 경과가 좋아서일 것이다. 그토록 마음 졸이게 했던 수술 후 장마비 증상도 씻은 듯 사라졌고, 특별한 이상 증상 없이 할아버지는 오늘을 맞이했다. 


 약속했던 오전 회진시간이 다가오고, 차트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챙겼다. 아직 할아버지의 몸에는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작은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다. 조직검사 결과는 예상한 것처럼 방광 내 육종으로 판명되었다. 방광의 육종은 그 자체가 희귀할 뿐 아니라, 상당한 속도로 성장하고 전이가 되기 때문에 그다지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체가 불분명한 간의 작은 결절을 제외하면 현재 수술 후 상태는 매우 좋았기에 할아버지의 일상생활은 회복될 것이 분명했다.  


"밤에 잠은 잘 주무셨어요? 오늘이 마지막 아침인사가 되겠네요." 


"이선생 왔어? 이제 여기는 그만 올래. 아주 징글징글 혀."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침 일찍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이 할아버지 퇴원 날이기도 하고, 가족분들께 현재 할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알려드려야 해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괜찮습니다. 항상 저희 아버지를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별말씀을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할아버지가 엄살만 조금 덜 부리셨어도 조금 덜 힘들었을 것 같긴 하네요" 


"에이 이선생 내가 무슨 엄살을 부렸다고 그래. 진짜 아팠어. 다른 수술하고는 차원이 다르더라고." 


"알아요. 오늘 퇴원하신다니까 저도 기분이 좋아서 농담 한번 해봤습니다." 


"그려, 고생 많았어 이선생" 


"저희 아버지 조직검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일단은 수술적 절제를 시행한 부위에서는 암세포가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말은 수술이 아주 깔끔히 잘 끝났다는 것을 의미해요." 


"잘됐네요! 그러면 저희 아버지 항암치료는 필요가 없는 건가요?" 


"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 물론 간에서 확인되는 작은 결절이 마음을 조금 무겁게 하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수술이 깔끔히 끝났으니 부담을 덜어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간에 있는 결절 말고 다른 곳에서는 전이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현재 검사한 결과로는 그렇습니다. 물론 저희가 시행한 CT의 경우에는 4mm 간격으로 영상을 얻어내기 때문에 그보다 작은 결절들은 발견이 되지 않는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건 의심을 위한 의심일 경우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요. 현재 할아버지의 상태는 괜찮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간에 있는 결절은 어떻게 되나요? 전처럼 매달 와서 검사를 받으셔야 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고요. 퇴원하시고 경과가 괜찮으신지 2주 정도 뒤에 외래에 내원하시고, 그 이후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영상검사가 진행될 거예요. 예약해 드린 시간에 꼭 오셔서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수술하고 괜찮다고 안 오시고 하다 보면, 중요한 순간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생겨요." 


"제가 꼭 챙기겠습니다. 그럼 2주 뒤에 오시면 되는 거죠?"  


"네. 외래에서 간단한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진행하게 될 겁니다." 


"오전에 검사하시고, 오후에 교수님 외래에서 결과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려 알겠어 이선생. 항상 고마워. 이번에도 전화번호 안줄텨?" 


"제 전화번호가 워낙 비싸서요. 안드릴랍니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그러면 여기 내 전화번호 다시 남길 테니까 나중에라도 연락해. 이선생 밥 한 끼 사줘야겠어 내가" 


"건강해지셔서 퇴원해주시는데 제가 대접해야죠.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이제는 절대! 다시는 입원하지 마세요! " 


"나도 안 하고 싶지. 이제 안 할려. 지겨워 죽겄어 아주" 


" 잠깐만 계세요. 조금 있으면, 교수님 회진 나오실 시간이에요" 


"그려, 이선생 가봐" 



 할아버지와의 작별이 아쉬웠는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병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혈뇨로 응급실에서 만난 할아버지와의 인연이 이렇게나 소중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었다. 수더분한 인상의 중절모 할아버지가 밝은 얼굴로 퇴원을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 없다.


아침 햇살이 잘게 부서지는 한강을 배경으로, 할아버지는 밝은 얼굴을 남기곤 퇴원을 하셨다. 



출처: https://mdaslan.tistory.com/101 [의사일기]

작가의 이전글 전공의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