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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vory Oct 05. 2022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고

수치심에 대하여

대학 다닐 때 어느 교수님 별명이 '책읽어주는 남자'였다. 강의 시간에 교재만 읽는다고 그런 별명이 붙었었나 보다. 그때 참 웃겼는데. 책 읽어주는 남자, 나는 이 책이 아주 슬픈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다. 몹쓸 병에 걸린 연약하고 창백한 여주인공, 매일 조금씩 시들어가는 그녀를 위해 머리 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남자. 그리고 책이 완결까지 듣지 못하고 여자가 죽어버리고, 남자는 홀로 쓸쓸하게 책을 덮어버리는. 그래서 아무도 이야기의 결말을 알지 못하는 그런 내용이랄까? 제목만 보고는 그런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10년쯤 흐른 어느날이었다. 슬픈 멜로 소설이 읽고 싶었다. 무슨 책을 볼까, 하다가 눈에 들어온 '책 읽어주는 남자'. 대학생 때 교수님 별명이라며 낄낄거렸던 그 책이었다. 좋아, 슬픈 책을 보고 아주 촉촉해질테다, 하는 마음으로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예상과 달리 이 책은 마냥 슬픈 멜로 소설이 아니었다. 침대 밖의 세상을 동경하는 연약한 여주인공이 아닌 생활력 있고 강한 연상의 여자가 주인공이었고, 다소 병약하고 어린 남자가 바로 책을 읽어주는 남자였다. 책을 펼치고 두 번 놀랐다. 먼저 생각보다 수위가 높아서. 이렇게 화끈한(!) 내용일 줄 몰랐는데. 그리고 두번째 놀란 것은, 예상치 못하게 나치 이야기로 이어져서.




사랑과 역사에 대한 책으로 호평을 받은 책이지만, 다소 뜬금 없게도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여기였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문제로 여자는 재판에 회부되고, 남자는 우연한 기회로 그 재판을 방청하게 된다. 남자에게 늘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여자는 알고보니 문맹이었다. 글을 몰랐기에 남자가 읽어주는 책을 그리도 좋아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문맹임을 남자에게 티내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다. 수치심이 건드려지는 부분이었으리라. 남자는 재판을 방청하던 중 여자의 태도를 보고, 여자가 문맹이었음을 뒤늦게 눈치챈다. 재판 중 여자는 문제의 '보고서'를 쓴 사람으로 누명을 쓰게 된다. 자신은 문맹이라 보고서를 쓸 수 없다고 말하면 바로 누명임을 밝힐 수 있다. 그런데 여자는 이상한 결정을 한다. 자신이 보고서를 썼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자신이 문맹인 것이 부끄러워 범죄자를 자처한 여자.

상식적으로 본다면 문맹인과 범죄자, 둘중 누가 더 지탄받을 만한가? ...... 당연히 문맹인이 훨씬 낫다.

전과자가 되어 감옥에서 긴 시간을 보내느니, 글을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당연히 이성적으로는 훨씬 맞는 거 아닐까? (심지어 혹자는 자기가 문맹이라고 거짓증언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왜 여자는 이런 고집을 부릴까? 소설을 극적으로 만드려는 과장일까?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는 고민한다. 재판관에게 그녀가 문맹임을 밝히고 여자의 누명을 풀어주어야 할지, 아니면 중죄의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가게 되더라도 여자가 자존심을 지켜주는 게 나을지. 여자가 솔직히 말하지 않으니 남자라도 대신 재판관에게 오해를 밝혀주고 여자의 처벌을 피하게 하는 것이 나을까?





학습된 수치심


   범죄자로서의 정체성이 문맹인보다 더 낫다고는 결코 볼 수 없지만, 그런 선택을 한 여자가 이해됐다. 나 또한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던게 번뜩 생각났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어릴 때 부모님은 '한국인이면서 김치를 먹지 않는 넌 이상하다'는 식의 말씀을 자주 했다. 물론 편식을 고쳐주려는 좋은 의도였겠지만, 난 무의식적으로 김치를 먹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학습했을 것이다. 초등학생인 어느날, 옷에 붉은 색의 무엇이 묻었었다.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엷은 물감이라든가 그런 거였다. 옷에 김치국물 묻은거 아니냐고 놀리는 친구들 앞에서 난 굳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김치를 못먹는게 잘못된거고 수치스러운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김치국물 묻힌 옷을 입은 걸로 보여지는 게 그리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감 묻은 옷을 입은 것보다 냄새나는 음식물인 김치국물 묻은 옷이 더 더러운데도 말이다. 마치 범죄자가 되더라도 보고서를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보여지는게 더 나았던 여자처럼. 




   내가 소설 속 남자라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봤다. 나라면... 나서서 여자의 오해를 풀어주진 않을 것이다. 본인이 감옥을 가더라도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부분인데, 남자가 대신 말해줘서 누명을 벗게 되더라도 여자는 고맙지 않을 게 분명하다. 오히려 섣불리 나선 남자로 인해 수치스러워하고 분노할지 모른다. '사실 당신이 글을 읽지 못하는 것 알고 있다',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며 여자가 수치심에서 안전히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누명을 밝힐지 말지 본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하나의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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