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에 대한 오해
착하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착한 사람일까?
누군가는 나를 착하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나를 '별로'라고 할 것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는 제멋대로인 내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어주었고, 가끔은 좋은 행동으로 이어져 내 자존감을 북돋아 주는 역할도 했다.
착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고 상냥하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내 주변에는 '바르고 상냥'하지 않지만 내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여전히 착하다의 의미를 모르겠다.
착하다는 건 무엇일까?
당신은 착한 사람인가?
정서적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착한 사람일까? 다른 사람이 힘든 일을 겪으면 마음이 아프고, 내 일처럼 생각하고 이입이 쉽게 되어 눈물도 잘 난다.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착한 사람일까?
공감 능력은 누구나 타고나는 것이고,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공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공감능력에 대해 꽤 재미 있는 점을 발견했는데, 본인 입으로 '나는 공감능력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저는 공감을 잘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좋은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자신이 공감을 잘 한다고 자신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더 노력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반면 전자의 경우, 자신이 공감을 잘한다는 생각에 상대의 마음을 지레 짐작하거나, '공감 능력이 좋은 나'에 몰입한 나머지 정작 상대의 입장은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공감은 노력해서 갈고 닦아야 하는 능력이다. 설령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도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공감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공감을 잘 하려면 매번 집중이 필요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공감능력이 좋다고 하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높은 공감 능력이 반드시 선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이용해 상대방을 이용하고 이득을 취하려 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지금 어떤 심리상태에 있는지, 어떤 부분이 취약할지, 지금 어떤 위로와 대응이 필요한지를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은 이를 이용해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어낼 수 있다.
친구에게 착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친구는 '착하다'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녀에게 착한 사람이란 '자기만의 줏대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고보면 착하다는 '바보같다'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착한 사람이 받는 슬픈 오해 같기도 하다. 나는 착한 사람이 바보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려심은 착한 마음이다. 개인주의도 자기 주장도 착하다.
며칠의 고민 끝에 내가 생각하는 '착하다'는 이렇다.
자신의 행동을 돌이키고 반성하는 사람은 착하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고민하는 사람은 착하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남에게 더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 그러니까 겸손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인간은 복잡하고 다면적이기 때문에, 늘 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이 생각하는 '착하다'는 무엇인가?
한동안 주변에 물어보고 다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