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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vory Oct 25. 2022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말을 했어?

말의 무게

  친구가 곧 결혼을 한다며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모았다. 이런 날에는 나와는 조금 소원하여 평소 자주 만나지 못했던 이들도 만나게 된다. 심지어 청첩장 모임에서만 보게 되는 친구도 있다. A도 그런 친구 중 하나였다.



  주인공인 친구의 결혼 이야기가 주였지만, 워낙 여럿이 모이다보니 각자 신변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때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누구의 결혼 소식에서만 겨우 얼굴을 보던 A가 내게 말했다.



"나 너한테 대학생때 연애상담 받은 적 있어. 그 이후로 '그걸' 안하게 됐지."



  뭔지 모르지만 겁이 덜컥 났다. 내가 언제 이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있던가?


  내가 더 겁이 났던 이유는, 불편해 할 것 같아서 말은 안했지만 사실 은근히 마음이 쓰이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몇년 전부터 우울하고 무기력해 보였고, 불안증세도 있어 보였다. 정신과든 상담치료든 받아봤으면 싶었다. 그런 A가 나 때문에 '그걸' 안하게 됐다니, 혹시 내가 이 친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말을 했을까봐 순간 겁이 났다.



"내가 연애상담을 해준 적이 있었어? 언제?"


"그때 왜, 나 군대가기 전이던가? 너가 나한테 충고를 해준 적이 있었어."



  더 무서워졌다. '상담'에서 '충고'로 바뀌었다.


  직업을 떠나 학창시절부터 누구의 얘기 들어주는 걸 좋아하다보니 친구들 사이에서 상담사 롤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오래된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도 그러려니 한다만, 거의 만나지도 못했던 A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풋내기 대학생이 뭘 안다고 연애상담을 해줬을까? 뭔지 모르겠지만 나 때문에 10년 넘게 '그걸' 안하게 됐다니, '그게' 뭔지 조차도 모르겠다.



"뭐? 내가 충고를 했다고? 와 내가 뭘 안다고 상담을 해줬겠어. 내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신경쓰지마! 뭣도 모르는 애가 했던 말이야. 난 기억도 안나는데." (괜히 겁먹으니 말이 많아졌다)


"아냐, 사실 도움이 됐어. 대학생 때 내가....."



  오늘의 일은 느슨해져있는 나의 뺨이라도 때리는듯 했다. 말이 이렇게 오래 가는구나. 말 뱉은 사람은 기억 못해도, 들은 사람은 아주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우리 모두 입 속에 칼도, 약도 담고 다니는 거다.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거워질 수 있는지, 그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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