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난민들의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여정에 동행한 후 반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계속해서 그들이 걷던 현장으로 되돌아갔다.
예년이면 9월이면 이미 닫혔을 바닷길이 여전히 열려 있었다. 파도가 거칠어지고 수온이 떨어져 브로커들조차도 영업을 중단하던 시기였건만, 2015년은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와도 행렬이 멈추지 않았다. 난민들도 알고 있었던 듯했다. 지금은 열린 문이 곧 닫힐 것이라는 걸.
국경은 계속해서 열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독일 등 최종목적지 국경이 일시 폐쇄되면 도미노처럼 앞선 국가들의 국경도 연쇄적으로 닫혔다. 그러면 난민들은 국경 근처에서 재개를 기다리다 결국 다른 경로를 찾아 방향을 바꿔 다시 전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2,000~3,000km를 하루 종일 운전해발칸과 그리스까지 가서, 난민들이 밤을 지새우는 국경 근처 들판이나 임시캠프에서 며칠 밤을 보냈다. 때로는 차 안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고, 가끔은 난민들을 돕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한 텐트나 숙소에서 지내며 나날이 아침 공기가 차가워지던 연말까지, 그리고 그다음 해 초까지 현장을 반복해서 찾았다.
국경지대 들판에서 추위에 떠는 아이들을 위해 타지도 않을 플라스틱 병이나 버려진 옷조각으로라도 불을 피우려 안간힘을 쓰는 아버지. 매일 새벽 동이 트기 전 텐트에서 기어 나와 밤새 국경에서 줄 난민들을 위해 따뜻한 차를 끓이던 자원봉사자들. 비 내리는 날 투명 비닐 아래로 희미하게 보이던 표정들. 이 모든 것이 당시 반복적으로 목격한 광경이었다.
유럽은 여전히 난민 문제로 크게 갈라져 있었다. 피난처를 제공해야 한다는 진영과 자국민도 챙기기 힘든데 이방인들까지 받을 여유가 어디 있냐는 진영 간의 대립과 갈등은 점차 심화되었고, 유럽 연합 각국 지도자들의 의견도 갈렸다.
이런 상황에서 ISIS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메르켈 같은 친난민 정책 리더들의 입지도 좁아졌다. 무한정 난민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로 결국 2016년 3월 유럽 연합은 터키와 합의에 이르렀다. 터키의 EU 가입과 자국민 무비자 여행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그리스 섬에 도착하는 모든 난민을 터키로 돌려보낸다는 거래였다.
난민들은 이런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질 것을 직감해서 열까? 그래서 겨울 내내 차갑고 거친 바다조차 건너야만 했던 것일까?
적정선에 대한 질문에는 정답이 없었고,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려도 누군가는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난민들이 그 여정에서 겪는 것을 직접 본다면 그토록 비정하게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들 또한 버텼을 테다. 그 누구도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삶의 터전을 외부적 강압으로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모르지 않았다. 자신들을 원치 않는 이들이 많은 곳으로 가서 받아달라고 사정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멸시와 서러움을. 하지만 그 누구나 한계라는 것이 있고 부러지는 지점이 있었다. 내가 여정에서 만난 난민들은 그 한계를 시험하고 또 시험하며 내성을 키우다가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점까지 온 이들이었다.
그 한계를 목격하고 기록하기 위해 2016년 봄, 나는 이라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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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이 닫힌 2016년 3월, 이라크 정부는 ISIS로부터 2년여 전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군사작전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 난민 하면 시리아 난민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였지만, 이라크는 시리아보다 더 오랜 기간 시아파와 수니파간 갈등으로 꾸준히 난민을 발생시키는 국가였고, ISIS 출현과 함께 더 많은 이라크인이 난민 행렬에 합류했다. 또한 외국 저널리스트에게 비자조차 주지 않던 시리아에 비해서는 접근 가능성이 많았다.
ISIS의 실질적 수도 역할을 했던 모술과 가장 가까운 도시는 에르빌이었다. 모술 탈환 캠페인 선언 후 세계 각국 언론사와 NGO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이라크 영토이지만 실제로는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던 쿠르디스탄(Kurdistan, ‘쿠르드족의 땅’이라는 뜻)의 수도였다.
쿠르디스탄은 독립국가 위상을 가지지 못하면서도 가장 국가 형태에 가까운 자신만의 뚜렷한 문화·인종·언어 정체성을 가 독특한 곳이다. 터키와 중동 3개국(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걸친 지역을 아우를 정도로 크고 인구도 3,500만에 달한다. 오토만제국이 망한 제1차 세계대전 종료 시점에서 당시 전승국들의 입맛에 따라 그려진 신세계 지도에서 그들만의 독립국가를 형성하는데 실패한 이래, 현재는 터키를 제외하고 호스트 국가 내에서 자치구 또는 그에 준하는 자격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중 이라크 내 쿠르디스탄 지역은 가장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외교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이라크 중앙정부와 분리되어 자체 깃발과 통화를 가진 독자적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08년에 걸쳐 사담 후세인 축출 후 이라크 재건을 위해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나라 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곳도 에르빌이었다.
에르빌로 가기 전 사전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벨기에에 거주하고 있던 바람이라는 친구를 통해 쿠르디스탄의 근현대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위해 사담 후세인에 맞서 싸우다 유럽에 정치난민으로 이주했고, 그 영향을 받아 유럽인이지만 쿠르디스탄 관련 모든 것에 열정적인 친구였다. 그는 쿠르디스탄에서의 현지 네트워크 구축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ISIS는 모술을 순식간에 점령한 후, 그 기세를 몰아 내친김에 유전을 더 차지하려 동쪽으로 계속 진격해 쿠르디스탄 일부 영토도 차지했지만, 그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 페슈메르가라 불리는 쿠르디스탄 정규군의 완강한 저항 때문이었다. “죽음에 맞서는 자들”이라는 뜻의 페슈메르가에 막혀 2년여간 더 이상의 군사 충돌 없이 임시 경계선을 형성했다.
모술 탈환 작전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초기에는 페슈메르가의 지휘로 쿠르디스탄 영토에 해당하는 부분을 회복한 후, 이후 이라크 정규군이 나머지 영토 전투에 투입되는 계획이었다. 페슈메르가는 영토 회복 전투에 외국 민병대의 참여도 허용했는데, 그중에 눈길을 끄는 무장단체가 둘 있었다. 터키에서 건너온 PKK(쿠르디스탄 노동자당)와 이란에서 넘어온 PAK(쿠르디스탄 자유당)였다. 둘 다 터키와 이란에서는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지정된 조직이지만, 쿠르디스탄의 독립이라는 무장투쟁 명분 때문에 쿠르드족으로부터는 대체로 영웅 취급을 받는, 관점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되는 그룹이었다. 둘 다 전투에서는 용맹하기로 소문났기에 페슈메르가는 이들에게 모술 탈환 작전에 역할을 주며 이라크 하위자 지역 방어를 맡겼고, 나는 바람의 지인 소개로 두 그룹 모두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이라크 정부가 모술 계획을 발표한 지 두어 달이 지났지만 방문한 경계선 초소에서는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볼 수 없었다. 쿠르디스탄 쪽 초소와 ISIS 쪽 라인 사이에는 대략 2킬로미터 정도의 무인지대가 있었고, 그 들판은 너무나 적막하게 느껴졌다. 2년 넘게 그 초소를 지키며 아무런 액션 없이 지냈던 군인들은 그 허허벌판을 지키던 무기력했던 시간 끝에 마침내 전투가 시작된다고 흥분했지만, 정작 방문한 군부대에서는 전투가 곧 시작될지 모른다는 급박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병사들은 그저 그 무인지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PKK와 PAK 둘 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여군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이었다.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이들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이가 꽤 어려 보여 전투 현장보다는 학교에 있는 게 더 어울릴 듯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는 꽤 군인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PAK 멤버 중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헬로라는 외팔이 군인이었다. 현지 100여 명 부대원 중 지휘관급이었고 영어를 꽤 능숙하게 구사해 주로 그를 통해 이 민병대의 행적을 들을 수 있었다. 이란 정부로부터 분리주의자이자 테러리스트로 지정된 후 PAK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몇 년간 끈질기게 이어오다 결국 몇 년 전 이웃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역으로 베이스를 옮겨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IED(급조폭발물)을 해체하다 폭탄이 터져 왼팔을 잃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고 했고, 여전히 꽤 묵직한 총을 한 팔로 다루는 용감한 군인이었다.
한 달여를 모술 주변부에서 맴돌았지만 이라크와 쿠르디스탄 정부는 여전히 전투 개시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었고, 그 어떤 움직임도 없이 조금은 허탈하게 유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한 달 동안 구축한 인맥이 추후 내게 큰 도움이 될지는 이때는 알지 못했다.
여름이 지나고 초가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라크발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점차 개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음을 뉴스와 현지 친구들로부터 듣고 다시 이라크로 돌아갈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러다 유엔에서 일하던 친구로부터 이라크 정부가 주요 NGO와 언론사에 10월 중 탈환 작전을 시작할 거라는 공지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에르빌로 향했다.
분위기는 몇 개월 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국제기관들은 발생할 민간인 피해와 그 규모에 대비해 비상근무에 돌입했고, 세계 유수 언론사들도 분쟁지역 저널리스트들을 파견하고 픽서를 찾으며 군 브리핑을 통한 정보 수집에 분주히 움직였다. 나 같은 프리랜서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함께 움직일 팀을 꾸리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라크 정부는 계속해서 최소한의 정보만 흘리며 마치 ISIS와 심리전을 벌이는 듯했다. 적의 공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ISIS도 모르긴 해도 반복해서 경고등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최고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느라 꽤 힘들었을 것이다.
10월 말 어느 날 밤 9시가 지나자 모든 이들의 전화기에서 끊임없이 벨소리가 울려댔다. 다음 날 새벽을 기점으로 공격을 개시한다는 발표가 났고, 이미 차를 렌트해 대기하고 있던 나는 함께 움직이기로 한 독일인 플로리안과 다른 두 명의 저널리스트를 픽업해 공시된 개전 포인트로 향했다.
그 시작점은 모술에서 북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바쉬카(Ba’ashiqah)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산과 강 등으로 자연적 방어 요새가 구축된 모술 외곽의 다른 지역에 비해 대체로 평원으로 모술까지 거리상 가장 가까워서 어느 정도 예상되던 시작점이었다.
전투의 개시를 앞두고 군인들뿐 아니라 에르빌의 병원 관계자와 언론인도 밤새 속속 도착했다. 우리가 최전선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경이었다.
그 광경은 개전을 앞둔 상황이라기보다는 마치 유명한 축구 더비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에 모인 상기된 관중들의 열기 같았다. 아드레날린이 넘쳐나던 병사들은 피곤한 기색 없이 사기 진작을 위해 곳곳에서 구호를 열창하기도 했고,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순간이 비로소 도달했음에 흥분하며 그곳에 있음을 영광스러워했다. 당시 분위기는 그들이 곧 전투에 투입될 것이고 그중에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이들도 꽤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누구의 머릿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새벽 5시경 몇몇 군인들이 새벽 기도를 하는 것을 촬영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를 불렀다.
“해리!”
“어!? 너희도 왔네?”
PAK의 외팔이 전사 헬로였다.
“당연하지. 어떻게 이 순간을 놓칠 수 있겠어. 내 팔을 날려버린 놈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순간인데. 며칠 전에 부대원들과 서둘러 올라왔어.”
“그렇잖아도 이번에 와서 너희 어떻게 지내는지 조금 궁금했더랬어. 부대원 전부 다 온 거야?”
“응, 여기 근방으로 부대 베이스를 옮겼어. 봄에 네가 봤듯이 남쪽 전선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거든. 그냥 광활한 무인지대 바라보는 것 말고는. 우린 군인이야. 죽는다고 해도 액션이 필요하다고.”
동이 터올 무렵 드디어 페슈메르가 정규군과 탱크, 그리고 장갑차들이 도열하고 먼저 들어갈 채비를 했다. 이라크 정부가 전쟁을 선포한 후 반년 넘게 기다려왔던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모인 언론사들도 방송을 찍기 시작했고, 나 또한 촬영을 시작했다.
큰 폭탄 소리가 들리고 탱크들이 2년여간 아무도 밟지 않았던 무인지대에 들어서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탱크와 장갑차들이 언덕으로 이루어진 참호 중 투입을 위해 열어놨던 곳을 통해 전진하기 시작했고, 대규모의 보병이 빠른 걸음으로 뒤따랐다. 장대한 광경이었다. 마치 전투가 시작과 동시에 이미 끝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언덕 위에서 그 기다란 행렬을 촬영한 후 행렬에 합류해 걸어가려는데 어느 시점에 우리는 저지당했다.
“저널리스트들은 여기서 기다려야 해. 전투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르고 너무 위험해.”
페슈메르가 공보담당 장교의 지시였다. 모든 이들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방탄복을 입은 쓰러질 수 없는 불사조인 듯 행동했고, 그곳에 있던 저널리스트들도 그 분위기에 알게 모르게 휩쓸렸었는데 그제야 다들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는 실제 전쟁터야. 게임이 아니라고.”
ISIS도 이날이 언젠가 올 것을 알고 단단히 준비를 했을 터이다. 곳곳에 지뢰를 설치하고 다가오는 적들을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을 터였다.
조금 맥이 빠지던 그 순간 몇 시간 전에 마주쳤던 헬로와 PAK 부대원들이 지나갔다.
“아직 여기 있네. 안 들어가고 뭐 해?”
“외국 저널리스트들은 여기서 대기해야 된대.”
“브라더, 우리랑 같이 들어가면 되지. 너도 용병이라 하고. 잘됐네. 우리의 역사적 승리를 기록해 줄 누군가가 생기는 거니.”
살짝 눈치를 보다가 얼른 그들 사이에 껴서 트럭에 올라탔다. 그런데 PAK 부대는 어인 일인지 탱크와 장갑차 부대가 가고 있는 평야의 길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전선을 넘자마자 트럭에서 내려 근처 언덕에 있는 어떤 마을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청된 민병대 자격으로 페슈메르가의 부대 이동 큰 틀만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조금은 독자적으로 그들이 싸우고 싶은 전선을 고를 수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뒤에서 이들을 바라보던 이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와, 무지하게 용감하네. 아무런 거침없이 자신들을 향해 ‘쏠 테면 쏴 봐’하듯 걸어가네.’
한편으로는 그들의 용맹함을 높이 사면서도 너무 무모한건 아닌지 솔직히 조금은 염려스러운 심정으로 그들을 뒤따라 갔다.
마을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는 듯했다. 반년 전 마주쳤을 때도 이 용병 부대가 자신들의 이미지와 홍보에 신경 쓴다는 걸 느꼈었는데, 마을이 비어있다는 것을 파악하자 이들은 약간의 시간을 들여 홍보 영상물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며 이들이 실제 전투에 보탬이 되려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이 전투를 자신들의 홍보 기회로 살리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건지 조금의 의구심이 들었다.
언덕 마을에서 내려와 다시 페슈메르가 본대 대열을 합류했고, 몇 킬로미터를 별다른 저항 없이 진행해 평야에 있던 집결지에 도착했다. 이미 탱크부대는 1km 전방에서 연신 포격을 하고 있었는데, 실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마을 안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적군을 향해 선제공격을 하는 건지는 확실치 않았다.
페슈메르가의 부대장 미팅에서 돌아온 헬로가 말했다.
“준비해. 우리가 다음에 들어갈 거야.”
조금 전 여유 있게 홍보물까지 찍던 이들이 이제는 실제 전투가 벌어질 거라는 예감을 했는지 비로소 더 진지하고 비장하게 무기들을 챙겼다.
“앞선 두 개의 마을을 먼저 간 탱크들이 초토화시켰어. 선발대 말로는 그 마을들에는 아무도 없는 듯하대. 오늘은 첫날이라 너무 욕심내지 않기로. 탱크 있는 마을까지 가서 수색하고 별 이상 없으면 다시 이리로 돌아와 밤을 보낼 거야. PAK의 용맹함을 보여줄 순간이 온 거라고.”
장갑차와 트럭들이 가운데 일렬로 가는 가운데 부대원들이 양옆에서 도보로 이동하며 천천히 전진했다. 이제는 다들 확연히 긴장한 모습들이었다. 새벽에 사기를 돋우기 위해 노래를 부를 때의 열정과 자신감도, 좀 전에 언덕 위 마을에서 홍보물 촬영 시 웃음기도 다 사라진 채 사방을 주시하며 뭐라도 전방에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지 예의주시했다.
2킬로미터쯤 전진했을 때, 오른편에 나타난 작은 집이 우리의 시선을 붙잡았다. 다가서는 순간, 담장 너머로 하얀 깃발이 서서히 올라왔다.
PAK 병사 하나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고, 모두가 일제히 총구를 그 건물을 향해 겨눴다. 그리고 누가 먼저 발사한 건지도 확실치 않게 총이 발사되었고 흥분한 우리 쪽 병사들은 그 작은 집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듯 쉴 새 없이 총을 쏴 대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는지 앞서 가던 탱크가 포구를 돌려 발포를 했고, 근거리에서 발사된 그 포격에 고막이 찢어질 듯했다.
‘세상에, 저 안에 있는 누가 있었을까.’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실제 사격 시간은 2분이 채 안 되었을 텐데, 영원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총성이 멎자 먼지만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런데 어인일로 PAK은 누군가를 건물로 보내 상황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총구만 그쪽을 향한 채 천천히 계속해서 전진했다.
‘아니, 저 안에 백기 흔들던 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인 안 하고 그냥 간다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방금 전의 맹렬한 교전으로 모두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큰 대로를 따라 전진을 했다. 장갑차들은 가운데, 그리고 병사들은 양쪽으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걸어가는 형태였다. 나는 오른쪽 열 중간쯤에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장 책임지휘관 아달란이 내 쪽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지 미처 생각할 새도 없이 그는 내 엉덩이를 강하게 걷어찼다.
“내 대원들 죽이려고 작정했어?”
사실 나는 지뢰 위험에 대한 경고를 익히 들었기에, 앞 병사의 발자국만 보며 걸었다. 엄밀히 말하면 만약 누군가가 잘못했다면 내 앞의 병사였을텐데, 좀 억울했지만 지금 모두의 흥분 상태를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그저 잠잠히 있었다.
2~3킬로미터를 더 가서 물을 마시기 위해 잠시 멈춰 섰을 때 부대원들을 둘러봤다. 어려 보이던 몇몇 병사들의 눈빛은 조금은 혼이 나간 듯 초점 없이 멍하게 허공을 응시했고, 경험 많은 병사들도 조금 지쳐 보였다. 그 와중에 헬로와 아달란은 계속해서 분주히 앞뒤를 오가며 병사들의 안부를 묻고 격려했다.
멀찌감치 탱크 부대가 다음 마을에 도달해 주위 건물들을 향해 포격하는 게 보였다.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잔해와 연기가 맑은 하늘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한동안 무전기를 통해 교신하던 헬로가 명령을 내렸다. 그 자리에서 돌아선다고.
“탱크가 도달한 마을이 확실하지 않다고 하네. 미군 폭격기를 요청해서 폭격 후 내일 다시 접근하기로 결정을 내렸대. 그래서 보병 부대는 일단 아까 들판의 임시 거점으로 돌아가 하룻밤 대기하라고 하네. 나 같으면 내친김에 몇 개 마을은 오늘 점령해 놓고 쉬었을 텐데, 우린 그저 초대받은 용병 부대이니 그들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그들의 삶을 상상해 봤다. 중동 4개국에 흩어져 사는 대부분의 쿠르드족들은 호스트 국가로부터 철저히 2등 시민 취급을 받으며, 자신들의 영토 국가가 없다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간다. 이라크에서는 그나마 확실한 자치권을 얻어 나름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늘 불안하고, 터키와 이란에서는 쿠르드 단체 자체가 테러리스트로 지정되어 모든 활동이 제재 대상이다. PAK과 같은 무장단체는 이란에서 설 자리를 잃고 이렇게 이웃 이라크의 형제 쿠르드 정부에 의탁해 존재 가치를 유지해 간다.
어느 나라에 있든 그들은 늘 지역 정세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어렵게 마련한 자치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힘을 키우고 언젠가 독립할 날을 꿈꾼다. ISIS 같은 집단이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 때, 그 누구보다 용맹하고 전투력이 뛰어난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자들이 있다. ‘이번에 우리를 도와주면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돕겠다’는 헛된 약속을 하며.
그들도 안다. 매번 지켜지지 않을 약속, 남의 전쟁에 뛰어들어 위기를 넘기고 나면 모른 척하는 그 패턴을. 하지만 그들은 늘 을의 입장이고 손에 쥐고 있는 카드도 여의치 않다. 약속 이행을 요구해 봐도 강제할 힘이 없어, 그저 중동의 호구처럼 이용당하는 자신들이 서러울 뿐이다. 십자군 전쟁 때 유럽 기독교 세력을 물리친 살라딘의 후예라는 자존심은 그렇게 늘 금이 가곤 했다.
매복
우리는 왔던 길로 천천히 되돌아갔다. 불과 한 시간 전 초토화시켰지만 생존자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지나쳤던 바로 그 가옥을 지나칠 때였다.
처음엔 ‘핑!’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마치 귀 바로 옆을 지나가듯 선명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판단할 새도 없이 ‘탱!’하고 내 뒤 장갑차에서 튕겨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수십 발의 총알이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게 쏟아져 나왔고, 그제야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매복이었다.
본능적으로 바닥에 고꾸라져 포복 자세로 몸을 숨겨야 했다. 도로 왼편에는 장갑차 한 대, 오른편에는 트럭 두 대가 우리가 몸을 숨길 수 있는 전부였다. 황급히 총격 범위를 벗어나는 곳으로 포복해 장갑차와 트럭 사이에 몸을 숨겼다. 트럭 위의 여전사들은 겁에 질려 트럭 짐칸의 낮은 옆면을 방패 삼아 바닥에 바짝 엎드려 귀를 틀어막고 울부짖었다. 공간이 부족해 겹겹이 몸을 포개고 누워 있는 채로.
벌판 한쪽에서만 날아온다고 생각했던 총알들이, 가까스로 안전각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 끊임없이 총알들이 내 뒤 장갑차 반대편을 때리는 소리가 명확히 들렸다. 몸을 숨길 곳은 차량들 사이뿐이었다. 완벽히 독 안의 쥐였다.
그 좁은 공간에 20여 명의 PAK 병사들과 내가 총알을 피하기 위해 사각지대에 몸을 숨겼다. 상대가 기관총을 쓰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쉬지 않고 귓가를 스치며 공기를 채우고 장갑차를 때리는 불꽃의 양으로 보아 상당한 수의 적군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격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완전히 기세를 잡은 적군은 더욱 맹렬히 총을 쏴 대었다.
죽음의 그림자
순간 내가 몸을 숨기고 있던 뒤쪽 트럭이 앞으로 움직였다. 당황한 운전병이 조금이라도 앞차와의 간격을 좁혀 병사들의 은신 공간을 더 만들려 했던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악수였다. 나와 몇몇 병사들이 순식간에 트럭 뒤쪽에 완전히 노출되었고, 우리는 욕을 하며 앞으로 달리는 트럭을 황급히 쫓아가야 했다. 귓가로 스쳐 지나가던 총알 소리가 더 크고 가깝게 느껴졌다. 미세하게 총알이 우리를 비껴갔지만, 누군가는 결국 맞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극한 상황에서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어져 현실이 슬로모션으로 진행되는 경험을 나는 이 순간에 했다. 평소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정신줄을 놓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단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야! 아무도 너를 강제로 여기 오게 하지 않았어. 네 발로 걸어 들어온 거야. 여기서 총에 맞아 쓰러져 이 병사들이 뒤치다꺼리하지 않게 정신 똑바로 차려서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
정말 그랬다. 적어도 그 긴박한 상황에서 목숨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보다는, 제발 이 친구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돌이켜봐도 놀라운 일이었다.
트럭이 얼마 가지 못해 바퀴가 모두 터져 멈춰 섰고, 우리는 가까스로 다시 트럭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트럭을 운전하던 아와라가 운전석에서 나와 총을 들고 반격 사격하려던 순간 쓰러졌다.
꿈같았다. 머리에 총알을 직격으로 맞고도 너무나 고요하게 쓰러지는 그를 멍하게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움직이던 그 몸에서 영혼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떻게 저리 평화로운 얼굴로 마치 잠이라도 자듯 반듯하게 바닥에 누워있을까? 주위의 혼란스러운 소음이 상상 속에서 모두 사라지고, 순식간에 모든 총알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들게 고요해졌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내 몸의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했다. 머리에 총을 맞았는데 어떻게 피 한 방울 없이 저리 얌전히 누워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머리 뒤편 바닥에 피가 스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바로 전날 노래를 부르며 부대원들의 사기를 올리려 했던 그의 표정이 짧게 머리를 스쳐갔다. 그 표정에서는 몇 시간 안에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수 없었는데. 강인한 킬러의 인상보다는 화조차 낼 수 없을 것 같이 사람 좋아 보였던 그가 왠지 정이 갔던 친구였는데. 왜 동료들이 그 주위에 모이기를 좋아하는지 그 결을 느낄 수 있던 사람.
영혼이 육신과 분리되는 과정이 이렇게 간단한 일이구나.
또 다른 희생
큰 울부짖음이 현실의 혼란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아와라가 쓰러진 줄도 모른 채 적군이 보이지도 않는 들판 너머 둔덕을 향해 사격에 온 집중을 하던 주위 3~4명의 병사가 뒤늦게 쓰러진 아와라를 발견했다. 한 병사의 울부짖음을 듣고 모두 뒤를 돌아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총을 바닥에 던지고 단숨에 달려와 아와라의 몸을 덮고 둘러쌌다. 상태를 확인했지만 너무 늦었다.
아와라의 죽음.
오전의 쿨하기까지 했던 그 위풍당당한 여유와 기세는 증발해 버렸다. 자기 최면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은 쓰러지지 않고 정복되지 않을 거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쉬운 착각에 가까운 최면.
아와라가 더 이상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가까스로 받아들인 병사들은 흙먼지와 눈물이 범벅된 채 한껏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며,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적을 향해 이제는 조준도 없이 그저 분노 표현에 불과한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ISIS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파악하려 조심스럽게 트럭 너머로 고개를 최소한으로 들어 내다봤다. 대략 100미터의 나무 한 그루 없는 평지에 몇몇 ISIS 대원들이 엎드린 채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보였지만, 대부분은 그 뒤 둔덕과 건물들, 나무 뒤에 자리 잡고 공격하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를 완벽하게 사격 범위에 가둬놓고 마음껏 유린하던 적군의 손에 우리를 겨우 지켜주고 있던 트럭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었을 바주카포 같은 무기가 들려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본대는 중화기 무기를 가지고 퇴각했을 것이고, 남아있던 그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모술을 향해 다가오는 이라크 정규군의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것. 저들은 살기 위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들도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신의 뜻에 따라 기꺼이 남아 미약한 무기만으로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채 밀고 들어오는 이쪽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우리가 신의 자비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탈출
혼미한 상황에서 장갑차 한 대가 더 가까이 다가와 앞 장갑차 뒤편으로 바짝 붙어 섰다. 적어도 그쪽에서 오는 총알 공격은 어느 정도 막아주었지만, 장갑차 밑 빈 공간으로 총알이 날아와 다리에 맞을 수도 있어서 완벽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앞쪽 트럭에 있던 아달란이 황급히 내 쪽으로 건너오는 게 보였다. 이미 옆에 쓰러져 있는 아와라와 그를 옮기려고 총을 내려놓고 내 곁에 있던 3명의 병사들로 우리는 거의 무방비였고, 화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옆으로 움직여!”
두세 발자국 옆으로 옮긴 후, 나는 멀리 탱크 부대가 있던 쪽을 바라봤다
‘제기랄! 공격당하고 있는 걸 모르나? 왜 이쪽으로 빨리 도와주러 오지 않는 거야?’
다시 아달란이 들어선, 불과 몇 초 전 내가 서 있던 방향을 돌아봤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달란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와라와 마찬가지로 머리에 총을 맞았는데, 아와라와는 달리 피가 용솟음치듯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또다시 총을 내려놓고 몰려든 부하들이 붕대로 머리를 칭칭 동여맸지만, 금세 빨갛게 물든 붕대와 이미 초점을 잃은 그의 눈빛에서 살리기엔 이미 늦어 보였다.
비로소 전방의 탱크와 몇 대의 장갑차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양방향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상대방의 총격이 조금 주춤해져 약간의 틈이 생기자, PAK 부대원들은 붕대가 칭칭 감긴 아와라와 아달란을 장갑차에 실어 현장을 빠져나가게 보냈다. 무한궤도 바퀴로도 저리 빨리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남은 병사들도 이미 망가져버린 트럭들을 버리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또 다른 장갑차를 향해 달기기 시작했다. 묵직한 탱크와 장갑차들의 움직임, 큰 기관총을 쏘는 PAK 대원들로 먼지가 크게 일어나 숨을 쉬면 흙을 마시는 듯했지만,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그 현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정말 말 그대로 목숨 걸고 뛰어야 했다. 점점 속도가 붙는 저 장갑차에 올라타지 못하면… 그 상상은 하기도 싫었다.
나와 몇몇 병사들은 달리는 장갑차 옆과 뒤쪽에 가까스로 매달리는 데 성공했다. 조금 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팽팽 들리는 총알을 피해 장갑차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붙잡았다. 그 묵직한 몸체가 빠른 속도로 울퉁불퉁한 땅을 내달릴 때 그 진동으로 뼛속까지 울리는 듯했지만 견뎌야 했다. 긴장 때문에 손에 나는 땀으로 매달려 있기가 너무 힘들어져 손에 쥐가 나는 듯한 고통을 견디다가, 결국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스스로 장갑차에서 떨어져 나가려던 순간 장갑차가 속도를 늦췄다.
몇 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릴 여유조차 없이 내 앞에 매달 린 병사의 어깨에 둘린 소총만 바라보며, 흙땅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그대로 다 들이마시며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아직도 내 카메라 가방과 두 개의 카메라가 내 어깨에 둘러져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 달리는 속도를 이겨내려고 온 힘을 다 썼다. 속도가 떨어지고 나서야 조금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공격받은 지점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듯했다. 더 이상 공격받을 위치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장갑차 운전자는 차를 멈추고 밖에 매달려 있던 우리에게도 장갑차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안에는 5~6명이 있었는데 모두 영혼이 빠져나간 듯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각자의 세계에 머물며 다른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시 차가 출발하고 모두 침묵만을 간직한 채 장갑차의 커다란 엔진소리와 덜컹거리는 소리만이 우리를 감쌌다.
겨우 붙들고 있던 감정이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내 앞 한 병사가 전화기 스피커폰으로 상사에게 보고하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차 안 모두가 더 이상 숨기려 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대성통곡을, 다른 이들은 가슴을 부여안고 고개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동료를 잃은 그 비통함과 아픔은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나 또한 코끝이 찡해졌다.
슬픔의 의례
임시 베이스로 돌아와 흩어졌던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헬로가 연설했다. 통역 없이도 어떤 얘기인지 얼추 짐작이 갔다. 그날의 비극을 계속 생각하며 머물 수는 없었다. 얼마나 길어질지 모를 전쟁의 시작이었기에. 감정적이던 대원들은 다음 날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러 흩어졌다. 탄창을 정리하고, 무기를 닦고, 야전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를 적의 기습에 대비해 밤새 돌아가며 보초를 섰다.
동이 트기 전에 깬 나는 맨바닥에서 자고 있는 대원들을 둘러봤다. 아직 십 대로밖에 안 보이는 한 여군이 손에 조금은 해진 인형을 꼭 붙들고 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봄 그 무리의 젊은 여군들이 재잘거리며 나의 출연과 질문들에 낄낄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진지하게 자신들은 그 어떤 남성 병사와 비교해도 용맹이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라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그녀들도 한창 생기 넘치게 학교를 다니며 미래를 설계하거나 사랑을 하며 그 나이대 청년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었을 텐데, 총자루를 옆에 낀 채 인형을 끼고 있는 그 모습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보초를 서던 이들을 위해 차를 끓이던 한 병사가 내게도 한 잔 가져와서 권했다.
전에 아와라가 하던 역할이었다. 여전히 전날의 전율과 공포가 가시지 않고 너무나 생생한데 동시에 그 실제의 사건이 너무 아득하게 멀리 느껴졌다.
며칠 후 우리는 에르빌 외곽의 한 공동묘지에 집결했다.
희생자가 발생한 후 이라크 정규군의 배려로 PAK 부대는 후방으로 잠시 빠져 조용한 며칠을 보냈다고 헬로가 말해줬다. 전투요원들 이외에도 후방에 남아있던 부대원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쿠르디스탄 정부에서 나온 군 관련자들이 모인 꽤 큰 장례였다.
다행히 아달란은 살아남았다.
머리에서 그렇게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며칠간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그날 오전 겨우 정신을 차렸다는 얘기를 헬로가 귀띔해 줬다.
운구차가 도착해 쿠르디스탄 깃발을 덮은 관을 차에서 내리자 일렬로 곧게 서있던 몇몇 부대원들의 얼굴에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관이 땅속에 묻히기 직전에 아와라의 여동생이 이대로는 못 보낸다는 듯이 관을 부여안고 오열하다 그대로 실신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헬로와 몇몇 이서 근방 아달란이 치료를 받고 있던 시설로 이동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지금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힘겹게 눈을 뜬 채 그 와중에도 헬로로부터 현장 관련된 보고를 받고 지시를 주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손을 들어 가까이 오라고 몸짓했다.
“해리, 미안해.. 널… 걷어차서.. 네.. 가… 잘못한 거 아니라는 거.. 알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그게 신경이 쓰였나 보다.
“괜찮아 아달란. 난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었어. 모두 널 잃은 줄 알았어. 네가 내 대신 총에 맞았잖아. 이제 제발 헬멧 좀 써라. 부대원들은 헬로가 아주 잘 이끌고 있다는 거 내가 증인이니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나아..”
아달란과 인사를 나누고 아와라의 영정 사진을 차 앞 유리에 고정한 채 PAK 대원들은 비전투 대원들과 가족들이 살던 최전방 근처 임시 베이스로 향했다. 거의 일주일 만의 귀환이었다.
헬로가 말했다. 아직 몇몇은 아와라의 소식을 모른다고. 그들이 누군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관사처럼 보이던 건물 앞에서 또래 아이들과 장난치던 십 대 초반의 군복 입은 소년이 차량들의 진입을 보고 친구들을 밀쳐내고 신나게 달려왔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오던 그가 앞 유리의 아와라 사진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그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설명해 주니 않아도 알았는지, 이내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아와라를 제일 따르던 녀석이야. 아와라를 따라 노래를 배우고, 커서 PAK을 실어 나르겠다며 운전도 가르쳐달라고 늘 졸라댔어.”
매복 당시에도 함께 있었던 헬로의 부인이 차에서 내려 아이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위로했다. 며칠 전 인형을 꼭 붙들고 있던 여병사를 봤을 때처럼, 아직은 이 아이가 이런 슬픔을 일상으로 삼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십 대를 뒤돌아본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접할 일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에 대해.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이런 극한 상황을 겪으면서 삶이 얼마나 찰나에 사라질 수 있는지, 결국 우리 모두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죽음이라는 문제를 일상에서는 애써 외면하거나 당장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며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분쟁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일찍 알아버리고 가까이해야 하는 이 소년 같은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음을 늘 인식하고, 그래서 주어진 삶을 더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망각의 동물인 인간인 나는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그런 감사함을 또 잊곤 할 테다.
어쩌면 나는 잊지 않기 위해 또다시 길을 나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