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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Jan 24. 2017

피자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사무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에는 아침까지 늦잠을 자고 10시쯤 슬슬 일어나서 계란 프라이를 해 먹거나 아보카도를 퍼먹거나 빵으로 대충 때운다. 주말 아침의 쿠바는(적어도 우리 동네는) 참 평화롭고 심심하기까지 하다. 집에서 어차피 와이파이도 안되고 데이터 개념은 아예 없으니 이 곳에서 휴대폰은 Mp3로 전락해버린지 오래이다. 처음에는 인터넷 없이 살 수 있을까, 했는데 이제는 신기하게도 오히려 자유로운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쓸데없이 휴대폰만 쳐다보다가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리거나, 일찍 잠자리에 누웠지만 또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늦게 자서 다음 날 후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적어도 이 곳에서 그럴 일은 없다. 집에 오면 휴대폰은 침대에 휙 던져놓고 요리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청소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새 간다. 이럴 때는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의 하루도 이렇게 짧을까.  


 그날도 별다를 것 없는 어느 토요일이었다. 친구가 집에 놀러 왔는데 둘 다 점심을 일찍 먹은 탓에 4시쯤 이른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저녁 시간이 되니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대로 쭉 아무것도 안 먹었으면 가장 이상적이었겠지만, 항상 배가 고픈 성장기의(?) 우리는 9시쯤 되니 입이 심심해졌다. 그렇다고 뭔가 해 먹기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고 귀찮기도 해서 피자를 주문해 먹기로 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쿠바에서 피자 배달이 되는지도 몰랐다.


 평소 아는 피자 집에 전화를 하니 배달하는 직원이 두 시간 반 정도 있다가 돌아올 것 같다고 한다. 두 시간 반? 올긴으로 배달 간 모양 인가 보지? 친구가 우스갯소리를 한다.(올긴은 아바나에서 버스로 편도 약 12시간 정도 걸린다)


 메뉴 사진을 볼 수도, 인터넷으로 블로그 식당 후기를 찾아볼 수도 없는 이곳에서 지금까지 경험한 바 피자는(특히 피자 도우는) 복불복이다. 피자를 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식당은 바로 집 건너편 쪽에 있는데 글쎄, 도우가 피자 두께의 반이 넘는다. 그리고 굉장히 딱딱하다. 그래도 그 위에 투박하게 올린 햄과 파인애플이 풍성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 친구랑 친해지기도 해서 가끔 방문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굳이 그 딱딱한 피자는 먹고 싶지 않았기에 열심히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문득 전에 받았던 전단지가 기억이 나서 방을 뒤져본다. 아, 찾았다! 매일 출근길에 지나치는 이 가게는 크지는 않지만 항상 손님이 한 두 명은 있다. 완전 로컬 식당은 아니고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데, 그냥 딱 보기에도 그저 그래 보일 만큼 평범한 곳이다. 그나저나 얼마 전부터 전단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메뉴가 몇 페이지에 걸쳐 나와있긴 하지만 아마 이 중 반은 어떤 이유로든지 주문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은 친구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무튼, 아무래도 외국인 대상이라 그런지 가격대가 좀 있다. 원래 주문하던 곳 하몽 피자가 4.5 쿡 정도 했는데 여기는 10 쿡을 받는다(1 쿡은 약 1달러). 좀 더 좋은 하몽을 쓴다고 해도 차이가 꽤 난다. 5 쿡 정도의 하와이아나 피자(파인애플+햄)를 먹어보기로 결정하고 주문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하와이아나 피자가 없단다. 뭐, 다른 식당에서도 파인애플이 없다고 해서 못 시킨 적이 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그럼 대신 치즈 피자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또 없단다. 그럼 뭐가 있냐고 하니 스페셜 피자와 하몽 피자만 있다고 한다. 슬쩍 전단지를 보니 그 두 피자가 메뉴 중 가격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비싼 피자 두 개만 주문이 가능하구나. 나머지 메뉴는 들러리인가.


 그런데 치즈 피자가 없는데 스페셜 피자가 있다고...? 치즈와 토마토소스만 들어간 기본 피자가 없는데 스페셜 피자가 있다고...?


 일단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친구가 아 여기서는 스페셜이랑 하몽 피자는 치즈랑 토마토 베이스가 아니라 뭔가 특별한 소스를 쓰나 보지, 하고 또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다. 난 또 그걸 받아 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허허 하며 넘긴다. 여기는 쿠바니까. 그래도 다시 전화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야식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밤 11시에 피자 대신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렇게 오늘도 조금 더 토실토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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