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본즈 "몽고메리 변주곡"
"흑인 작곡가"라고 하면 누구를 떠올리시나요? 어떤 분은 래그타임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콧 조플린을, 또 다른 분은 "흑인 드보르작"이라 불린 사무엘 콜레리지 테일러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흑인 여성 작곡가는 어떨까요?
흑인 예술가 공동체 속에서 나고 자란 마가렛 본즈(Margaret Bonds, 1913-1972)는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이며 불과 스무 살에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최초의 흑인 독주자가 되었습니다. 숱한 인종적, 성별적 편견과 맞서 싸우며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그녀는 플로렌스 프라이스 같은 동시대 흑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흑인 영가를 예술음악으로 승화하는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본즈는 시민권 운동과 같은 당대 사회적 이슈를 작품 속에 녹여내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대규모 관현악 작품 가운데 걸작으로 꼽히는 <몽고메리 변주곡(Montgomery Variations, 1964)>은 당시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미국 사회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하는 역사적 기록이라 할 만합니다.
분리하되 평등하다?
1960년대 미국 남부의 여러 주는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의 "분리하되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의 원칙 하에 백인과 흑인을 법적으로 분리하는 제도를 강하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흑인은 공공시설, 학교, 식당 및 버스 등의 이용에서 차별을 받았고, 정치 참여에도 큰 제약을 받았습니다.
특히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Montgomery)는 흑인 커뮤니티 저항의 중심지였는데요, 당시 몽고메리 시내버스는 앞좌석은 백인, 뒷좌석은 흑인 좌석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흑인들은 앉아 있다가 백인이 타면 자리를 비워야 했습니다. 그러던 1955년, 재봉사이자 흑인 민권 운동가였던 로사 파크스가 버스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요구를 거부해 결국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고, 이 사건은 흑인들이 주도한 대규모 버스 보이콧 운동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흑인 승객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카풀이나 도보, 심지어는 마차 등으로 출퇴근을 해결하는 식으로 보이콧 운동을 펼쳤습니다. 당시 버스 승객 중 대부분이 흑인이었기에 버스 회사에게는 큰 타격이었지요. 약 일년 넘게 지속된 보이콧 끝에 결국 미국 연방대법원은 버스 내 인종 분리 제도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몽고메리 버스는 끝내 통합되었습니다. 젊은 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리더로 떠올랐던 것도 이때였죠. 그는 비폭력, 평화적 저항 운동을 내세운 리더십을 보여주며 흑인 사회 내 집단적 연대를 강화하고 저항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어느 일요일에 일어난 비극
몽고메리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 버밍햄(Birmingham)은 '폭탄 도시(Bombingham)'이라는 별명까지 있었을 정도로 인종 갈등과 폭력이 자주 일어나는 도시였습니다. 특히 1963년 9월 15일에 버밍햄의 16번가 침례교회(Sixteenth Street Baptist Church)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충돌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주말 예배를 들으러 온 10대의 어린 소녀 네 명이 사망했고, 교회 건물은 폐허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증인들이 위협을 받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초기 수사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폭탄을 설치한 용의자로는 극우단체 KKK(Ku Klux Klan) 소속 인물들이 지목되었습니다. 희생자들이 어린 소녀였다는 점, 그리고 평화의 상징인 종교 공간이 공격당했다는 점 등으로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분노와 충격을 일으켰습니다.
1963년 봄, 본즈는 바리톤 가수 유진 브라이스(Eugene Brice) 등과 함께 미국 남부 순회 공연을 이어가며 시민권 운동의 현장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특히 버밍햄의 폭탄 테러 사건은 큰 충격이었고, 본즈는 몽고메리 보이콧의 정신과 무고한 소녀들의 희생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곡을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은 1년 후인 1964년에 완성되었고, 작곡가는 이 곡을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게 헌정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본즈 자신은 생전에 이 곡의 연주를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본즈 같은 20세기의 흑인 여성 작곡가는 오랜 기간 주류 레퍼토리에서 소외되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최근 학계와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재조명하고, 보스턴 심포니 등 주요 관현악단이 무대에 올리고 녹음하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갈등을 지켜보며 본즈가 사회에 자리잡은 긴장과 상처를 드러낸 방식을 되돌아봅니다. 그녀는 테러 사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화해와 관용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한 오늘날,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유효할까요? 화해의 말이 책임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본즈의 음악을 들으며 지금 우리 세대가 마주한 폭력과 갈등을 미래 세대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시켜야 할지, 또 그 기억을 미화하지 않고 어떻게 기록하고 전승할 수 있을지 찬찬히 고민해봅니다.
이 작품은 흑인 영가 <I Want Jesus to Walk with Me>의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곡(freestyle variations) 형태로 쓰였습니다. 작곡가 본인은 바흐의 파르티타에 비유하며, 주제를 대담하게 진술한 뒤 같은 조성에서 장조, 단조를 넘나드는 변주를 전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영가가 지닌 개인적, 공동체적 의미를 존중하여 선율을 과도하게 변형하지 않고, 이를 중심축으로 삼아 악장을 엮어내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의 지도 아래 몽고메리에서 흑인들이 버스 보이콧을 결의하고 권리를 위해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순간을 묘사하는 대목입니다. 팀파니의 짧은 롤로 시작해 관악이 포르티시모로 영가 선율을 대담하고 단호하게 제시합니다.
조용하고 내밀하게 시작된 기도는 어느새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달아올라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는 열정적인 종교 의식으로 변해갑니다. 트롬본이 재즈풍, 블루스풍의 솔로를 선보이는 와중에 춤은 계속되며 황홀한 투티로 나아갑니다.
버스에서 차별받느니 차라리 걸어가기를 택한 몽고메리의 흑인들이 행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가 선율에서 파생된 행진곡의 주제가 반복되며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딕시"란 미국 남부의 여러 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백나무와 목련, 재스민과 스페인 이끼가 자라나는 미국 남부의 자연은 평화롭지만 해가 뜨기 전 새벽의 고요함 속에,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가 한창인 교회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곧 우드블록, 팀파니, 심벌즈와 큰북의 연타가 이어지며 폭탄이 터진 장면이 표현되고, 악장은 급하게 마무리됩니다.
작품의 핵심 대목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악장입니다. 서두의 영가 주제가 천천히 세 번 되풀이되며 비탄의 노래를 부릅니다. 음악은 몸서리치는 듯 점점 고조되다가도 울음을 삼키듯 가라앉습니다.
본즈는 "자애로운 하나님은 착한 이와 악한 이 모두에게 사랑을 내리신다"고 적으며 절망과 갈등이 만연한 속에서도 화해와 희망의 비전을 제시합니다. 장중한 현의 서주로 시작해 관악기가 쓸쓸하면서도 평화로운 새 주제를 펼칩니다. 이 선율은 잠시 끊기는 듯하다가, 더욱 강력하고 희망적인 '축복의 주제'로 이어지며 웅장한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금관으로 연주되는 D단조의 영가 선율이 F장조의 축복의 주제와 결합하며 작품은 화해 속에 조용히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