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여행의 고수라고 생각한다. 비록 아직 살아온 시간은 빈약하고 여행의 철학은 얕지만. 배낭 하나와 튼튼한 두 다리에 의지한 채 뙤약볕 아래를 걸어내는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순례자의 인내나, 나의 세상과 정반대에, 정말 존재하는지도 모를 오지의 섬을 헤쳐나가는 배낭여행객의 용기나, 끝이 어딘지도 가늠하기 힘든 사막의 한 복판, 별빛이 쏟아내리는 초원에서 인생의 변곡점을 찾아내는 행운도 아직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단지 남들보다 조금 많이 가보고(진정한 여행 고수에게는 명함도 못 내민다) 술자리에서 떠들어 댈 외국인 친구와의 대화 그리고 비행기 마일리지가 많다는 그저그런 이유로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있다.
담쟁이를 시작하고 나서 별의 별 것을 소재로 나의 취향에 대한 설명들을 덧붙였다. 먹어댈 줄 밖에 모르던 샌드위치나 정말 1도 모르는 핸드드립 커피, 필름카메라에 대해서도 썼고 사실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것들도 하나의 소재라는 이유로 가벼이 이 공간에서 쓰여졌다. 그러니 성인이 된 이후, 내 나이 앞에 2가 붙기 시작한 이후의 시간에 굉장한 지분을 차지하는 배낭 여행에 대해서 쓰지 않았다는 건 조금 의문스럽다.
아마도 끊임 없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한달에 그정도 돈을 써버리면 분명 즐거울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처럼 엄청난 비용이 들고,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며 찍어댄 사진 속의 나는 생각보다 행복해보이지 않고 꾀죄죄하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여행 중 권태를 느끼기도 하고, 가끔은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인종차별, 소매치기의 위협에 어깨가 움츠러 들기도 한다. 실제로 스무살 베를린에서 나는 이층 침대 구석에 누워 애꿎은 베개를 적시며 엄마에게, 그리고 오랜 기간 독일에서 생활했다는 한 친구에게 전화를 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베를린은 축축한 이층 침대로 기억되고 맥주나 소시지, 베를린 장벽과는 전혀 동떨어진, 그런 특이한 이미지를 독일에 갖게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무수한 배낭여행 이후에도 내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좋아한다고 쉽게 말해버리기엔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무수히 떠오르고, 여행의 모든 순간에 행복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지워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에게 여행은 애매하다. 매번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징징대면서 인천공항에 내리자 마자 다시 여권을 만지작대는 내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에. ‘누나는 여행을 좋아하잖아’라는 말에 선뜻 그렇다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곰곰이 지난 여행을 돌려보는 내가 답답하기 때문에. 이제는 이 공간에 이 이야기들을 써내려 갈 시간이 된 것 같다. 많은 것들이 담쟁이를 거쳐 내려간 이후로 명확해졌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이 공간의 힘을 빌려본다.
스무살의 여행
내일로 5개 도시 / 오사카 / 유럽 7개국 / 칭다오
스무살 이전의 내 인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단조로웠다. 나는 특별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위인들이나,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할 경험들을 전시하는 인스타그램 속의 인플루언서나, 나보다 조금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해 ‘어른’같아 보이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나를 조금 더 남들보다 특별하게 만들만 한 경험들, 이야기들, 그리고 사진들이 필요했다. 그리곤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볼꺼야,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할거야,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이 될거야. 이렇게 외치면서.
유럽 배낭 여행은 그런 생각이 가장 최고조에 이를 때 결정되었다. 누구보다 빨리 비행기를 예매하고 돈을 벌기 위해 송도에서 원주까지 그 긴거리를 매주 왕복하며 과외를 했다. 그렇게 피 땀 눈물이 모인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는 한국을 떠났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진기와 일기장에 집착했다. 숨쉬고 걷고 먹는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 애썼다. 매 순간 남들보다 많은 것을 얻고, 기억하고, 보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넓은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열악하고, 잔인했으며 처음 우물 밖을 나와 본 스무살의 개구리가 버티기엔 너무나도 커다랗고 버거웠다. 30일짜리 기차 패스(40만원 상당의)를 훔쳐간 브뤼셀의 도둑놈, 베를린에서 우리에게 팬티를 던지고 폭죽을 쏘아대던 인종차별주의자들, 지하철 문 앞에서 길을 비켜줄 수 없다고 ‘impossible’을 반복하던 영국인 부모놈들, 눈을 쫙 찢고 우릴 향해 니하오를 외치던 콜로세움 앞의 흑인 무리들을 기억한다. 무서웠고,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 당시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정말 나의 잘못인 걸까 하는 생각에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다.
사진 속 나는 그토록 그들이 차별하고 혐오하는 동양인이고, 인스타 인플루언서들처럼 반짝이지도 않았다. 검은 롱패딩은 칙칙하고 꾀죄죄했다. 화장은 번지고 자꾸만 내리는 비에 머리는 부스스했다. 후회가 시작되었다. 여행에서 순간들을 후회한다는 것은, 매몰비용이 자꾸만 지갑에서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하는 것과 같다. 나는 비행기 시간이 되기 전엔 이 나라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시간들에 쓰는 돈은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보고싶었다. 유럽 마지막 도시에는 거의 숙소 밖을 나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그 기억을 애써 묻고 지냈다. 사진을 다시 본다거나 가족들이 여행에 대해 물어볼 때도 애써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실패자’의 경험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결국 깨닫게 되었다. 여행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반짝이는 에펠탑 앞에서의 우아한 식사, 로마의 유적을 탐험하며 경이를 느끼는 한 인간, 그런 것들은 모두 환상이라고. 여행은 베를린을 축축한 베개로 기억하는 것, 콜로세움을 비오던 날의 서러움으로 기억하는 것,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되는 것, 그럼에도 우리에게 ‘보나-뻬띠’와 함께 미소를 날려주던 파리의 한 웨이터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란 걸.
스물 한 살의 여행
후쿠오카 / 제주도
나는 조금 소심해졌다. 그리고 여행에서 마주치게 되는 넓은 세상보다 신촌 새내기의 삶이 조금 더 즐겁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무렵 나는 개인 PT를 받으며 내 몸을 키우고 챙기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영상 동아리를 하며 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쾌감에 한국 땅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 특히 장기여행은 미뤄두고 버킷리스트에 세계 일주 따위를 적는 건 정말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며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며 깨닫게 되는 것들은 내가 지금 존재하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의 여행은 남들은 얻지 못하는 경험, 남들보다 나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위한 것이 되었다. 스물 한 살의 여행은 소소하게 대학에서 만난 특히나 말이 잘 통하는 한 하루키의 팬과, 사랑해 마지 않는 엄마와의 추억을 위한 것이었다. 여름엔 가까운 후쿠오카로 떠났고, 시원한 바람이 산들거리는 가을엔 제주도로 떠났다.
하지만, 역시나 여행이 그렇게 쉽고 사랑스러울리 없었다. 여행은 동행자의, 그리고 사랑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의 또다른 면을 보게되는 것과 같다. 한없이 다정했던 친구가 이렇게 아픈 말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단 걸 알게되기도 하고, 이렇게 잘 맞을 수 없다 생각했던 이가 나와 치명적으로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여행 도중 예민해져 상대를 상처주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 세심하게 상대의 마음을 살펴보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다음 여행은 꼭 혼자 떠나야지! 다짐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나누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건 너무 슬프다는 생각에 울적해지기도 한다.
나는 이를 깨닫게 된 순간 여행에 정말 질려버렸다. 아름다운 환상에 가득했던 도시는 아픈 기억으로 물들고 사랑스러운 친구에게 한순간의 감정을 못이겨 나쁜 말을 하게 하는, 그런 악마같은 여행이라니..! 더 좋은 동행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쉽게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나에게 배낭 여행은 앞으로 없을 줄로만 알았다.
스물 두 살의 여행
스페인 / 포르투갈 / 대만
이제 여행은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나의 스물 두 살은 먹구름 낀 나날의 연속이었고, 사실 모든 것에 무기력한 하루하루이기도 했다. 처음 엄마가 스페인 여행을 제안했을 때, 선뜻 수락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이 기분으로 여행에 가서 웃고 떠들고 맛있는 걸 먹고 그리고 엄마에게 상처주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스페인 여행은 패키지로 가기로 했고, 엄마는 그저 내가 따라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여행이 다가오고, 봄 바람이 불어댈수록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솟구쳤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걱정하며 또다시 한국을 떠났다. 스무살 이후로 처음 가는 유럽이라 내심 이번엔 조금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스물 두 살의 여행은 수월했다. 한국에서의 나의 현실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행복은 상대적이라고 하니까 여행이 더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자고, 움직이고 싶지 않으면 자유시간동안 카페에 들어가 창밖을 바라봤다. 완벽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오히려 모든 게 완벽해졌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라 적힌 묘비명을 여행 내내 떠올리고 되뇌이게 되었다.
여행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비가 오면 비를 가려주는 테라스에 앉아 스페인 산 맥주를 맛보고, 또 비가 그치면 아름다운 정원을 보러가면 된다는 것. 그 쉬운 것을 알게 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행은 곧 일상의 연속이고, 일상의 고민을 한 발짝 정도 거리에서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그정도 무게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별하고 싶어 시작했던 여행은 오히려 여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즐거워졌다.
스물 세 살의 여행
미국 서부와 동부
김영하의 신작이자 베스트 셀러인 ‘여행의 이유’의 한 구문으로 나의 스물 세 살 여행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벗어나기’. 그것이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이다. 김영하는 저서에서 ‘나는 호텔이 좋다’고 밝히며, 그건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때문이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리되어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물 세살을 여는 나의 미국 대륙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현실의 연장인 여행이지만, 그 경험 속에 고정적인 건 정말로 ‘나’뿐이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내가 이 곳을 떠난다면 다시는 보지 않을 것들이다. 여행지에서 사게되는 기념품은 여행의 특별한 추억만을 가지고 나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고, 그말인 즉슨 여행의 순간에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나의 슬픔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나를 너무나 자유롭게 만든다. 나의 실수도, 나의 슬픔도, 나의 우울도 모든 초라한 것들이 뒤섞인 회색 도시로부터 나를 구출한다는 것. 오로지 ‘나’로서만 길거리를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스물 세 살인 나에게 여행이 다시금 소중해진 이유이다.
나는 조금 더 자라서,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소매치기를 당하면 돈은 다시 벌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올해 액땜을 했다고 웃으며 넘길 수 있게도 되었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여행의 재미를 만들어낸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우연하게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그랜드 캐니언에서 동사의 위기를 넘기고, 카지노에서 한순간에 4만원을 잃어버리고.. 그럴 때마다 빨간 머리 앤의 한 대사를 생각하며 하하호호 다음 여행지로 떠날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요!
- 빨간머리 앤
스무 살부터 스물 세살까지, 밤을 새서도 내가 처했던 고통과 위기의 순간들을 나열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동행자와의 대화, 그 때의 분위기, 날씨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우리의 눈빛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아마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여행을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이며, 언제나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이유이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도피를 위해 떠나는 여행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여행은 그런 게 아니라고, 자신만의 철학을 내세우며 나에게 ‘여행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당장 도피의 여행일지라도, 그리고 비록 내가 여행을 정말로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괜찮다. 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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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