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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 Oct 22. 2023

이혼은 실패가 아니야

그걸 실패로 생각하는 내 생각이 문제인거지 

이혼. 행복하기 위해서 한 게 맞는데, 

이혼 하고 나서 마냥 행복하지만 않았던 이유는 


첫째, 경제적 어려움 

둘째, 사회적 시선 

셋째, 이혼을 어쨌든 실패로 바라봤던 내 시선 

때문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서는 앞 글에서 얘기했고, 

사회적 시선은 얘기할 거지만 

오늘은 이혼을 실패로 바라봤던 내 시선과, 

가족들도 나도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어색하고 속상했던 

그 얘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일단, 이혼은 실패가 맞았다. 

지금은, 그 생각이 정말 내 발목을 잡았고,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지만 

사실 28살에 이혼을 경험했던 건 

내 인생 처음 겪는 크나큰 실패였다. 


나는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학생'이었다. 

소도시에서 전교1등을 도맡아 했고, 

스카이 대학에 진학했으며, 

앞날이 창창하던 야심찬 학생이었다. 

뭐든지 수월수월하고 잘 풀렸던 학창 시절에 

너무 행복했고, 내 인생은 꽃길. 아무 거칠 것도 없어 보였다. 


결혼도 겉보기는 매우 괜찮았다. 

부자집이라는 곳으로 시집을 갔고, 

강남에 신혼집을 전세지만 얻었으며

결혼도 거창하고 성대하게 했다. 25살 나이에.



그런 내가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한 것이 

이혼이었다. 


처절했고, 당황했으며,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이혼하면 행복 시작이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우왕좌왕했고, 

속상했고, 미안했고, 예민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온갖 찌질한 감정들을 다 느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덕분에 엄청 겸손해지고,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높은 콧대가 하늘까지 치솟다가 

언제한번 큰 코 다치지 않았을까 싶다. 


겪을때는 지옥처럼 힘들었지만, 

겪고 나니, 그 모든 게 나를 가르치는 시간이었단 생각이 든다. 



얼마전 김경일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이혼을 실패로 볼 필요가 없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실패는 원하는 목표를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안되었을 때 쓰는 말인데, 

결혼 생활이 목표가 될 수도 없고, 

결혼 생활이 일도 아닌데 실패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당시 미숙했던 나는 

이혼이 인생의 크나큰 첫 실패라고 생각했고, 

위축되고, 움츠려들고, 

특히나 엄마 아빠한테 너무 미안했다. 

부끄러운 자식이 된 것 같아서. 


언제나 내 자랑하기 바빴던 엄마 아빠한테 

이제는 그 자랑거리가 없는 애물단지 딸이 된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실패가 

너무 큰 한방이어서. 미안했다 정말로. 


거기다가 신혼집 살림을 지방 부모님집으로 가져오니 

우리 엄마 아빠 집은 좁아 터졌고, 

같이 살아야했던 엄마, 아빠, 동생한테 면목이 없었다. 

그들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떨어뜨렸으니까. 


보면 별로 기분이 좋거나 하지도 않았던(그 땐 너무 의미부여를 했다)

신혼집 살림들을

헐값에 팔아버릴 수도 없고 주렁주렁 지고 살아가려니 

매일 같이 숨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그럴진데, 가족들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가족들은 괴로운 내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우리는 누구 하나 폭탄 터뜨리는 사람 없나 눈치 보며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동거를 지속해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행복하자고 이혼해놓고 

너무 대책이 없었던 것 같다. 


이혼 후 어떻게 살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냥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게 숨 막히고 

죽을 것 같다는 이유로. 

일단 도망치는 게 1순위가 되었었던 것 같다. 


그 뒤에 감당해야 할 일은 별로 생각하지 않은 채. 


이혼을 실패로 바라봤던 내 시선은 

그 이후로도 한동안 이어졌고, 

커리어적으로는 누구보다 그 뒤로 더 노력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이혼 사실이 혹시나 알려질까봐 

그게 내 흠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그래서 나는 두 배로 피곤했고, 

두 배로 힘들었다. 



그 모든 것을 놓아주기로 결심하니,

사실 이혼 후 힘들었던 건
그걸 실패로 바라봤던 내 생각 때문이었구나. 

하는 자각이 늦게서야 들었다. 


실패가 아니었는데. 
결혼도 이혼도 그 상황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는데.


그리고 선택을 했으니 책임을 졌고, 

나는 그걸로 됐던 거였는데. 



만약 당신이 

이혼 후 자책과 실패감에 좌절하고 있다면. 

그 생각 고쳐 먹으시라고. 

당신 잘못 아니고, 실패는 더더욱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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