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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 Sep 22. 2023

이혼 후 들어온 소개팅

엄마, 내가 부끄러운 건 아니지?

결혼만 안했다면 완벽한 조건이었다. 

학벌도 좋고, 어렸고, 

외모도 나쁘지 않았고. 

대기업에 다녔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었고, 

소위 말하는 결정사(결혼정보업체)나 선 시장에 

내보내기에 괜찮은 스펙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나갈 수 없었다. 

이혼녀였으니까. 



이혼녀라는 낙인이 사회적으로 찍힌 이상, 

나는 그 어떤 소개팅에도 선 시장에도 

당당하게 나갈 수 없었다. 

상대가 돌싱이 아닌 이상. 


이건 막연하게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현실이 되었을 땐 훨씬 더 가혹하게 느껴졌다. 


나는 첫사랑과 연애해서, 그 사람하고 결혼해서 

이혼했던지라, 

정말 그 사람만 봤는데. 

솔직히 자유롭게 연애하고 동거도 많이 하는 세태를 

알고 있던지라, 억울하기도 했다. 

법적 낙인이 이렇게 무섭고 중요한거구나.


그래서 후배들한테는, 

혼인 신고는 1년 정도 살아보고 해도 늦지 않다고 얘기해준다. 



정말로 그렇거든. 

사람일이란 건 모르는 거고, 

사람은 같이 살아보기 전엔 모르는 거고. 

가끔은 같이 살아도 모르는 거고. 



내가 이혼하고 나서, 

엄마가 새로 알게 되시는 인연들 중에는 

20대 딸들이 있다는 걸 알고 

(동생은 너무 어려서 나한테 주로 소개팅이 들어왔던 것 같다) 

소개팅이 넌지시 들어오곤 했던 것 같다. 


스물 여덟 나이에 이미 돌싱이 된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당연히 그 분들은 모르고 하시는 제안이었다. 


소개팅이나 선자리가 들어올 때마다 엄마는 난처해하셨다. 

아직 잘 모르는, 친해지기 전 단계의 분들한테 

딸에 대한 소개팅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이혼했다는 사실을 공개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무턱대고 소개팅을 거절한다면 

그 분들은 또 기분이 상하시진 않을까. 


그 때마다 엄마는 지금 만나는 사람 있어요

라든가, 

지금 공부하느라 바빠요

등의 얘기로 현명하게 잘 막아내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그런 저런 얘기들을 나한테 들려주셨는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맘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설 수 없었겠다는 생각에. 

아님 나서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괜히 스스로 작아지고 속상해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 그냥 나 남자친구 있다고 해. 

나도 그런 사람들 필요없어. 

라고 호기롭게 얘기하긴 했으나, 

괜히 엄마한테 미안했고. 

내가 마치 부끄러운 사람이 된 것 같아 속상했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다른 사람이 알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엄마 주변 분들이 나의 이혼 소식을 알게 되면 

엄마가 상처받으실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불필요한 입단속과 함께

철저하게 나를 숨기는 생활을 하면서, 

엄마 지인분들과 최대한 접점을 만들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상처받을 지도 모르는 상황을 미리 피해갔다.

정말 몸 사리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 몸사림도 에너지다. 

다른 데 썼으면 훨씬 좋았을 에너지.

나는 그 시간과 에너지가 지금은 너무너무 아깝다. 



이혼 후 소개팅은, 

이렇게 내게 억울함과 속상함, 미안함을 안겨주던 

이상한 존재였다. 

나를 생각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내 사정을 모르고 제안하는 소개팅은 

내 현실을 두 배 세 배 날 것 그대로 보게 해줬고, 

그 때마다 나는 이런 감정들 속에서 허우적대며 

예민해져갔다. 


조금 더 쿨했었다면, 

조금 더 당당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이제 와서 든다. 


악의가 없었던 타인의 제안을 

그냥 너스레떨며 웃으면서 넘어갔으면 

어땠을까. 


그냥 내 슬픔과 비관에 묻힐 것이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여유를 보여줬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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