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비 Aug 23. 2024

나는 허리가 정말 아팠어

결혼 생활 중에서도, 내가 나를 제일 먼저 챙겨야 한다

스물 여일곱밖에 안됐던 나는,

아마 허리가 정말 튼튼했을거다 그 때.


하지만 일 해본 적은 거의 없어,

명절에 전부치는 게 나한텐 별 일 이었다.


그냥 몇 시간 좀 힘들면 안되나?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전부터 시작하는 부담감과 왠지 모를 억울함,

(남편은 우리 집에 와서 전 안부쳤으니까. 그냥 사위로 대접만 받았으니까)

그리고 긴장감이 겹쳐, 어린 나에게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어느 명절 전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3-4시간 쭈그린 자세로 당시 시댁식구들과 함께 전을 부쳤다.


그 날 뭐가 잘못되려고 그랬는지 .

그 세네 시간 앉아서 전을 부치는 도중

허리가 삐끗하면서 뭔가가 탁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상한 걸 눈치채긴 했는데,

거기서 허리아프다고 쉬면

왠지 꾀병 부리는 거 같아 아픈 걸 꾹 참고

한두 시간 더 앉아서 전을 부쳤는데,

그 때 이후로 계속 허리가 너무 아프더라.


인대든 근육이든 뭔가가 잘못된거다.



시댁에서는 티를 못내다가

집에 돌아와서 전남편한테

허리가 넘 아프다고 원망섞인 투로 얘기했더니

유난 떨고, 오버한다는 취급을 받았다.

허리 아픈 것보다 그걸 몰라주는 당시 남편 때문에

더 서럽고 힘들고, 억울했다.


사실 그 전까진 감정적으로 괜찮았는데,

그냥 가서 전부치느라 힘들었지? 허리 아플만하겠어.

내가 좀 주물러줄까. 아님 병원이라도 같이 가줄까?

이런 반응을 기대했는데.

남들 다 하는 일 하는건데,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유난 떤다는 식의 취급을 받으니

감정적으로 갑자기 울컥 올라왔었다.


젊은 나이 하나 믿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다음날인가 다다음날 자전거 한 번 타고 났더니

허리 통증은 너무 심해졌고,

그 뒤로 나는 6개월이나 정형외과에 다니며

진통제 맞고, 운동 치료 하면서 허리 재활을 해야 했다.



이미 벌써 한 10년이나 지나서

대부분의 기억이 회색빛,

다 가물가물해진 기억이 되었지만.

내 결혼생활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에피소드 중

왜 이 이야기가 꼭 끼는지 모르겠다.


그 때 나는 정말 좀 억울했나보다.

나는 정말로, 그 때 허리가 아팠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처음에 허리가 삐끗할 때,

“저 허리가 갑자기 너무 아파요. 죄송한데 잠깐 쉴께요.“

하는 당당한 며느리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미련하게 꾹꾹 참지 말고 말이지.

그런다고 누구하나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전 부치는 일이 6개월간의 치료가 필요한 만큼

내 허리를 나가게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는데.


요령과 현명함이 부족한 탓이었겠지.

억울하긴 억울한데, 뭐가 억울한지 잘 몰랐던 탓이었겠지.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날 먼저 돌보고 챙기는 게 중요하다.

특히 결혼과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는.

내가 나를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아주 미미하다.

그렇게 거창한 차이가 없다.


다시 결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결혼한다면 나와 남편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자신을 돌보고, 그 독립되고 자존감 높은 두 개인이

서로를 존중하고 보살피며 살면 좋겠다.


그럼 쓸 데 없이 허리가 6개월씩이나 아플 일은,

이제 없을거다.


작가의 이전글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는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